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을 맞으며,
2025년 한 해 동안 브런치에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흠칫합니다. 왜 글을 쓰지 않았냐면, 별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에세이를 썼지만, 언제부턴가 내 생각을 공개된 곳에 올린다는 것이 조금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만한 생각을 내놓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이 모든 개인적인 생각들이 인터넷 곳곳에 흩어지고 왜곡되어 나중에는 어떤 약점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게을렀습니다.
만화가 이말년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의 만화를 즐겨봤고, 스무 살 무렵에는 팬으로서 메일을 보내 몇 번 답장을 주고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습니다. 침착맨으로 더 알려진 그는, 유튜버로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주 그의 동영상을 보며 깔깔거립니다.
왜 더 이상 웹툰을 그리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웹툰이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서'라고 답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그냥 떠들기만 해도 이말년 씨리즈처럼 엉뚱하고 재밌는 생각들을 발행할 수 있으니까, 굳이 만화의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저도 작년에는 글쓰기가 아닌 방식으로 저를 표현하며 살았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새로운 창작물들을 만들며 지냈습니다. 쑥스러워 밝히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작년에는 글쓰기와는 다른 방식의 창작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보냈습니다.
브런치에 오래 머물면서, 즐겨 읽던 작가들이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어, 저분 글 잘 쓰시는데 왜 안 쓰지.', '어떻게 지내시려나' 혼자서 중얼거린 적도 많았습니다. 2025년에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잠시 타인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글을 열심히 쓰는 때가 있으면, 또 아예 안 쓰게 되는 때도 있는 법이겠죠.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비롯하여 무엇이든 억지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결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때마다의 이유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는 글을 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안 쓸 때는 안 쓸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누군가와 만나면 만날 이유, 헤어지면 헤어질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작년에는 글을 쓸만한 동력이 없었고, 글쓰기에 죄책감을 느껴가며 억지로 쓰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26년입니다. 브런치에 첫 번째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2016년이니,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20대 중반이던 저는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10년만큼 성장했다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언젠가 글에서 쓴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도 전성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10년 전의 저보다 성숙해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때가 더 성숙했습니다. 아는 만큼 약아지고, 비겁해지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도 진지하게 해야겠습니다.
간만에 글을 쓰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종종 글을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유난하지 않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