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그룹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본사 최상층 회의실은 이미 각 계열사 임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
“부회장님, 이쪽으로.”
비서의 안내에 따라 세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모든 발걸음이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다.
테이블 중앙 자리, 본래 류원이 앉던 자리에 앉자 회의실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임원들의 눈빛은 의심과 두려움,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가 ‘진짜’인지, 혹은 ‘대역’인지. 그러나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신들의 자리도 흔들릴 것을 알았다.
세하는 손끝에 힘을 주며 자료를 펼쳤다.
입술이 바짝 말랐지만, 목소리를 억지로 낮게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긴급 이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가 이어졌다. 경영 보고, 대외 위기 대응, 언론 발표 준비…
세하는 차례로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이미 그에게 ‘말해야 할 대사’를 미리 심어둔 것처럼.
그러나 순간, 시선이 느껴졌다.
테이블 반대편, 류광호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조롱과 흥미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잘하고 있군, 부회장.”
그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가볍게 회의실을 가르렀다.
세하는 한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인정받은 것’일까, 아니면 ‘시험에 통과한 것’일까.
회의가 끝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세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거울 같은 회의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윤세하가 아니라 류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그 순간, 문가에 서 있던 류광호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말하는 듯했다.
“게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 1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