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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28. 2023

제주, 타인이 보이는 풍경

개르르와 사르르

우린 각자 마음의 역량에 따라 다른 지점에서 행복을 느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수록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나는 제주에 와서 알게 됐다. 매일 사나운 뉴스에 마음이 녹초가 됐다가도 제주도에서 목도하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하단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제주 시내로 이사 온 지난 1년은, 큰 딸이 캐나다에서 잠시 들어와 있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매일 글을 쓰게 되면서 두문불출했었다. 시내에선 배달로 장보기가 해결되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세 아이와 고양이, 개 한 마리를 돌보는 집안 일과 글쓰기 수업을 받으러 오는 어린이들, 내 글을 쓰는 시간 만으로도 하루가 꽉 찼다. 온라인이 더 익숙해진 세상이니 안부가 궁금하면 언제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마음이 요동칠 일 없이 무심히 지나는 날의 감사함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어제, 내 스승이자 친구인 S선생님은 나는 태우고 작은 마을로 차를 몰았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초록과 하늘, 바다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시골 생활의 불편함을 견딜 만큼 사랑한 풍경이었다.


요즘 제주도는 작은 마을로 갈수록 핫하다는 맛집이 생겼다. 좁은 도로까지 자동차가 즐비했고, 새로 생겼다는 빵집 앞마당은 폭염 속에도 웨이팅 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4.3 유적지인 그 빵집 앞 팽나무를 지나치며 조금 씁쓸히 웃었다.


우린 비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막내가 참여하는 '고양이 그림책 프로젝트' 멤버 분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그곳엔 사람이 먹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반려견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사람과 반려견이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니! 연신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손님이 몰렸다. 사람이 먹을 아이스크림은 물론 반려견 아이스크림을 찾는 손님도 많았다.


"개르르 하나 사르르 하나 주세요"

"네, 결제해 드릴게요. 강아지 얼굴 한번 보여주시면 500원 할인해 드리는데 해드릴까요?"

"아! 그래요? 차에 있는데 데려올게요."


이 무슨 신박한 대화인가? 강아지 얼굴 한번 보여주면 500원을 할인해 준다니!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행복한 웃음이 터졌다. '매일 이런 말만 듣고 살면 좋겠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삶, 나와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보이는 풍경 속에서 한숨 돌리던 하루,

나는,
마음이 놓이고 살만해져 돌아왔다.

좌)사르르 우) 개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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