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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세진 Oct 29. 2018

브랜딩하는 이야기 - MIMICUS

In nature we mimic


생체모방 검색 및 아이디어 제안을 위한 인공지능 웹서비스


생체모방 (Biomimicry, biomimetics) 을 알고 계신가요? 생체모방은 자연을 뜻하는 'bios'와 흉내/모사를 의미하는 'mimesis'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 만들어진 단어로써 자연생태계에서 발견되는 특성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거나 기존에 있는 기술 및 능력을 개선시키는 모든 행위를 뜻합니다. 


생체모방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더 넓은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한양대학교 나노전자소자연구소)


말이 좀 어려웠으니 좀 더 심플하게 설명해볼까요.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좀 더 빠른 기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신칸센 관계자들은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받지 않는 형태를 연구한 끝에 물총새 부리의 두부 골격처럼 앞부분이 뾰족하고 긴 열차를 발명해냅니다. 사냥을 좋아하던 한 스위스인은 취미로 사냥을 나갈 때마다 바지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성가신 우엉 가시를 떼던 중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발명하게 되었고, 잘 흔들리되 그 형태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비눗방울의 형태를 참고하여 설계된 중국의 워터 큐브 수영장은 큰 기둥 하나 없이도 완벽하게 지탱되는 지붕구조를 자랑하며 베이징 올림픽의 랜드마크로 주목받았습니다.


'자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라는 전제하에 시작된 생체모방은 그 활용성으로 인해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의 기업에서 연구 및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클라이언트 중 하나인 MIMICUS는 생체모방과 관련된 데이터들을 수집, 분석하고 유저의 요구에 맞는 문서를 검색해주는 AI 기반 컨설팅/검색 시스템입니다. 위의 설명된 사례들을 좀 더 찾기 쉽게 해 주고 또 유저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제안하기까지 하죠. 그리고 "대중에게 생소한 생체모방이라는 콘셉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MIMICUS의 브랜딩은 시작됩니다.




phase 0 - conceptualization [ 브랜드 콘셉트 구체화를 통한 브랜드 코어 구축 ]


MIMICUS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앞서 브랜드의 타깃을 선정하고, 해당 브랜드의 콘셉트를 문서화할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문서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브랜드가 어떤 서비스/제품을 제공하는지, 그 서비스/제품의 성질을 브랜드가 어떻게 표현 해내는지를 글이나 말로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브랜드와 서비스의 정의, 타겟 유저층 등을 정해 나갑니다.


MIMICUS는 제공하는 서비스와 성격이 뚜렷합니다. 특정 동식물이 아니라,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그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제안해주는 A.I. 기반 컨설턴트입니다. [자연]이라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주소재가 될 수도 있고 [AI를 베이스로 한 아이디어 제안]이라는 특허기술이 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로는 넘쳐나는데 너무 넘쳐나서 어떤 음식을 요리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 기분입니다.


오래된 고서부터 디지털 문서까지 총망라되어 있는 고즈넉한 도서관, 물어보는 건 뭐든지 대답해주는 푸근한 인상의 친절한 옆집 할아버지, 똑 부러지게 원하는 문서를 불러오는 생체모방계의 자비스까지. 이 서비스가 유형적인 물체나 장소, 인물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고민해봅니다.


왠지 옆집 할아버지의 낯이 익은 것 같지만 기분 탓입니다.


그리고 MIMICUS는 베이직 서비스와 프로 서비스, 둘로 나누어 집니다. 베이직 서비스는 생체모방에 깊은 식견이 없는 일반인들도 가볍게 체험할 수 있는 정도의 서비스고 MIMICUS 프로의 경우는 전문적이고 상세한 문서 자료를 찾는 전문가들에게 적합한 서비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MIMICUS 브랜드의 느낌은 IT기운이 너무 물씬- 풍겨서 geeky 하지도, 그렇다고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느낌으로 가도록 합니다.


단, 모든 타겟층을 노리려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끔찍한 혼종이 탄생하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합니다.




phase 1 - ideation [ 브레인스토밍 ]


실제 작업 당시의 노트입니다. 말그대로 정말 낙서 (...) 입니다.


이전 단계에서는 서로의 니드와 이해 (간간히 욕심)을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상호 간 합의하였으니 이제 MIMICUS 브랜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로고를 디자인하도록 합니다. 개인적으로 초기 작업에는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작업합니다. 백개의 낙서 중 한 개의 원석이 나타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몇 가지 의미 없는 낙서를 이어가다 보니 머리 속에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갑니다. 이번 콘셉트는 '모방/모사'에 중점을 두기로 합니다. 



자, 이제 기계의 힘을 빌려 속도를 내봅시다.


스케치하거나 아이디어를 적어놓은 것들 중 발전시켜볼 만한 것들을 추려 디지털화시켜봅니다. 디자이너도 사람인지라 막상 디지털화시켜보면 영 아니올시다, 하는 것들이 탄생합니다. 그 외에도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뭔가 될 것 도 같!지만 계속 제자리인 시안, 3분 만에 만들었지만 그럴싸한 시안 등 여러 가지 시안들이 준비되고 다시 한번 추려내어 클라이언트에게 컨펌을 받기로 합니다. 




phase 2 - visualization [ 시각화, 그리고 디테일 ]


그렇게 선정된 A시안 (좌측)과 B시안 (우측)


1차 시안을 클라이언트에게 소개한 후 다시 한번 수정을 거쳐 결과물을 좁혀나가기 시작합니다. 슬슬 결과물도 생각해야 하니 로고가 명함 상에서 어떻게 보일지, 또 어떤 소재들에 활용이 될지 목업 파일을 이용해서 준비하였습니다. 목업 파일을 이용하여 명함, 웹사이트, 서류봉투 등을 간단하게 제작해놓으면 비전문가인 클라이언트들께 프레젠테이션 하기에도 용이하고 디자이너의 의도를 전달하기에도 편리합니다.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2개의 시안으로 좁혀졌습니다. 두 개의 시안 모두 공통적으로 신뢰감 있는 IT 서비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푸른 톤으로 전체적인 칼라 스킴 (Color scheme)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산세리프와 세리프가 혼용됨으로써 세리프가 주는 클래시컬한 느낌을 어느정도 상쇄시켜줍니다.


