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연출, 낯설다 너.

헤드샷 말고 오버헤드샷

by seoA

※ 본글은 영화 [하얼빈]의 스포일러/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이마다 다르지만, 체감상 6~7세까지의 아이들은 글을 온전히 읽을 수 없다. 옆에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잘 보면,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당연히 글을 읽고 문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따라서 소설책에서 작가의 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서포트하기 위한 삽화와 동화삽화는 글과 그림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있어 차이가 있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고려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림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풀고 내용을 쓸 때 했던 고민들도 앞으로 차차 적어보려 한다.


나를 포함해 사진이나 영상을 공부한 학생들은 아주 기본적으로 영상촬영 기초,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스토리보드, 색감연출 기초 등을 배운다. 내 경우에는 학과특성상 각종 그래픽툴을 다루는 법이나 원화 그리는 수업 같은 것들도 들었었다. 때문에 영화를 한편 볼 때도,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연출이나 화면구성 등을 나름대로 살피면서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리 혹평을 받은 영화라도 사소한 부분에 숨어있는 감독의 고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워낙 바쁘다 보니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작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하얼빈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후기를 보니 제법 혹평이 많아서 놀랐다. 계절감을 잘 살린 미장센, 담백한 화면연출 등이 맛깔났다고 생각한 나와 여러 사람들과 달리 관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옛날방식의 연출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떠오르는 정갈한 대칭구도


하얼빈은 전체적으로 컷 전환이 아주 적은 영화인데, 풀샷, 롱샷 등의 화면 구성 전체를 볼 수 있는 샷을 주로 사용한다. 보통 대화를 하는 장면은 말하는 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비추면서 대화상대의 어깨를 화면에 걸친 OTS샷을 주로 사용하는데, 하얼빈에서는 아주 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도 인물의 얼굴이나 표정을 비추지 않고 두 사람을 함께 잡은 화면을 오랜 시간 가만히 놔두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대화하는 장면에서 어떻게 구도를 잡아야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히 제삼자의 시점에서 마치 그 공간 안에 내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줌으로써 오히려 훨씬 영화에 깊게 빠져들 수 있는 연출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우민호 감독의 2020년 작품 '남산의 부장들'에서 인물 간의 타이트한 감정변화에 따라 빠르고 풍성하게 촬영된 짧은 샷들이 그 증거이다.


이토히로부미 저격 장면. 약 25초 정도

나는 담백하고 정갈한 연출을 선호하는 편으로서 아주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 중 하나가 이토히로부미를 총으로 쏘는 장면이었는데, 여기서 반응이 많이 갈린 듯하다.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영화의 절정에서 감독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이토히로부미의 얼굴도, 러시아군에게 끌려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처절한 안중군의 얼굴도 아닌 상공에서 바라보는 overhead shot을 사용해 혼란에 빠진 하얼빈 역사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나는 이 장면의 아름다운 연출에 입을 틀어막았는데, 눈 덮인 새하얀 하얼빈역, 무채색의 정장을 입은 군중들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의 조화 때문이었다. 앞 장면에서 레드 카펫을 따라 걸어오던 이토히로부미가 레드카펫의 '끝지점'에서 사살당하는 장면은 영광스럽게 여기던 그의 걸음을 끝맺음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총에 맞아 흐르는 붉은 피를 보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죽음을 알리는 붉은색으로 다가왔다. 또 이토히로부미를 부축하는 노란 코트를 입은 일본군과 안중근을 연행해 가는 파란 코트를 입은 러시아군을 통해 각각 이토히로부미와 안중근에게 직접적인 색을 입히지 않았음에도 그 둘에게 시선을 완전히 집중시키는 연출이 일품이었다. 옛날방식이라는 어떤 이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세련된 연출이다.


이러한 영화연출을 좋아하다보니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정지된 이미지, 텍스트가 포함되어있고 결정적으로 한 장면, 한 장면이 성경적인 동화를 만들고 싶은 나는 이러한 동화책 안에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게 낯설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민은 어떻게, 어디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지 계속 적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