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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27. 2024

 여자 혼자 살아간다는 것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 해도,  가끔은 억울하고 서글퍼요.

   외국에 나갔다 오면 '역시 대한민국은 치안이 정말 잘 되어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늦은 시각에 다닐 때는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추운 날씨라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줄 알겠지만, 실은 손가락은 아이폰 전원버튼에 갖다 놓는다. 아이폰의 전원버튼 5번을 연속으로 누르면 긴급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안 이후에 생긴 습관이다.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긴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우연히 낯선 남자분과 단 둘이 걷게 되는 상황에 놓일 경우 양가적인 생각이 오간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침착하게 대응하자.' 그리고 '괜한 사람 의심하게 돼서 미안하네' 무안함. 이미 주민등록증엔 '서울특별시'란 단어가 반듯하게 적혀있지만 30년 넘게 제주도 촌년으로 살아왔기에 매일매일이 도시의 삶의 적응하는 과정이다. 이것 만으로도 벅찬데,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에 여자 혼자 살아가는 건 더욱 서글픈 일이다.


 최근 집에 알 수 없는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관에 이상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집주인 분의 안일한 태도와, 시간 약속 지키지 않는 수리 업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집주인 분은 몇 번 연락을 드렸지만 답장도 없고, 환기를 잘 안 시켜서 그런 것 아니냐고 오히려 나의 주의를 단속시키는가 하면,  '잘 모르셔서 그러세요.'라며 나의 무지를 친절하게 인지시켜주셨다. 그렇게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다가 직접 보시더니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음에도 며칠 후 몇 가지 작은 도구를 들고 와서 함께 고쳐보자고 하셨다.


  이럴 때 나 대신 나서서 노발대발, 큰소리를 내줄 든든한 아빠의 존재는 저 바다 건너에 있는 지금, 어쩔 수 없이 화를 가라앉히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드린 후 전문 업체를 불러서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체 사장님은 오겠다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다가, 여자 혼자 사는 방이라고 말하니 '밤 열 시 넘어서야 방문할 수 있다, '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시더니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 문을 두드리셨다. 불필요한 말들을 해가며 좀처럼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기색을 보이기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어른들의 태도가 '내가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란 이유에 기인한 것인가로 생각이 뻗쳐나갔다. 논리적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내 좁디좁은 이해의 범주 내에서 내린 최선의 답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살 때도, 심지어 연애를 할 때도 결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늘 혼자 잘 해내왔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늘 나를 온전하게 지탱해 주고 보호해 주는 존재들이었음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들이 꽤 많다고 느꼈는데, 그 보호막 마저 없었으면 나는 아예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은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참 가볍고 얄팍한 존재인가.


 지금은 믿을 건 내 유약한 몸뚱이 하나.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 보니, 말랑말랑했던 나 자신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이 단단해지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어쨌건 살아남기 위한 발악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예의 있지만 최대한 쉽고 무딘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것,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적어도 내 생각과 주장을 삼키지 말 것.' 머릿속에 되뇌며 오늘도 수리 업체와 집주인에게 예의 있지만 단호하게 집수리 일정에 대한 계획을 요청했다.


 어른은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배짱, 독기가 필요했다. 회사 선배나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 착해서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사실 그때마다 ’착한건 좋은 거니까!'라며 으쓱하곤 했다. 지나고 나서야 '정말 걱정이 돼서 하신 말들이었구나'라는 걸 절감하고, 칭찬으로 듣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만 질 수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온전하게 지켜내는 단호함과 냉정함도 어느 정도 겸비해야 된단 걸 깨달아가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예의'라는 덕목에 어긋나다고 느꼈던 단어들이 결코 대척점에 서있는 것들이 아님을 알게 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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