A 시안은 선의 강약 대비가 강한 두꺼운 세리프 체로 된 로고타입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클래식한 맛을 지닌 로고로 보입니다만 기본적으로 볼드한 산세리프체와의 혼용, 크롭 된 동식물/곤충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레이아웃 등을 통해 오히려 모던한 느낌을 더 전달할 수 있는 시안입니다. 그리고 MIMICUS의 태그라인은 미국의 공식 국가 표어인 "In God We Trust (우리가 믿는 신 안에서)"를 오마쥬 하여 "In Nature We Mimic (우리가 모방하는 자연 안에서)"로 변경한 뒤 사용하였습니다.

MIMIC + (어떤 것이라도 가능)


B 시안은 미학적인 측면과 동시에 MIMICUS가 지닌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모방하는 자'를 뜻하는 MIMICUS를 MIMIC (모방한다) + US (우리를)로 풀어씀으로 자연모방의 주체가 되는 자연 (과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의인화시키고 브랜드 네임에서 중의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US 부분을 생체모방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동식물의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생체모방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phase 3 - Finalize [마무리를 준비하다.]


다행히 클라이언트께서 두 시안 모두 다 마음에 들어하셨으나 너무 마음에 들어하신 나머지 두 시안의 콘셉트를 합쳐보자 하십니다. 보통 A와 B를 섞은 C를 만들어주세요! 는 디자이너들에게 큰 두통을 선사하는 작업이지만 "A에서는 레이아웃 및 전체적인 look & feel을, B에서는 MIMIC + [명사]의 콘셉트를" 추출하여 달라는 클라이언트 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3) 


명함도 무려 5종! 인쇄비가 5배!


명함은 총 5종의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킹피셔, 벌레잡이 통풀, 매미, 바이러스와 펭귄 등 실제 생체모방에 사용된 생물들을 통해 생체모방이 지닌 다양성과 확장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메인 색상이 되는 푸른색은 좀 더 선명하고 비비드한 느낌이 나도록 수정하고 명함 상에서 IN NATURE WE~ 부분은 로고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로고에 사용된 것과 같은 크기와 무게의 타입페이스를 사용합니다. 명함에는 QR코드가 삽입되어 있으며 이 부분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후술하겠습니다.


공식 문서에 사용되는 레터헤드와
각종 행사에서 사용될 X 배너와
이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브랜드 가이드라인.


그리고 브랜딩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의 제작 역시 꼼꼼히 진행합니다. 브랜드 가이드라인에는 올바른 로고의 사용법, 적합한 이미지를 선택하는 법, 홍보물 제작을 위한 타이포그래피 등이 수록됩니다.

 



phase 4 - introduction to the world [ 세상으로의 소개 ]


이제 브랜드가 세상 밖으로 출시됨을 기다립니다. 그러고 보니 MIMICUS는 웹서비스잖아요? 맞습니다, 아이덴티티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이 끝나고 웹서비스의 기획과 개발, UI/UX 디자인과 퍼블리싱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 결과 2017년, MIMICUS의 베이직 버전이 성공적으로 오픈하였고 프로버전은 올 연말 대중 공개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2017년에 선공개된 MIMICUS 베이직 버젼 웹사이트 (http://mimic.us)


베이직 버전의 경우 명함에서 사용된 5개의 생명체들이 메인화면에 랜덤으로 나타나고 해당 생명체와 관련된 간단한 생체모방 문제가 제출됩니다.  너무 학구적인 질문들이 아닌 "너 이거 알아? 신기한 건데" 정도의 가벼운 질문으로 생체모방에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되었던 명함 상의 QR코드를 검색할 경우 명함에 삽입된 이미지가 메인화면으로 된 웹사이트로 이동하게 됩니다.


아직 공식 오픈이 되지 않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게 된 프로 버젼. 철저하게 논문 검색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MIMICUS Pro의 경우 논문 검색 등으로 한 페이지에 표시되어야 하는 텍스트의 양이 방대해지게 되므로 사이즈가 크면서 볼드한 폰트의 사용은 자제하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백그라운드 색상은 흰색 또는 연한 회색으로 통일하도록 하였습니다. 




끝이 아닌 시작. 진짜로.


한창 작업중이던 사무실 벽면의 일부


사실 브랜드는 대중의 반응을 먹고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국내외 유저들이 MIMICUS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또 그들의 피드백이 자양분이 되어 2년 뒤쯤엔 MIMICUS가 전혀 다른 모습의 플랫폼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첫술부터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다는 점마저 브랜딩의 큰 매력이 아닐까요? 그동안 더 많은 지식과 경험으로 같이 상부상조하며 성장하는 플랫폼과 디자이너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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