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에게 끓여준 미역국

근데 이제 아빠의 정성을 많이 곁들인

by 치원
2주 전 쯤이었나,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6월 11일 무슨 날인지 아나?"

"6월 된 지 11번째 되는 날요"

"엄마 음력 생일이다. 그 날 일정 다 비워라"




사실 우리집은 생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 엄마가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놓는 날이면 오늘 누구 생일이냐고 물을 정도. 이런 집안 문화에서 자랐으니 생일선물로 대단한 무언가를 받아본 기억도 없다. 경상도 집안에 아들만 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오신 맞벌이 부모님. 그러니 가족행사 자체가 희귀하고, 있어도 무뚝뚝하게 흘러가는게 자연스럽다. 심지어 난 초등학생 시절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이틀 전이 내 생일이었단 걸 깨달은 적도 있다.


이런 바위같은 우리 집에서 생일을 조금씩 챙기기 시작한 건, 내가 고등학생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은 대학에 다니고, 나는 기숙사에 살고, 아빠와 엄마는 맞벌이를 하니 '가족이 이래서야 되겠나!'라는 위기감에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봐야 저녁에 다 같이 모여 밥 한 끼 같이 먹는 정도였지만, 나름 장족의 발전이었던 것 같다. 4인 가족이지만, 넷이 모여 밥을 먹기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으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 아빠가 퇴직을 했다. 엄마는 갱년기가 올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생각하기엔,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에 비해 집안이 너무 개판이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갈등이 많아졌다. 나와도 당연히 갈등이 많아졌다. 심지어, 나와 엄마는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엄마와의 관계는 심연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 우리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달라진 것은 아빠가 가정적으로 변했다는 것. 먼저 나서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시는 모습을 자주 본다. 두드러진 변화는 대화법에 있었는데, 원래 우리집 대화란 아래와 같았다.


"오늘 회사에서... (일이 터졌다는 내용) 어떡하지? 하..."

"OO가 잘못했네! 너도 거기서 그러면 안됐고! 그럼... (해결책을 설명)"


공감이나 웃어넘기는 건 대체로 없고, 모든 걸 다큐로 받아들이고 조언을 하는 대화랄까. 말을 꺼낸 사람이 바라는 것이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일 때도 말이다. 이렇다 보니, 허구한 날 대화하다 싸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가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 절정이 이번 엄마 생일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틀 전, 아빠는 나에게 내일 일찍 일어나야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일 때마다 엄마에게 미역국을 받아먹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만들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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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당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빠는 어디선가 본 레시피대로 여러 재료를 사놓으셨다. 일단 나도 도와야하니까, 아빠한테 물었다.


"레시피는 어디있어요?"

"미역 포장지 뒤에 적혀있던데?"

"...?"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요리였다. 이 정도 미역이면 불렸을 때 적당할 지, 간장과 액젓은 얼마나 넣어야하는지... 그저 내 태블릿 속 백종원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사실 한 솥이나 끓일 생각이라 계량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감에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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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고 바로 밥 먹는 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사진이 없어 반 쯤 먹은 사진을 올린다. 엄마는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며 좋아했다. 생일 서프라이즈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쉽게도 이 날은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아침만으로 특별함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점점 특별하지 않아지는 당신의 생일에 따뜻한 새로움을 줄 수 있어 좋은 날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모든 아름다운 일들이 아빠에 의해서 이뤄진 것 같다. 그러나 엄마 또한 항상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잠시 어두웠던 집 내 분위기는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마침내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항상 서로의 편이 되어주고, 가장 힘들 때 가장 믿어주는 사이가 가족이니까.


앞으로는 아낌을 아낌없이 내색하는 가족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