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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02. 2020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함을 믿었기에 만나 졌다.

세나의서재


서울에서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내리려는데, 남자 승무원님 이 물으신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보셨어요." "아, 글의 품격이라는 책인데요. 이기주 작가님이 쓰신 신작이에요." 마치 내가 에디터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자랑을 했다.  그런 내가 신기했던지, 옆에서 웃으시던 승무원님이 물어보셨다."혹시 이기주 작가님 아세요? " " 아니요 아직 못만났어요. 근데, 책으로 만났어요."  승무원님들이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저도 사서 읽어 봐야겠어요."


겨울에 만난 언어의 온도©SEINA


이기주 작가님을 처음 만난 책은 - 언어의 온도이다. 

2018년 12월, 여름이었던 싱가포르에서 겨울방학의 휴식을 찾아 서울로 떠났다. 우리가 지내던 호텔에서 쉽게 걸어서 갈 수 있던 서점. 그렇게 시간이 나면 서점으로 걸어가 책을 읽었다. 내가 휴식할 수 있던 그곳. 책 냄새나는 서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사인. 언어의 온도. 이기주.  보라색 사인 정말 크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 언어의 온도는 무엇일까?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위로... 헤아림... 꽃... 본문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2019년 1월 - 몸은 매일 달리고, 마음은 기다리던 중 나에게 온 문장들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 언어의 온도(P163)

이 글을 쓰셨을 때, 분명 다른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을 텐데, 지금 이 문장 들은, 내 시간을 통과해서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아껴서 읽고 싶었다.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돌아오기 전에 서점에 다시 들렀다.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말의 품격과 한때 소중했던 것들도 같이 데려왔다.


미국에 계시던 엄마가 한국에 오셨다가, 싱가포르에 오셨는데, 저녁 먹고 소파에 앉아서, 이기주 작가님의 책을 같이 읽었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 머슴아 가, 아니 이 작가님이, 결이 섬세한 사람이구나..."

나중에 엄마가 밑줄 그어놓으신 곳, 동그라미를 쳐놓은 곳을 읽었는데... 그곳을 읽어 보았는데 좋았다.

엄마의 감동 포인트는 거기였구나...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 본문 중에서 ©SEINA



2019 1책을 읽고 울었던 게 얼마 만이었을까? 미국 출장 가던 비행기 안에서, 사연 있는 여자처럼... 그렇게 울었다. 엉엉 울었다.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p 234)

계속 구르던 세모가 힘들어 보여서? 열심히 구르던 시간이 안타까워서? 아니면 내가 열심히 구르는 세모 같아서? 며칠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세모로 살기로 했다. 동그라미 말고 세모로. 여기저기 좋은 세모들 모아서, 별 만들어서 놀면 되니까. 동그라미가 되려고 구른 게 아닌, 별이 되어 반짝반짝하기 위했던 구르기였기에...


2019 5  마지막 한국 출장 중 다시 들린 서점, 신간 글의 품격을 샀는데, 친필 사인본이었다. 작가님 글씨체는 이렇구나.


2019년 7월 - "누구에게나 바다가 있다" 2년간의 싱가포르에 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서의 여름. 요즘 나의 바다에서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톺아보다는 우리말 - "샅샅이 돌아 나가면서 살피다."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떤 유형이 됐든, 깊고 부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어떤 자세로 노를 젓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건너고 있는지 살면서  번쯤은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번쯤음." P148 - 언어의 온도



2019 7 6

우주적 만남- 사랑은 시간을 건네주는 

5월 그땐 알았을까, 그 친필 싸인본에 내 이름이 새겨질지? 일일 점원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으로 향했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화려한 조명을 감싸던 싹쓰리에 비룡 오빠 콘서트를 보러 갈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크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감사하다는 말만 전하고 오자고 다짐을 했는데...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고 말았다. 근데 그 시간을 잘 쓰고 온 게 행복했다.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SEINA
2019년 여름 ©SEINA


일일 점원 하시던 이기주 작가님, 2019년 여름©SEINA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는 길 행복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봐서 감사했고,  글이 고맙다는 말을 전했기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들, 오로지 매 순간에 충만할 때, 충만함.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빠듯했던 서울 일정.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앞에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갔던 그곳. 그리고 남겨진 사진들을 보니...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일이었다.


"시간이라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전에 서로를 들여다보고 헤아려야만 한다. 그리움과 후회를 뼛속에 새겨 넣지 않으려면." - 글의 품격 P 65


2020년의 봄비가 지나가며 무지개를 만들어놓은 어느 월요일 사랑하는 베프한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의 표지에 신간을 선물 받았다.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 ©SEINA


©SEINA



요즘 글쓰기가 좋아서 글의 품격을  다시 읽고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하다고 하시는 이기주 작가님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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