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by 이레재

일요일 정오쯤, 아이들과 교회 다녀오는 중에 친구로부터 차 한잔 마시자는 연락이 왔다. 이후 스케줄이 없어서, 마침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궁리가 필요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까페로 나섰다. 우리는 만난지 몇일 되지 않았지만 항상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듯,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힘든 결혼생활, 엄마이자, 여성이자 한 인간으로서 중심을 지키는 일.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와 그 사이에서 반복되는, 지나면 보잘것 없는 문제들 속에서 얼마나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등. 그러다가 그 친구의 손톱위에서 반짝이는 생소한 핑크반짝이 네일케어를 발견했고, 나도 지금 당장 네일샵에 가고 싶은 욕구가 들만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럴만도 했던 건, 그녀가 조금이나마 사회화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기존중을 위한 작은 지표였다고 말하는 스스로의 뿌듯함에 나도 인지하지 못한, 심한 스스로의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갈등속에서 살아간다. 실패, 외로움, 불완전한 인생속에서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얼마나 커다란 심리적 여유를 가져야 비로소 행동할 수 있는지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작은 자기존중의 행위를 기쁘게 응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한 번의 네일케어를 통해,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를 깨닫는 계기였을 뿐더러, 자기존중은 여러번 반복해야하는 ‘훈련’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그것은 철저히 내 안에서만 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그날 이후, 한 가지를 바꿔보기로 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 나를 진정 살아있는 존재로 대하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티백을 구입해서 마시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구절을 반복해서 읽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무한 반복 듣는 것..누군가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잘했다, 오늘 하루 잘 버텼다고.


우리는 세상이 주는 성적표에 익숙해져 있지만, 진짜 중요한건 내가 나에게 주는 성적이 아닐까. 나는 오늘 나를 잘 대해주었는가. 나는 오늘, 나를 존중했는가. 오늘 성적은 ‘존중’. 그것이면 되었다고. 내가 나에게 작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괜찮은 삶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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