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5.

2024를 마무리하고 2025를 시작하는 이야기.

by 윤윤당

브런치의 글쓰기 페이지가 이토록 하얬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인 즉, 글을 쓴 지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이야기다. 꾸준히 뭐라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활자를 다루는 사람에겐 활자라는 건 좋고 싫고 나쁘고 즐겁고 모든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어서 '써야 하는' 순간이 맞지 않으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더라 글 쓴 게. 2023년 11월이 끝이었군. 1년 하고도 두 달 만에 이렇게 글을 쓴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냐고 얘기하자면,





1. 팀이 바뀌었다.


내가 가족들과 주변에 말하기를, 회사에서 내가 속한 팀이 바뀌었다는 건 단순한 팀 이동이 아니라 이직만큼의 규모를 가진,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프로덕션, 제작팀의 카피라이터로 입사해서 슬로건, 헤드라인, 스토리텔링, 스토리보드, 콘텐츠 기획 및 제작, 보도자료 등 글 관련 작업들을 해왔는데, 팀 이동을 하면서 이 모든 업무에 '기획 전략'이란 단어가 추가됐다.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모든 제안서의 전략과 기획을 맡고, 팀에서 짠 전략과 기획을 토대로 필요한 슬로건이며 스토리텔링이며 크리에이티브를 도출해야 하는 작업을 하는 거다. 그러니까, 제작보다는 기획 쪽의 비중이 훨씬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팀 이동에 대한 만족도를 체크한다면,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지금은 말이다.)


제작팀에 있었을 때 업무 진행 순서나 과정에 늘 의문과 불만이 같이 공존했는데, 이 모든 걸 지금의 팀이 다 상쇄시켜주고 있으니까.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제작팀은 늘 모든 시간의 끄트머리에 급하게 투입되고, 막힌 부분을 뚫어주는 뚫어뻥 역할을 해왔었다. 적어도 맥락이라는 걸 알면 작업하는 것도 수월했을 텐데, 업계 사람들은 알 거다. 그걸 알려줄 시간이 어딨냐, 일단 해라, 설명해 주긴 할 건데 우리도 자세히는 모른다, 파악과 해석은 알아서, 그런데 여기에 이런 걸 더 붙여주면 좋겠다. 마치, 오분 대기조 같은 활동에 개선해 달라고 이야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소통이 되지 않으니 권태기와 회의감을 느끼며 직무를 잘못 선택했나 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는 앞으로의 성과 달성을 위하여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실행했고, 두 차례의 면담 끝에 나는 팀을 이동해야 한다는 명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세 명, 지금은 한 명 더 추가하여 네 명이 된 우리 팀은 팀이 바뀐 12월부터 이번 연휴 전까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열심히 달렸다. '팀의 방향이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야..?'라는 숱한 고민을 하면서도 일단 지금은 어떻게든 하고 보자며 우리끼리 해결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빨리 끝내보자고 야근도 불사르고 의기투합도 하는, 바쁨의 강도가 남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하는 게 즐겁다고 해야 할까.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고. 권태기가 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정말 신이 난다. 나한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 브런치에 발행한 글 중, 내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그림을 그려서 전개했을 때 이야기가 이어져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는 판을 짜는 사람이라고. 이걸 한 단어로 요약해 본다면 '기획'인데, 그 길을 2024년 말이 돼서야 내딛기 시작했다. 커리어가 꼬이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뇨. 꼬이는 게 아니라 확장되는 겁니다. 이전까진 제너럴리스트였다면 지금은 스페셜리스트의 제너럴화가 맞지 않을까. 뾰족한 것을 들고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는 것. 불가항력 때문에 갈 수 없는 영역은 있어도 가보지 못한 곳은 없을 거라는 그런 것. 그런데 쓰다 보니 느낀 건데, 카피라이터 됐다고 알렸던 지난 1년 반 전 브런치와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연휴가 끝날 시간이 20분도 채 안 남았으니 아쉬워서 그런 거라고 해야겠다.




2.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덕질을 하게 되면 내가 하는 활동이 덕질 대상에게도 알려져서 한번이라도 은총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 한번쯤은 하기 마련인데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내 덕질 대상에게도 아마 알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큰 경험을 하게 됐다. 바로, 아티클을 기고했다는 거다. 살다 살다 내가 이런 날을 맞이하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아서 내가 쓴 아티클을 최근에도 디시 봤고 아까 낮에도 다시 봤는데, 정말 신기했다. 내가 이런 글을 썼어? 하고.


글을 읽은 주변의 반응은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 콘서트 빨리 가고 싶다, 이번에도 티켓팅 파이팅이라는 덕후 친구들 그리고 이렇게까지 열정이 있다는 게 대단해, 콘서트에 다녀온 것 같다, 신기하다 말하는 평범한 지인들.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게 사실 쉽지 않은데, 다행히 수위 조절을 적절히 한 덕분에 모두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뿌듯했고...


더불어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좋아함의 정도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알게 됐다는 거다. 여전히 빠순이라 불리며 욕을 먹는 현실 앞에서, 예전 같으면 숨겼을 텐데 지금은 전혀 굴하지 않고 나의 존재를 떳떳하게 알린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고 멋진 행동인지. 그리고 이 행동이 양분이 되어 '나'라는 인간을 한층 더 인간다운 사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창피해서 숨겼다면 전혀 모르고 지나쳤을 중요한 순간이었다.


덕후를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열정'이 맞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뜻하는 열정을, 요즘은 열정페이에 열정만수르 등에 쓰이면서 단어의 뉘앙스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지만, 열정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힘이 한 사람의 시야와 역량을 어디까지 넓히고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도움이 안 될 수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 덕후를 다시 정의해 본다면,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의 힘을 통해 개인의 삶을, 더 나아가 사회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한 덕후'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이제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덕후고, 그게 자랑스럽다고.






팀이 바뀌어 바쁘게 지내는 일개 덕후의 일상이, 2025년엔 또 어떻게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예상한 대로 가지 않는 게 삶이라고, 전부터 버라이어티한 일상을 즐긴다고 말했던 나의 입방정이 조금은 미워지려 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즐기라는 것처럼, 어쩔 수 없네 하는 마음으로 잘 맞이해보려고 한다. 뭐, 미미하게나마 뭐라도 되어있지 않겠어요?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