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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묘 May 20. 2022

이 시대의 비교양인들을 위하여

당신은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얼마나 당당하게 의자에 앉을 수 있는가?

파리에서 돌아오기 전, 퐁피두 센터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4층에 있는 전시실을 대충 둘러보기만 해도 강의록과 논문의 참고문헌에서 본 작품들이 무더기로 전시되어 있어 감탄하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나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조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였는데, 그건 내가 아주 희미하게 그 작품의 사진을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작품인 이 작품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있다. 실물 의자와, 그 의자의 사진과, 의자의 사전적인 정의를 프린트하여 벽에 붙여 놓은 판자. 세 개 모두 우리가 '의자'라고 부른다는 점이 이 작품의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조셉 코수스, <하나와 세 개의 의자>, 1965, 퐁피두 센터.



 여하튼, 그중 전시되어 있는 '의자'는, 위의 사진으로부터도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정말 평범한 의자처럼 생겼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레디메이드 작품이기 때문에 저기 전시되어 있는 의자가 실제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앉는 의자와 별반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아저씨가 이 의자에 실수로 앉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슨 미술 개념 설명 교양서적에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올만한 이야깃거리가 내가 보는 앞에서 일어났다. 누군가가 정말로 그 의자에 앉아버린 것이다. 심지어 꽤 오래 앉아있었다. 저게 작품이라는 걸 앉아있는 사람에게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관리인 중 한 명이 그 광경을 목격했고 아주 친절하게 이 의자는 작품이니 앉아계시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앉아있던 관람객은 놀라고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해프닝은 그렇게 소소하게 마무리되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도 넘게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럼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이제와서야 쓰는가? 그건 바로 내가 오늘 테이트 모던에서 그 관람객이 하지 않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무제, 2019, 테이트 모던?


과연 이 의자가 작품일까 아니면 그냥 벤치일까?


순간적으로 퐁피두 센터의 개념미술작품에 당당히 앉은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혹시 내가 여기에 생각 없이 앉았다가 누군가가 나에게 정중하게 일어나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이래 봬도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그런 창피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저 벤치가 작품이 아님을 98% 정도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Untitled, Jane Doe, 2019, Wood.' 같은 것들이 적혀있는 네임카드가 붙어있지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아주 다행히도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는 절대로 확신할 수 없다. 소변기가 좌대에 올려져서 예술작품으로 전시되는 곳이기에. 뒤샹의 샘의 복제품을(이걸 진품 가품 구분하는 것도 나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예술작품이니까 당연한 건 맞지만 레디메이드 작품인데?) 유리 박스 안에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나는 한편으로 안심했다. 저걸 그냥 바닥에 뒀다가 누군가가 정말로 저기에 소변이라도 보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아는 체를 하고 싶어 한다. 아는 체를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나만 해도 그렇다기 때문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고, 지성인처럼 보이고 싶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 교양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그리고 현대미술관을 불편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눈앞의 물건이 왜 예술작품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일단 이게 전시되어 있으니 작품은 작품일 테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다 '저 것'을 보고 감명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뭔가 대단하긴 한 것 같은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고, 그냥 미술관의 모든 게 나를 바보게임의 바보로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적 감각이 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전공 수업을 듣고 미술관에 간 나도 모르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는 뭘 느껴야 할지 늘 고민한다. 사실 아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진품의 아우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또 다른 글로 써야 할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둬야  것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무수한 많은 사람들도 대부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며 작품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대 미술관에 가서 당당해지란 소리다. 위대한 화가의 이름을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다. 실수로 작품 위에 앉아도 상관없다. 교양이  떨어지면  어떻단 말인가. 우리가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유는 즐거운 오후를 보내기 위해서이지 가면을 쓰고 교양인인  연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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