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의 어두운 그림자

오늘의 심리학 #12

by 오세준

금메달의 어두운 그림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금메달의 순간, 선수들의 환희에 찬 표정을 본 적이 있나요? 아, 바보같은 질문이네요. 여러분도 이미 그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테니까요... 그동안의 모든 노력들, 흘린 땀방울, 힘든 훈련을 견뎌온 나날과 이어지는 경쟁 속 숨막히는 부담감으로부터의 해방, 이 모든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선수는 아마도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로또맞는 순간의 기쁨 정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합니다 ㅎ

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선수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딴 금메달을 바라보았을 때, 그 찬란했던 빛은 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올림픽-후-우울Post-Olympic depression이 시작된 것이죠.

미시건 대학의 스포츠 심리학자 Scott Goldman에 따르면, 올림픽 이후 선수들은 마치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다고 합니다. 선수 개인이 느낀 극도의 기쁨, 매스미디어의 주목, 가족과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 등이 올림픽 폐막식과 더불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죠.

우리 삶의 주요한 경사들, 결혼, 출산, 대학합격, 취업 등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결국 선수는 그 모든 기쁨과 환호성을 뒤로 하고 단상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금메달을 손에 쥔 선수들에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메달만 다섯 개를 딴(그 중에 금메달만 무려 세 개) 수영선수 앨리슨 슈미트 Allison Schmitt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올림픽 이후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했었죠. 무엇보다도 그녀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금메달리스트'였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문가를 찾아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기까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죠. 왜냐구요? 선수들의 락커룸에선 우울이 금기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경기를 보면 항상 강조되는 '정신력'. 이건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나 봅니다.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의 엘리트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으며 타인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식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특히, 결승선에 도달하는 건, 시상대에 올라가는 건, 코치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라는 식의 말들...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며 훈련을 받아온 선수들에게 우울은 자신이 '홀로'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할' 무언가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우울의 치유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되려 악화시키죠.


물의 신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에게도 위기는 찾아왔었습니다. 대마초에도 손을 대고 음주운전 사고, 골프에 도전하는 등 2년 가까이 방황을 했었죠. 하지만 펠프스는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볼 수 있었듯이 올림픽 후 우울증을 이겨내고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불멸의 기록을 세우고 모두의 축복 속에 은퇴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앨리슨 슈미트 역시 리우에서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엔 팀의 주장 역할까지 맡았지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펠프스나 슈미트 같진 않습니다. 펠프스 이전에 펠프스였던 위대한 수영선수 마크 스피츠Mark Spitz(72년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7관왕, 세계신기록 7개)는 겨우 22살의 나이에 은퇴하고 맙니다. 정신적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매 경기 때마다 수영하기 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번은 정말입니다. 만약 제가 여섯 번 수영해서 여섯 번 금메달을 따면 영웅이 되겠지요. 하지만 일곱번 수영해서 여섯번 딴다면, 전 패자가 될 겁니다" (마크 스피츠)

선수들이 갖는 부담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그 이상입니다. 전직 스케이트 선수이자 스포츠 심리학자인 캐롤라인 실비Caroline Silby는 선수들이 마치 자신이 사기꾼 처럼 느껴지는 시기를 겪는다고 말합니다. 정말 승패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고 얼마든지 결과가 뒤바뀔 수 있었단 걸 잘 알기 때문에 선수들은 사람들의 엄청난 열광과 우상화가 곧 비난과 경멸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이런 중압감을 이겨내고 올림픽 이후 찾아오는 정신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기력 향상 컨설팅 사업을 운영하는 스포츠 임상심리학다 크리스틴 케임Kristin Keim에 따르면 비결은 매우 단순합니다. 운동장 바깥에서의 정체성을 튼튼히 구축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결과는 당신이 아닙니다" (Kristine Keim)

결과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훈련부터 메달 획득 혹은 실패까지의 모든 일들을 과정으로,주어진 선물로 여기고 즐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에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훨씬 큰 목표들이 있음을 깨닫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인생계획을 세워보기. 훈련을 하지 않는 시간을 낯설어하며 불안해하지 말고 가족, 친구들과의 사이를 돈독히 하고 여행도 하고 운동과 관계없는 새로운 일도 시도하면서 바쁘게 살기... 이 모든 것들이 올림픽 이후 찾아온 불청객, 우울을 돌려 보내는데 도움이 됩니다.


운동성적과 메달 개수에 자신을 과잉-동일시하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선수 개개인은 금메달보다 훨씬 빛나고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은퇴한 금메달리스트들이 삶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는 열정과 워크에틱workethic, 배짱, 회복탄력성, 창의성과 적응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노력을 통해 스포츠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본 경험을 다른 분야로도 옮겨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죠.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그녀는 스스로 만든 장미란 재단을 통해 선수 멘토링,의료봉사, 장학금 지급, 소와계층 봉사 등 은퇴 후 삶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어찌보면, 선수들에게 진짜 경기는 올림픽 이후일지도 모릅니다. 올림픽 폐막식은 이제 겨우 예선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고 진짜 본선은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법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응원해야 할 것은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 하나하나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스포츠에서 이룬 어마어마한 성과의 원동력이었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경험들이 일반인으로서의 삶 속에서도 십분 발휘되기를 열심히 응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올림픽 선수들처럼 성취와 좌절의 싸이클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항상 지금의 성공보다 더 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슴 속에 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중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심리학의 결론 :
진짜 금메달은 우리의 삶 속에 있다!



*참고자료

-"The dark side of going for gold",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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