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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Oct 16. 2021

첫번째 중국 여행 2일/9일 (상하이)

* 작성일 : 2017년 5월 29일



 일어나자마자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 몸을 담갔다. 그 옆에는 상하이. 느긋하고 호사스러운 여행의 아침. :)






 오늘은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중국인 친구 Q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Q와의 인연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지만, 한국어가 워낙 유창하기도 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면이 비슷해서 빠르게 가까워진 친구다.  나는 고급 한국어 책을, Q는 위화의 책 원서와 과자를 서로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상하이에 오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팬더를 보러 청두에 갈 생각이라니까 아마 혼자서 다니기 쉽지 않을 거라며 네가 괜찮다면 거기서도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해주었다. 네가 혼자 가게 되면 자기는 너무 걱정될 거라며. ㅡ이 때까지만 해도 엄청난, 또 조금은 부담스러운 친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청두 가서 중국인들끼리도 말이 안 통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나니 충분히 걱정스러울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ㅡ 







 Q와 처음 만나 먹었던 첫 끼. 저 쫀득한 밥을, 위에 얹은 크림에 찍어먹는 건데 무척 맛있었다. 사실 처음 만나기 전 Q와 작은 갈등이 있었는데,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솔직하게 곧장 말하기로 합의했다. 불필요하게 예의를 따지는 건 어렵고, 낭비라고. 한국에서도 좀 고지식한 편에 속하는데, 몸에 밴 말이나 행동이 잘 고쳐질까 싶었었지만 나중엔 완전히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서 너무 편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온갖 인사치레들은 모두 이 사람이 내 말이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 같다. 이렇게 대접하면 기분 나빠할까? 이렇게 말하면 날 속 없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호의적이라는 믿음과 기본적인 예절만 갖춘다면, 관계란 훨씬 쉽고 간단하게 이어질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 








 Q는 상하이의 온갖 관광 스팟을 빠르게 돌 수 있는 길을 모두 외워뒀다.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인민 공원, 인민 광장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사람, 물붓으로 바싹 마른 바닥 위에 멋들어진 서예를 하는 사람, 자식의 신상을 적은 종이를 올려두고 공개 구혼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세 풍경 모두 이미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던 풍경이지만, 실제로 보니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중국인의 활력이 느껴져 좋았다. 특히 Q는 자기도 중국인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자식들을 위한 공개 구혼을 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상하이 박물관은 무료로 개방하는데, 마천루가 번쩍이고 웅장한 명품관이 위용을 자랑하는 국제 도시 상하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면모였다. 뙤약볕에 늘어선 입장 줄 역시도. 상하이 박물관 관람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음은 쑨원 생가엘 갔다. Q가 말하길, 마오 쩌둥을 싫어하는 중국인은 있을 수 있지만 쑨원을 싫어하는 중국인은 없다고 했다. 다행히도 박물관 전체에 중국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Q가 이 때 당시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냐고 물어봐서 일제강점기였다고 대답하는데 약간 씁쓸했다. 


 신천지와 티엔즈팡은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아름다운 조경 외에 서울의 여타 핫플레이스들과 다른 점이 크게 없다고 느껴져서 큰 흥미가 없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잠시 Q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직업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어제 두 한국인과 만나서 내가 느꼈던 점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Q는 주의 깊게 들어주고 또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판이하게 다른 기업문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화였다. 대단히 가족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중국인의 성향. 그리고 경제 성장기에 어떤 국가를 벤치마킹했는지ㅡ한국은 일본을, 중국은 미국을ㅡ를 요점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여전히 많은 한국 회사들이 구성원들에게 사생활의 희생을 강요하고, 개인적인 이해득실에 따라 취한 행동에 질색한다. 중국인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강한만큼 반대로 자기 사람은 끔찍이 아낀다. 어떤 것도 가족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안쓰러운 우리 사회의 가장들 여럿도 그런 생각이 없어서 저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텐데. Q가 다녔던 회사는 야근 일주일 전 리더가 야근할 날짜를 지정해서 메신저로 구성원들에게 참여 의사를 물어봤다고 한다. 시스템에 따라 O/X를 클릭하면 되고, 야근 수당 등은 알아서 지급된다. 내가 깜짝 놀라자 Q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당일날 야근하라고 하면 아마 다들 집에 가버릴 거라고 했다. 그런 한편, 기업 입장에서는 구성원을 해고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 확고한 실력 주의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현재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 몸값을 높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때때로 배신이라는 정서와 함께 언급이 되는 이 일이.  


 한국 대기업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태동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한창 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가 일본 경제 부흥기와 맞물려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특유의 기업 문화를 적극적으로 들여왔기 때문에 일본과의 유사점이 상당히 많다. 하다못해 사람을 뽑는 자기 소개서-인적성 시험-면접의 프로세스조차. 아울러 다양한 층위의 복잡한 존댓말이 존재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응당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회사 내에 수직적 구조가 명확해야 하고 그 결과로 확고한 위계 질서를 갖게 되었다. 불필요한 위계 질서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이 엄청나다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떤 환경에서든 쉽사리 느낄 수 있다. 반면 중국은 경제 성장기에 미국 실리콘밸리의 고급 인력들을 비싼 값에 모셔왔고 성과를 거뒀다. 작고 효율적인 조직, 빠른 의사결정, 수평적인 문화로 대변되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바람직한 기업 문화'로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어와 중국어 모두 존댓말이 거의 없고,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 자유ㅡ중국의 경우, 표현의 자유는 제외ㅡ와 평등을 중시하는 문화적 토양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보니 더 순조로웠을 수도 있다. 수평적 기업 문화를 표방하는 한국의 일부 기업들에서 굳이나 영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Q와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고, 서로의 꿈에 대해 멋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Q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 외국인이 아니라 그냥 이 세계 속의 두 젊은이가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때 나눴던 대화로 Q는 내게 있어 중국인이 아니라, 그냥 Q가 되었다. 




 다음엔 Q가 자주 간다는 한국인 거리(?)에 갔는데 환승을 두 번이나 하고 걸어 걸어 갔더니 상하이 도심에 비하면 꽤 허름해보이는 상가 단지가 나타났다. 간판 대부분이 한글이었다. 우리가 대림역에서 중국어로 된 간판 볼 때의 느낌을, 중국인들은 이 곳에서 느끼게 되려나. 


 Q가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왠지 안 먹어봤을 것 같은 감자탕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 의외로 맛있었다! 해가 쨍쨍한 날씨에 잔뜩 지쳐서도 쉬지 않고 날 위해 바삐 걸어준 Q에게 고마움의 건배-! :) 

 상하이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서울이나 도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실망감이 섞인 인상이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 동안 한국어로, 중국어로 공안, 교통, 역사 교육, 일본, 미국 등등 온갖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그제서야 정말로 한국이 아닌 중국에 와 있는 것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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