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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Apr 25. 2021

ㅇ ㅡ ㅁ

픽사, <소울>

* 원의 형태를 지닌 것은 ㉧, 길의 형태를 지닌 것은 ㊀, 사각의 형태를 지닌 것은 ㉤로 표시함.  


  픽사의 2020년 애니메이션, <소울>(피트 닥터 감독)은 동그라미로 시작해 네모로 끝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중년의 음악 선생 조 가드너. 어느 날 그는 정상급 색소폰 연주자인 도로시아 윌리엄스의 밴드에 합류할 기회를 얻는다. 오디션장을 나선 조는 드디어 진정한 삶이 시작되었다고 기뻐하며 곧장 친구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쾌거를 자랑한다. 자랑에 정신이 팔린 조는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는 뉴욕의 거리를 성큼성큼 지나가지만 요행은 잠시뿐, 공사를 위해 열려 있던 동그란 맨홀 구멍㉧에 빠지고 만다. 영혼이 되어 떨어진 조가 도착한 곳은 저승. 죽은 영혼들이 가느다란 길㊀을 따라가다 반짝이는 점이 되어 거대한 빛의 덩어리㉧, ‘위대한 저 너머’로 사라지는 곳이다. 원하던 삶을 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조는 빛 덩어리로 빨려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길 바깥으로 도망친다. 깜깜한 암흑으로 조가 떨어지면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제목이 올라온다. <소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도망친 조가 도착한 곳은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이 모여 있는 ‘위대한 이전’이다. 흐릿한 윤곽의 영혼들과 파스텔 색조의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태어날 준비를 마친 영혼들은 동그란 ‘지구 포털’에 뛰어들어 지구㉧로 향한다. 조 역시 지구 포털에 뛰어들어 보지만 지구 티켓㉧이 없는 그는 지구에 도착하지 못하고 계속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다(저승으로 돌아오는 포털은 늘 사각형㉤이다). 위대한 이전에는 영혼들에 인격을 부여하는 안내자들(피카소의 그림을 닮은 ‘제리’라는 이들이다)이 운용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다. 훌륭한 삶을 살다 죽은 인물의 영혼과 태어나기 전의 영혼을 매칭 시켜주는 이 프로그램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오해받은 조는 22번 영혼(영혼이 존재하기 시작한 지 22번째 태어난 영혼이다. 천억 번 대의 영혼이 있으니, 22번 영혼은 지지리도 오래 이곳에 있었으리라)을 만나게 된다.      


  테레사 수녀, 링컨, 아르키메데스, 칼 융 등 수많은 멘토를 거쳤음에도 아직도 위대한 이전에 머무르고 있는 22번은 태어날 이유, 티켓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 불꽃을 찾지 못한 영혼이다. 고통도 배고픔도 없으며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이곳에 비해 지구는 너무나 시끄럽고 예상 밖의 일들, 애써야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22번이 보기에 태어나고 살아가는 일은 그만한 수고의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조 가드너라는 이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데도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22번은 조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문윈드라는 인물에게로 데려간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구역’은 우리가 자신을 잊는 무아지경에 빠질 때 오는 곳이다. 이곳에는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예술가나 운동선수뿐 아니라 모니터㉤ 속 숫자에 도취해 바닥을 헤매는 헤지펀드 트레이더 같은 이들의 영혼도 있다. 분홍색 갤리온선을 타고 이곳을 여행하는 문윈드는 뉴욕의 어느 교차로에서 광고용 간판을 돌리는 사인 스피너다. 영성 전문가이기도 한 문윈드는 몸과 분리되어 경계를 떠도는 이들 영혼에 동그란 포털㉧을 열어 주어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이 뛰어드는 그 포털처럼, 문윈드가 만든 동그란 포털은 분리된 육체와 영혼을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동료들은 조의 영혼을 지구 상의 육체에 연결하기 위해 포털을 만든다. 포털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길을 잃은 영혼이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린다. 열린 포털을 들여다본 조가 발견하는 것은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몸이다. 마음이 급해진 조가 포털로 뛰어들고 그의 옆에 있던 22번 또한 그에 휩쓸려 둘은 함께 지구로 떨어진다.  

   

  우연의 존재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혹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지구에 떨어진 각자의 영혼이 누구의 몸으로 들어갈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얻은 조는 일자로 감겨 있던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의 눈앞에 침대에 누운 자신의 몸이 보인다. 우연의 장난일까, 조의 영혼은 자신의 무릎께 앉아 있던 고양이 미튼즈의 몸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조 가드너의 몸에 들어간 것은 함께 떨어진 22번의 영혼. 움직이는 고깃덩어리,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에 태어났음에 역겨워하는 22번을 이끌고 조는 병원을 탈출한다. 병원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뉴욕이라는 도시는 22번에게는 눈부신 빛,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 비좁게 끼여서 움직이는 사람들, 감각의 해일이 들이치는 장소다. 겁을 먹은 채 골목 구석에 숨어버린 22번을 끌어내기 위해 조는 마침 배고파진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준다. 그 먹을 것이란 페페로니㉧ 피자㉧의 한 조각이다. 육체와 영혼을 통합시키는 생의 한 조각, 그 맛을 본 22번이 외친다.     

