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by 이레재

'왜 꼭 뭘 해야한다고 생각해? 일단 좀 쉬어.’ ‘넌 꼭 뭘 하더라?’ ‘넌 쉬면 병나는 애잖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수십년간 들어왔던 말이다. 쉰다는 것은 나에게 게으름이었고, 죄책감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십여년간 이어온 이 생활끝에 나는 온갖 만성질병들을 달고 어쩔수 없이 회사를 나왔다. 처음엔 쉼이 곧 나태라 믿었다. 하루를 빼곡히 채워야만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손에서 무언가를 놓는 순간 스스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게으름’은 불편한 단어일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쉬는 걸 보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나 자신이 쉴 때는 마음 한구석엔 불안감이 스몄다. 할 일을 미룬 것도 아닌데 괜히 불안했다. 마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구절이 귓가를 맴도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게으름’이란 단어에 너무 많은 낙인이 찍혀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진짜 쉼은 나 자신의 허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알았다. 게으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한, 나를 보호하려는 몸의 최후통첩. 그래서 이제는 그것을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게으름은 내게 자기 이해와 회복의 상징이었다. 억눌러왔던 감정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생각들, 끝없이 미뤄온 나 자신의 진심이 게으름이라는 틈을 통해 하나둘 얼굴을 드러냈다. 처음엔 그것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쉬면 쉴수록 내 안의 부족함과 비뚤어짐이 보였다. 누구보다 보통의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실상 그렇지 않았다. 쉬고 있는데도 마음이 불편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게으름 덕분에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조금씩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 말하자면, 그 게으름은 꽤나 생산적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껏 내가 가장 나답게 숨 쉴 수 있었던, 유일하게 정직했던 시간이었다. 게으름이란, 멈춤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가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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