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가?
바야흐로 <대 콘텐츠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어쩌면 싸이월드라는 SNS가 유행했을 저 옛날부터 자신의 등장을 알려왔는지도 모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틱톡과 같이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다양한 플랫폼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플랫폼의 주 이용 세대는 물갈이 되며, 마침내 노인층이 사용하게 되는 순간 청년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 명절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친척 어르신들과 조카들을 보는 듯하다.
나는 IT기업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인 평범한 K-직장인이다. 글쓰기와는 학창 시절부터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주관식 시험문제가 가장 싫었으며, 대학에 올라와서도 논문형 시험을 볼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익숙하지 않은 창작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직장어 와서야 드디어 글을 쓰지 않고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는 코드만 작성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과거의 생각처럼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글쓰기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일을 잘하느냐 판가름이 갈렸다. 일을 할 때에도 과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하는 것, 결국 글쓰기 실력이 필요했다.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공부를 할 때보다 더 많은 글을 적어야 했다. 어려운 도메인 지식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글을 못 쓰는 사람과의 협업은 부상당한 전우처럼 큰 짐이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조금씩 독서와 글쓰기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패션 작가 타이틀을 획득했다.
가끔 작성하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 조회수가 몇 만, 몇 십만이 되기도 하고 많은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게임과 스포츠와 같은 것으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도파민이 차오른다. 자연스럽게 평소에도 어떤 콘텐츠를 작성해야 더 많은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지식 하에서 어떻게 해야 최대한 많은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작년쯤 Chat GPT가 등장하고 블로그, 정보성 글, 리뷰 글과 같은 많은 주제들이 의미 없어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주제만 입력하면 GPT가 모든 내용을 정리해서 써주었고, 심지어 주제도 그 녀석이 추천해 줬다. 사람들은 직접 글을 쓰지 않고 GPT에게 모든 창작의 고통을 맡기기 시작했고 나 역시 이 시기에 딜레마에 빠졌다. 꾸준히 발행하던 글도 잠정 중단했다. 아무리 열심히, 꾸준히 글을 써도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뽑아내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최근 들어서야 이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GPT를 이용하면 양질의 글을 쉽고 빠르게 생산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글쓰기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GPT에게는 "경험"이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은 수많은 노하우와 경험은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GPT는 그 경험을 데이터로 입력받아 학습하여 비슷한 경험을 한 것처럼 글을 쏟아낼 수 있지만, 그 경험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비로소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발견하였다.
다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다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먼저 고민이 필요했다. 다음은 그 고민의 결과다.
1.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
혼자만의 생각과 감정은 일기와 다름 없다. 그런 내용은 일기장에 쓰고, 독자에게 하여금 깨닫는 바와 얻어 가는 정보가 있도록 하자. 그럼 독자는 다음에도 당신을 찾을 것이다.
2. 꾸준히 발행할 수 있는 글
소재가 금방 고갈될만한 주제는 지속이 어렵다. 자신이 가장 익숙한 분야, 많은 경험을 쌓아온 분야의 주제를 선택해야 쉽고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3. 전문성이 있는 글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은 매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글을 작성하자. 혹은 관심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라면 공부하자. 지식을 먼저 획득한 이후에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자.
4. 해가 되지 않는 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글은 해롭다. 당신의 콘텐츠는 세상에 남는다. 이 디지털 세계에 남겨져 당신보다 오래 세상을 떠돌 것이다. 읽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안 좋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을 남길 것인가? 긍정적인 감정과 힘이 되는 글을 남길 것인가?
5. 간결한 글
정보가 넘쳐나는 현재에는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구구절절 쓸모없는 내용까지 다룰 필요는 없다. 핵심만 간결하게, 깔끔한 문장으로 전달하자. 허울만 좋은 형용사와 미사여구는 과감하게 제거하자.
6. 재생산 가능한 글
다양한 플랫폼이 생긴 만큼 재생산하여 확장성을 가져가야 한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브런치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스레드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통해 영향력을 몇 배로 가져가야 한다.
7. 소신 있는 글
반응이 두려워 적지 않거나 누구나 좋아할만 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당신의 글은 당신을 나타낸다. 남에게 휘둘려 눈치를 보는 글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묵묵히 당신의 의견을 밀고 나가다 보면 당신을 응원하는 이들이 생긴다. 어느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또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룬다.
간략하게 정리해 본 내용이다. 앞으로는 위 내용 바탕으로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AI에게 좌절한 후 다시 희망을 얻어 일어난 인간의 첫 글이다. 창작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다. 이것마저 기계에게 빼앗기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