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산북(山北)에서 산남(山南)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간은 오전 열시 반. 회색빛 섞인 구름이 낮게 깔려있다.
들판 너머 보이는 게 바다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니, 하늘이다. 경계라고 할만한 것들은 사라지고 없다.
C는 나에게 파란 그림을 선물했다. 손바닥 위에 올라갈 만큼 작은 그림이었다. 물기 있는 그림을 좋아해요. 흘러가듯 말했던 짧은 감상을 C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맑은 하늘에 물을 머금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직사각형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림을 받은 지 1년이 훌쩍 지났고 그 사이에 나는 C와 멀어졌다. 문득 그림을 꺼내보았는데 손바닥 위의 푸르름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늘이라 생각했던 게 일렁이는 바다인 것도 같고, 눈송이라 생각했던 것이 파도가 부서진 조각인 것도 같았다.
언젠가 나는 C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 옆엔 C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다 생각했던 마음이 ‘언젠가’로 시작해 ‘없다’로 끝나는 문장만큼 맥 없이 정리될 수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사랑에 관한 대부분의 것을 처음 나눴던 C였기에 첫 이별의 대상 역시 그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여태 먹먹하다.
신을 믿는 C의 오랜 친구는 내 감정에 대해 듣고서
ㅡ 그만 울고. 그냥, 종종 걔를 위해 기도해줘.
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C가 마음 편한 날을 보내기를 기도했다.
섬의 남쪽엔 강정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 오래도록 제주에 살며 마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입으로 말했다.
ㅡ 강정의 싸움은 끝났어요
국책 사업, 불가능, 정신적 상흔, 동력, 파탄난-끝난 싸움. 그런 단어들이 대화 드문드문 흘러나왔다. ‘끝났다’라고 단정 짓기 까지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고 무엇을 단념해야 했을지 나는 도통 짐작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을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남아있는 이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는지.
C를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고 맘 먹을 때 즈음 기도문 하나를 새로 알게 되었다. 저마다 입에 맴도는 기도문이 있다던가. 나에겐 성모송(聖母誦)이란 이름의 기도문이 그러했다. 곤란을 겪을 때면 나는 마치 주문처럼 성모송을 외고 있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문장이 특히 편안했다.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말이.
나는 매일 밤 기도했다. 오늘의 끝에 C가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C의 내일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아멘.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깨달았다. 기도의 끝에 남는 것은 C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가 떠나온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걸 떨쳐내기 위한 기도. 내가 편안한 밤, 나의 평화로움. 나의 기도는 위선적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다 위선적인 자기기만 아니냔 말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비는 마음이라니. 그런 건 성모마리아님 정도 되어야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한낯 인간입니다. 그런 제가 C를 위해 기도 한들, 빌어본들 그게 정말 그를 위한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제가 어리석기 때문입니까? 제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누군가 그건 욕심이라 면박을 주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의 산을 둘러둘러 도착한 곳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이 아니라 도로 옆에 쳐진 천막이다. 그 아래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의 바람이 분다. 천막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을 맞으며 진행되는 미사라 할지라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신과 함께 노래하고, 기도한다. 매일 오전 미사가 열린다고 했다. 매일, 사람들은 모여 마음을 모은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나는 계속하여 되묻는다.
미사가 끝나갈 즈음 백발의 신부는 자신의 자리에서 몇 발자국 걸어나와 바다가 있는 곳을 향해 외친다.
ㅡ 강정의 평화…! 강정의…! 평화…!!
개인과 집단과 국가는 권력과 돈으로 엮여 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가져가는 게 현실적인 가치라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자연과 마을 공동체를 지키겠다던 목소리들은 덧 없었던가. 덧 없다 할 수 있었던가. 덧 없이 끝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들이 존재했던가.
나이든 신부의 외침 뒤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강정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는 신자들을 바라본다. 문득 ‘비념’이라는 제주 방언이 떠오른다. 작은 굿을 뜻하는 그 낱말을 누군가는 ‘비는 마음’이라 해석했다. 그 단어가 이미지가 된다면 저런 얼굴들일지도, 소리가 된다면 저런 외침일지도. 자신의 뿌리가 닿아있는 땅에서 현화(現化)한 단어는 아릅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름이 땅과 가까운 곳으로 내려와 모든 경계가 흐릿해진 섬에서, 눈 앞의 것이 바다이든 하늘이든 그 자체로 먹먹해진다. 훗날 비는 마음이란 것을 또 다시 깊이 원하는 때가 온다면, 어쩌면 내가 떠올릴 순간은 이 곳, 이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지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