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성이 휘청거릴 때, 일상툰을 처방해 보기

서찬휘의 만화 살롱 #20

by 서찬휘
1583224028217384.jpg 일러스트. 서찬휘×헤니히


코로나19의 위세가 아직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우리 아이는 방학에 들어선 그대로 집에 눌러 앉게 됐고 엄마 아빠도 자연스레 그에 맞춰 오랜 가정 보육에 돌입했다. 그나마 프리랜서인 입장에서야 집에 애가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게 버거울지언정 못할 일은 아니지만 장기간 재택근무에 사실상 처음 맞닥뜨린 ‘일하는 부모들’의 비명 소리는 갈수록 예사롭지 않다. 역병의 전파와 감염 방지를 위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점검하고 제약해야 하는 이 시기는 어쩌면 이후 사회의 작동 원리와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시기,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순식간에 정신줄이 탈탈 털려 나가기 십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사소하게 흘러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이 새삼 소중해진다. 세상이 어떻게 드라마틱하고 블록버스터마냥 터져 나가도 결국 그 속을 살아가고 있는 건 ‘나’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보면, 누군가의 ‘일상’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만화에는 이런 소재들을 담은 일상툰, 생활툰이라는 장르가 있다.


일상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회


만화가 종이에서 모니터로 무게를 옮기기 시작하던 시기, 만화가 만난 소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나’의 일상이었다. 물론 종이 지면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도 일기나 카툰 에세이라는 형태로 작가의 생각과 감성을 전달하는 만화들은 당연히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일상툰이나 생활툰이라는 형태가 대중 사이에 다량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건 만화가 웹 공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웹툰의 초기 형태라 할 <스노우캣>과 <마린블루스> 등은 가볍게 열어놓은 자기 공간에 자기 마음이라는 가장 가까운 우물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건네는 방식을 택했다.


일상툰이나 생활툰이라 불리던 만화는 긴 호흡으로 연재하던 만화들이 중심이던 시기에 비해 가볍고 쉬워 보인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만큼 만화가 이야기를 내어놓는 도구로서 사람들 속에 한층 더 널리 보급되었다는 증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일상툰과 생활툰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나’의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웹툰이 강풀의 <순정만화>와 함께 포털을 통해 상업화하며 극을 지향해가는 와중에서도 이런 일상 이야기는 때론 캐주얼한 개그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외피를 빌려 꾸준히 창작되어 왔다. 지금까지도 연재 중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를 비롯해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 등 다양한 형태의 작가 본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인생 변화를 담다


재밌는 건 시간이 흐르며 독자도 작가도 나이를 먹었고 모두를 둘러싼 일상도 변화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혼자였던 사람이 연애를 하면 연애를 만화로 그리고 연애하다 혼인하면 신혼 부부 생활을 만화로 그리며 아이를 낳게 되면 육아를 만화로 그린다. 펭귄의 <펭귄 러브스 메브>, 정철연의 <마조 앤 새디>, 난다의 <어쿠스틱 라이프>와 같은 작품은 혼인과 임신, 출산과 같은 소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독자에게 드러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해 가는 일상을 차근차근 기록하는 이들의 만화의 호흡을 따라가며 읽노라면 재미와 알콩달콩함을 넘어 인생의 한 시기를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있다는 기분을 절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만화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그 동물을 키우는 일상을 만화로 그린다. 종류도 다양하다. 골드키위새의 <우리집 새새끼>는 키우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문조를 키우며 겪는 이야기다. 고양이 키우는 만화로는 SOON의 <탐묘인간>이, 심지어 개와 토끼를 함께 키우는 이원진의 <개와 토끼의 주인>도 있다. 음식을 즐기는 일상이라면 조경규의 <오무라이스 잼잼>이나 야미의 <코알랄라!> 같은 작품들이 있다.


작품과 연재처가 늘어나며 독자들의 호응이 점차 파편화해갈수록 작가들이 끄집어내는 일상 속 에피소드들도 한층 더 파편화하고 깊숙해진다. 마일로의 <여탕보고서>는 개인 일상 속에서 여탕과 얽힌 에피소드들로 주제를 좁혀 특화한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유영의 <열무와 알타리>는 출산과 육아라는 소재에서 아이가 안은 장애라는 이야기로 한 걸음 더 들어간 또 다른 일상 속 화두를 던진다. 가정 폭력과 가정 내 성 차별을 다룬 단지의 <단지>는 2015년 발표 당시부터 문제지만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듯 침묵해 왔던 소재를 자기 경험을 통해 정면으로 고발하며 이듬해부터 격화한 여성 혐오 반대 물결에 작지만 큰 디딤돌을 놓았다.


인스타툰, 초기 웹툰 같으면서 더 파편화하고 내밀한


일상툰·생활툰은 여전히 만화를 도구로 삼는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내밀한 이야기를 작가의 손에서 직접 뽑아낸다. 그 방식이 개그일수도 있고 고발일 수도 있을 뿐, 최인호의 <가족>과 같이 문자 그대로 일생을 다 해 써 낸 연작 자전 소설의 사례가 아니고서야 여타 대중문화에서 쉬 주기 어려운 공동 경험을 장시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느 사이엔가 이 장르에서도 단순한 일기 형식보다는 다소 특징과 콘셉트를 명확히 좁힌 작품들이 많아졌지만, 포털 외에도 SNS인 인스타그램에 이어 포스타입이나 딜리헙과 같은 오픈마켓에서는 한층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며느라기>와 같은 굵직한 히트작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니트 일기> <서늘한 여름밤>과 같은 작품들이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나름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인스타툰’이라는 장르명이 등장할 만큼 많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규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자 반응의 질감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스타툰을 비롯한 최근의 일상툰은 홈페이지에 연재하며 독자를 직접 만들던 시기의 느낌을 다시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포털 웹툰 덧글에서는 작가 스스로가 나름의 페르소나로 감추지 않고서는 조롱을 견디지 못하고 노이로제와 정신병에 내몰릴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아직은 반응이 ‘덜한’ 곳이 있단 점은 참 다행이다.


대명천지에 사교가 역병을 퍼트려 내 일상 자체가 송두리째 뒤흔들릴 것 같은 상황 속에 남이 자기 나름의 일상을 견지해가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나름대로 위안을 준다. 이런 때 한 번 쯤 오랜만에 일상툰, 생활툰 한 번 정주행 해보심은 어떠실지. 덧글은 그냥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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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제목 <일상이 휘청거릴 땐 일상툰을 처방하자>

(2020.03.03. 작성, 2020.03.03. 일요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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