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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Nov 16. 2024

알코올중독 판정을 받았다

처음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땐 부정하고 싶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즐기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매일 먹게 됐고 나중엔 술을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더 나중엔 감정 표현도 힘들어졌다. 술을 먹어야만 웃고 울 수 있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남들도 다 나처럼 버티며 견디며 살아내는 줄 알았다.


각종 안정제와 항우울제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수면제를 먹으며 잠에 드는 줄 알았다. 이따금 팔다리에 상처를 내며 숨을 크게 쉬는 줄 알았고, 종종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포에 휩싸여 발작을 일으키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들 술을 먹는 거라고 생각했다.


창문을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고민하다 밀린 업무에 등을 돌리고 일을 해 계속해서 성과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들 술을 먹는 거라고 생각했다.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먹는 약을 며칠 먹으니 정말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술 없이도 하루가 가는 게 신기했다. 만취한 채 구토하고 약을 먹고 겨우 눈을 붙여야 다음 날이 오는 줄 알았는데 제정신으로 눈을 감고 내일을 맞이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술을 목구멍으로 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열몇 개의 약을 먹고 출근해 못 견딜 것 같아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담배를 피우며 입을 막고 울다가 병원으로 곧장 달려가 아티반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 상사는 ‘네가 무슨 우울증이냐’고 웃으며 의아해했다.


충동성이 강해 폐쇄병동을 권유받은 나는 권리 고지서를 작성하고 나왔다. 엉망이 된 팔목이 부끄러워졌다. 이 모든 게 그 사람 탓인 것 같아 울었다. 이 모든 게 결국엔 내 잘못인 것 같아 울었다.


밀린 업무로 입원을 미뤘다. 지금은 대기 취소를 했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지 모르겠다.


보고 싶은 사람이 몇몇 있으나 볼 수 없는 이들이었다. 나는 늘 그랬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했다. 내 선택은 늘 옳았다. 그래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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