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콧구멍에 바람 넣으러

이왕이면 세상에서 가장 맑은 공기가 있는 스위스에 가자.

by SENAKIM

글을 시작하며

나에게 여행이란?
나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누가 질문하기 전에는 딱히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여행이란?이라고 질문을 한다면
“좋은 거, 재밌는 거, 쉬는 거, 새로운 거. 암튼 다 좋은 거!”라고 이야기할 뿐 어떤 철학적인 의미를 담지는 못하겠다.
오히려 여행이란 키워드를 들으면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땠는지, 여행 스타일은 어떤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여행 스타일이라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나는 여태 살면서 뭘 엄청나게 꼼꼼하게 계획하고 해 본 일이 없다.
입시부터 취업, 그리고 회사 일에 이르기까지, 뭐든지 꼼꼼한 계획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편이다

음… 아예 계획이 없지는 않지만, 꼼꼼한 계획 없이도 여태 잘 살아왔다.
물론 꼼꼼한 계획을 했다면 더 잘 살았을 수도 있지만, 일단 계획을 짜 볼까? 하는 순간 너무 일이 커 보이고, 하기 싫어졌다.
일을 하긴 위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성격이 여행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여행 계획을 짜려는 순간, "아, 귀찮아. 그냥 가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여행지에서도 무작정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즉흥적인 만남을 즐긴다.
이런 만남들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내 인생에 있어서 그나마 계획적으로 한 것은 1년에 1 해외여행이었다.

1년에 1 해외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별거 없다.
월급을 받는 진짜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싱가포르이었다.
에이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퉤! 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첫 회사를 퇴사했다.
뒷일은 생각 안 하고 그만두게 된 회사라 한…1~2개월 재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머리숱이 반 토막 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기 때문에,
빈 머리숱과 나의 영혼을 채워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 쌈짓돈을 다 써버리기로 결정했다.
내 머리털을 가져간 그 회사의 돈을 내 통장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싱가포르이었다. 딱 그 정도의 예산이었다.
싱가포르 여행 메이트는 대문자 J인 친동생이었다.
동생이 얼마나 J나면 그 더운 날씨에 여기저기 다른 콘셉트로 사진을 찍겠다고, 바리바리 갈아입을 옷을 챙겨가는 멋진(?) 친구다.
결국 물이 콸콸 나오는 사자장 앞에서 딱 한번 대판 싸우기는 했지만 꽤 괜찮은 여행메이트였다.
덕분에 내돈내산 첫 해외여행은 나름 성공적이었고,
낯선 것들이 나를 채우는 느낌, 일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느낌,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 여행에서 “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1년에 1 해외여행을 가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커리어를 쌓고, 1년에 (적어도) 1 해외여행은 꼭 지키면서 살아왔다.

어떤 점이 이 계획을 꼭 지키게 만들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 외에 다른 취미는 단타로 경험 삼아 이것저것 하다 보니 뭔가 제대로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여행을 가면 물리적으로 일 그리고 속세(한국)와 단절되면서 근심 걱정을 털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언제든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앗! 제가 지금 해외에 있어서요. 나중에 확인해 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라는 핑계는 아직 유효하다.
암튼 나는 여행을 일과 나를 분리하는 용도로 사용해 왔다.

1년 1 해외여행을 잘 지키면서 가끔은 1년 2~3 해외여행도 했다.
그런데 2019년에는 왜 때문인지, 다른 때 보다 더 격렬하게 여행을 가고 싶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2주간 방학을 준 덕분에 태국 치앙마이에 가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과 다낭에 가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동네 뒷산만 올라도 몇 날 며칠을 근육통에 골골거리던 내가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을 등반하고,
2019년 12월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자 코로나 대환란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대문자 J인 여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우리끼리 가족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병균을 퍼뜨리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아 눈치를 보면서 콧등에 강원도 바람 냄새만 묻히고 돌아왔다.

이것으로는 모자라다. 나는 멀리멀리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서 일과 단절되고 싶단 말이다!

그 무렵 나는 좀처럼 기쁘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회색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는 코미디 프로를 봐도 웃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희극 배우들이 참 애쓴다.. 고생한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다.
뭘 해도 즐겁지 않음과 동시에 아무것도 안 하면 무슨 일이 날 것처럼 불안하다.
실제로 집중도 못하고, 생각이나, 일을 하기에는 몸은 계속 에너지가 없어서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와서 며칠이고 해가 뜨는 것을 마주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 자신을 소홀히 대해온 그 긴 시간 동안 마음의 병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수년 동안 불필요한 파일이 무분별하게 쌓여 용량만 과다하게 차지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내 마음속에도 짝이 맞지 않는, 쓸모없는 조각들이 무심코 쌓여 있었다.
이 불필요한 조각들이 점점 마음을 가득 채워,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일 여유가 점점 없어졌다.

나에게 여행은 그런 조각들을 비우고, 신선한 에너지를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치 컴퓨터의 디스크 조각 모음과 휴지통 비우기를 소홀히 했던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소홀히 했고, 그 방법조차 잊어버려 마음의 병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처음엔 내가! 핑크색 인간이었던 내가 왜!!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여행처럼 물리적으로 단절된 기회가 아니면 일과 나를 분리할 줄 모르는 30대 중반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온 것은 이제 보면 너무 당연하다.
그냥 아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던 짝이 맞지 않는 조각들이 와르르르르르 존재감을 드러낸 것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병을 “우울증 혹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렀다.
감기에는 쉬어야 하는데, 휴가는 절실했지만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마음도 넉넉하지 않았다.


2022년 봄부터 사람들은 슬슬 해외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동생도 밀어두었던 신혼여행을 갔다.
2022년 12월 리프레시 휴가를 받았다. 받을 때는 기뻤지만, 뭘 해야지!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준비가 귀찮아서, 에너지가 없어서, 여행을 떠올려도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살기는 싫어! 어디든 가자! 대자연으로!!! 가 이 여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