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송 A

by 림이

성모송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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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는 짧아서 미사가 끝나고 난 뒤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깊은 만큼 차가워진 밤 공기에 신도들은 서둘러 성당을 빠져나갔다. 걸음이 느린 초로의 사내가 홀로 덩그러니 남아 성모마리아상과 마주했다. 모자를 벗고 짧게 묵념한 그는 다시 예의 그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을 디뎠던 곳에 나도 따라 서보았다. 가지런히 모은 손, 눈을 감은 여인, 차분한 미소. 그녀에게 나는 ‘오늘도 무사히’라고 빌었다. ‘구원’이나 ‘자비’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오늘도, 무사히. 짧은 어절의 조합만큼 간단한 것이다.
아니다. 사실 나의 바람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무사히 보내는 하루라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그리 손쉬운 게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을 때면 괜히 심술이 나곤 한다. 누구에 대한 심술인지는 알 수 없다. 이건 내가 신을 믿기로 마음먹기 이전부터 느꼈던 감정인데, 과거의 나는 누구에게 어리광을 피웠던 걸까.


만약 10년 뒤에
ㅡ 박영수가 죽었대.
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잠깐 고민한 후
ㅡ 누구?
라고 되물었을 것이다.
2년 전 나는 그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꽤 흥미로웠던 터라 이후에도 그가 번역한 책을 읽거나, 다음 강의 소식을 듣고 시간을 맞춰보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인연이라고 부를 만큼 별다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은 흔한 이름과 함께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ㅡ 얼마나 답답했겠어.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양반이 해양 뭐시기 그런 데서 연구를 하고 있으니. 형 대신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지만. 박영수 그 사람은 친구도 없어. 우리 협회에서도 박교수 번호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거야. 그 양반 술도 안 마시고, 사람도 안 만나고. 책 읽고, 담배만 주구장창 피웠지. 그래도 자기 형은 책이라도 많이 썼지. 허탈한 거야. 박영수 교수 소식을 듣고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A는 학자가 되지 못했다. 석사 과정을 밟던 중 돌연 공부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어쩌면 A는 애초에 학자 따윈 꿈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기 싫었던 날 A는 영화관에 들어가 아무 영화나 봤다고 했다. 그 이후 A는 현실이 피로해질 때마다 영화관으로 도망쳤다. 나이가 들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겼을 때, 배운 것이 영화뿐이었던 A는 평론가가 되었다. 아니,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배운 것이 영화뿐이어서 평론가가 되었는데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밥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철없는 딸의 학비와 노쇠한 아버지의 치료비를 동시에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 달을 벌어 쓰면 다음 달에 쓸 돈을 다시 벌어야 하는 일상의 반복. 20년째 영화로 밥을 먹고 산 A에게 영화관은 더 이상 도피처가 되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술 한잔하자’는 A의 제안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A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A가 나를 잊어준다면 가장 좋겠다 싶었다.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 애인의 절친과 만나는 게 편할 리 없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나는 여전히 지나간 인연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단지 변명일 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오늘도, 무사히. 짧은 기도에는 A와의 만남이 상처 없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실수로라도 A의 입에서 전 애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행여 그 이름이 나오더라도 제가 침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끝에 제 맘이 소란스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A를 만나러 오기 전 나는 그렇게 빌었다.
ㅡ 주님이 너를 불렀다니 기쁜 일이네. 네가 성당에 잘 다녔으면 좋겠다.
주님이 나를 불렀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이 어색했다. 성당에 찾아간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른 것이라고 말하는 건 기독교 신자(信者)들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A가 교회에 다닌다는 걸 떠올렸다. 우리는 한참동안 개신교와 천주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A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나는 아직 신앙이라고 부르기엔 미숙한, 내가 신을 믿으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조급함, 불안함, 외로움, 절망. 나의 말엔 그런 단어들이 뒤섞여 있었다. A는 담담한 말들로 나를 안심시켰다. 맘에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에 A의 말은 진심으로 위안이 되었다. 평화로운 대화였다.
불편한 마음에도 A를 만난 이유는 피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아니라,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비겁함이었다.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A가 나를 만나는 걸 포기하게 된 이후에 어디선가 ‘걔는 예의가 없어’라는 말이 나올까 봐 무서웠다.
기우였다, 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사람은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 한다. 나는 죽은 박영수 교수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내가 먼저 전 애인의 안부를 물은 것은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진심을 드려다 본다면 A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한 욕심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ㅡ 그럭저럭 잘 지내.
라는 말. 하지만 A는 역시나 맘에 없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ㅡ 걔 계속 상태 안 좋아. 너만 헤어졌냐고, 뭘 또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말해도 안 들어먹어. 주변 사람들이랑 관계도 많이 틀어졌고. 그렇지 뭐.
평화는 순식간에 깨졌다. 숨기지 못한 표정이 새어 나왔을 것이다. A는 나의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ㅡ 헤어진 지 1년밖에 안 됐잖아. 1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지. 근데 너 만약 자책하고 있다면 그러진 마. 그건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만 울고. 그냥, 종종 걔를 위해 기도해줘.

오늘도 무사히. 그 어떠한 구원이나 자비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