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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미네부엌 Jan 19. 2024

당근은 토끼가 안 먹어요, 제가 다 먹어요

당근 라페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

"엄마, 토끼가 당근 안 먹는데?" 딸내미가 토끼 먹이를 주다 말고 외친 한 마디에 "으엥?"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온갖 만화에서 나오는 토끼 녀석들은 당근을 주식으로 먹고, 심지어 좋아도 하던데! 또 온갖 종류의 토끼 인형들을 보자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당근을 장난감 먹이랍시고 곁다리로 껴주곤 하던데!


실제로 토끼 먹이 체험을 하다 보면 주황 당근 조각을 넣어줄 때마다 고개를 팽 돌려버린다. 심지어 그 주변에서 무작위로 뜯어온 풀을 더 잘 받아먹는 모양새(토끼에겐 달고 수분이 많은 당근 몸통보다는 잎을 먹이는 것이 더 좋단다). 도대체 누가 토끼에게 당근 신화를 심어준 걸까? 당근은 분명 토끼보다 사람이(특히 내가) 더 잘 먹는다.



처음엔 동물의 먹이로 쓰거나 약용으로 줄기만 먹다가, 주황색 몸통을 가진 더 달달한 종자만 개량 재배하는 방식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당근. 그래서일까, 금방 수확한 것이나 제철 맞은 당근은 물기도 자작한 데다 아작 씹었을 때 깜짝 놀랄 만큼 달다.


저장성까지 좋아 사계절 내내 곁을 지키는, 당근송도 다 있는 당그니. 겨울에는 제주 구좌에서, 그 외 계절에는 경남이나 고랭지에서도 난다. 수확하는 지역별로 다른 향이 나지만, 특히 제주 당근은 자라는 땅에 따라 흙당근과 모래당근으로 또 나뉘는데 허브향이 나기도 서류(덩이뿌리 작물들)향이 나기도 한다.



물론 주황색이 시그니처 컬러지만, 노란색, 보라색 당근도 있다. 일반적인 주황 당근과는 다른 맛과 향, 식감으로 국내에서는 소량 재배된다. 노랑 당근은 인삼향과 솔향이 나고 섬유질이 많아 질기며, 보라 당근은 껍질에 쓴 맛이 강해 껍질을 벗겨 사용하면 좋다.


당근은 세로로 자르면 하얀 선이 도드라지는데, 흰 선을 기준으로 바깥을 '체관', 안쪽을 '물관'이라고 부른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의 영양분이 이동하는 체관은 물관보다 맛과 향이 풍부하고, 물과 미네랄이 이동하는 물관은 수분이 많고 아삭하다. 노란색 옆선도 존재하는데 뿌리가 있던 자국으로 잔뿌리가 적어 옆선이 적은 것이 아삭하고 더 달다. 특유의 당근 향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향이 많이 올라오는 체관 대신 안쪽의 물관만 잘라 요리에 활용하면 거부감이 덜해진다.



지용성인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당근은 요리할 때 기름을 함께 쓰면 좋다. 기름이 베타카로틴을 옮기는 운반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흡수율을 높여주니까. 당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름은 옥수수유! 그 밖에도 콩기름, 포도씨유 역시 당근을 만나면 각기 다른 향을 낸다. 그리고 대망의 '올리브유'를 당근과 함께 사용하면 시트러스 계열의 향취를 배가시켜 상시로 주워 먹기가 너무 맛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당근을 꽤 좋아했구나!' 요리를 하니 알아가는 배움의 기쁨이 크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마음 또한 즐거워진다. 덕분에 올리브유와 당근을 같이 절이면 향까지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세젤맛 '당근 라페'다. 그냥 홀랑홀랑 집어도 먹고, 김밥도 만들어 먹고, 샌드위치나 토스트로도 먹는 당근 라페. 당근채 올리브유 초절임? :)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넣는 정석 레시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집에 있는 재료로 뚝딱 절이면 냉장보관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동이 난다. 그럼 당근을 또 채썰기 시작한다. 그렇게 당근 라페 만들기 무한궤도가 생기는 것. 당근 라페는 정말 세상 당근 다 내가 먹을 '기세'를 갖게 해 준달까.


올리브유, 설탕, 요리에센스 연두를 1.5:1.5:1.5로 넣고, 식초를 3의 비율로 넣은 다음 채 썬 당근을 버무리면 끝. 거기에 상큼한 향을 추가하고 싶다면 한국인의 허브, 깻잎을 툭툭 썰어 같이 절여주면 된다. 당근을 계속 먹느라 내가 나인지, 토끼가 나인지 헷갈리게 되는 당근 라페! 상세 레시피는 아래 새미네부엌 사이트 참고.

✅내가 토끼가 되는 '당근 라페' 재료

주재료

당근 1/2개(100g)

깻잎 2장(4g)


양념

요리에센스 연두순 1.5스푼(15g)

설탕 1.5스푼(15g)

올리브유 1.5스푼(15g)

양조식초 3스푼(30g)


✅내가 토끼가 되는 '당근 라페' 만들기

1. 당근과 깻잎을 얇게 채 썬다.

2. 라페 양념을 섞은 후 채 썬 당근과 깻잎을 함께 버무려 상온에서 10분간 절이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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