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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l 18. 2023

마음에 '느린 공간' 들이기

이제부터 시간은 느리게 흐를 거야.

선언한 뒤 조용히 압도하는 공간이었다. 고즈넉하고 정갈한 곳에서 나는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앞서 들렀던 해변에서 순식간 표정이 바뀌던 하늘을 뒤로하고, 우리가 차를 몰아 달려온 곳은 '차(茶) 공방'이었다. 공방까지 오는 동안에도 날씨는 해가 났다, 비 오기를 반복했고, 공방 앞에 도착했을 때는 아예, 해가 쨍한 가운데 비가 내렸다.


엽엽한 성품의 S 선생님(나의 고사리 스승님-1)은 항상 함께 갈 곳의 동선을 미리 짜와서 동행하는 이를 감동시켰었는데, 그날은 차(茶) 공방에서 진행하는 ‘티 클래스’ 예약을 해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히 정돈된 공간에는 오밀조밀한 다기와 화분들이 놓여 있고, 공간을 쏙 빼닮은 젊은 사장님이 단아한 모습으로 맞아 주었다. 그녀가 제주산 야생초 이야기와 채취한 찻 잎을, 흔히 약재에서나 쓰이는 '구증구포'(아홉 번을 덖고, 아홉 번을 말린)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우려낸 차(茶)를 우리 앞에 조심히 놓았다.  


평소, 차(茶)가 건강에 좋다는 것도 알았고, 카페인이 건강에해로운 것도 알고 있었지만, 커피를 달고 사는 나였다. 하지만 돌아보니, 풀어진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카페인을 과다섭취하는 일상에는 나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없었다.


'차(茶) 공방'의 고즈넉함은 8년 전 처음, 도시에서 제주도로 이주했던 시간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 나는 도시를 떠나 제주에 당도한 것만으로도 '느리게 사는 삶' 가까이 왔다며 잔뜩 설렜지만, 느려도 괜찮다고 위로하던 시간을 잊고 어느새 과거의 조급한 시간으로 회귀한 것인지 돼물어야 했다.


그녀가 우리 앞에 다식과 차를 함께 내줬는데, 먹기에 아깝도록 예뻤다. 조심스럽고 정갈한 환대에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세요.'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겼다.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굴러가는 돌멩이도 존재의 이유가 있었고, 우리는 매 순간 깨달을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불안이 만든 조급함은 더 큰 불안을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좀 더 천천히 기다려 줄 일이었다. 다음 산책 장소로 이동하던 나는,

내 마음에 한 칸
 '느린 공간'을 들여놓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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