  “와, 이거 진짜 좋아!”


  그 쾌감에 22번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내 화가 가라앉은 22번은 조의 여정을 따라간다. 자이로㉧(gyro, 어원은 소용돌이, 지중해식 케밥)를 먹으며 뉴욕의 거리를 걷던 그들은 교차로에서 광고판을 빙글빙글㉧ 돌리는 문윈드를 만난다. 그들의 영혼을 원래대로 돌리는 의식을 하기 위해서는 저녁 여섯 시 반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날 저녁에 있을 조의 일생일대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조와 22번은 하루를 함께 보낸다. <소울>의 이 하루 동안 22번은 조의 몸을 빌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뉴욕의 풍경과 소리, 냄새와 맛을 경험한다. 이것은 영화관의 스크린㉤에 <소울>이 상영되는 1시간 40분 동안 다른 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 조의 입장이나 22번의 입장이 되어 보는 – 우리 관객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가 처음 만나는 코니는 조의 학생이다. 그는 사실 트롬본㉧ 부는 걸 관두겠다고 조를 찾아왔지만, 자신이 열심히 연습한 솔로를 22번의 앞에서 흠뻑 몰입해 연주한 후 마음을 바꾼다. 22번이 다음 만나는 이는 조의 오랜 친구이자 이발사인 데즈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사탕㉧을 먹으며 22번은 데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수의사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선택한 이발사라는 직업에서 이제는 보람을 느낀다고, 덕분에 너와도 이렇게 즐거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점차 몸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22번은 뉴욕의 풍경과 사물들, 자신의 몸을 만끽하던 중 입고 있던 양복 가랑이를 찢게 되고 그들은 옷 수선을 위해 조의 엄마를 찾아간다. 지하철을 타러 도착한 지하철역에서 22번은 어느 연주자의 버스킹 공연을 본다. 기타 반주로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의 노래에 감동한 22번은 자신이 먹고 있던 소중한 베이글㉧ 조각을 연주자의 기타 뚜껑에 던져 넣고는 지하철에 오른다.     


  지금 우리는 다른 길로 떠나지만
서로의 눈동자 속으로 돌아와 다시 만날 거예요.
사랑이 모든 것의 바탕이라면
그래서 다시 또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하나의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우리를 모을 거라고 약속해요. 지금     


  엄마의 양복점에 도착한 조와 22번. 조의 엄마는 조가 전문적인 재즈 연주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한다. 하지만 재즈와 음악은 그의 삶의 이유라고, 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오늘 죽는다면 그의 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항변하는 조에게 그의 엄마는 애틋한, 그러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재즈 연주자였던 남편의 양복을 꺼낸다. 그녀는 남색 실타래㉧를 사용해 양복을 수선한다. 벽에 걸린 한 액자에는 ‘바느질은 영혼을 수선하죠’라고 쓰여 있다.     


  한편 위대한 이후로 넘어가는 영혼들의 숫자를 세는 관리자, 테리는 조 가드너의 영혼이 이곳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조의 영혼을 데려오고자 은밀하게 뉴욕에 잠입한다. 저녁놀이 질 무렵, 조와 22번은 문윈드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간다. 서점의 계단참에 앉은 22번에게 느껴지는 것은 낙엽을 가볍게 휩쓰는 바람, 나무에서 빙글빙글㉧ 떨어져 내려와 손바닥에 앉은 단풍나무 씨앗㉧. 그는 지금 여기서 그의 불꽃,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하늘을 보는 일이, 걷는 일이 그의 불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22번을 보며 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건 목적이라고 할 순 없어. 그냥 평소처럼 사는 일이지.     


  이어서 지금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자신의 몸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타박하는 조를 두고 22번은 도망친다. 도망치는 22번과 그를 쫓던 조는 테리가 쳐 놓은 함정㉤에 빠져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 그렇게 위대한 이전으로 돌아오게 된 조와 22번. 그러나 이제 22번의 지구 티켓은 완성되었다. 무엇이 마지막 불꽃을 채워 넣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는 22번이 재즈라는 불꽃을 가진 자기의 몸 안에 있었기 때문에 티켓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며 22번을 몰아붙인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불꽃을 찾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생각한 22번은 화가 난 채 티켓을 조에게 던져버리고 ‘그 구역’으로 사라진다. 혼자 남겨진 조에게 제리가 다가와 도대체 어떻게 티켓을 완성했는지 묻는다. 둘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것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불꽃은 삶의 목적, 소명 따위가 아니라는 것. 멘토들의 강박 – 삶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 – 에 혀를 끌끌 차며 제리는 떠난다.


  22번이 준 티켓으로 지구에 돌아온 조. 도로시아 윌리엄스와 함께한 저녁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조의 별명, 조이(Joey, 기쁨(Joy)이라고도 들린다)를 연호하던 그의 엄마는 시간이 늦었다며 먼저 떠나고 그를 따라 공연장을 나온 도로시아는 백 번 정도 연주를 하면 오늘처럼 끝내주는 연주는 한 번 정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흔치 않을 거라고 덧붙인다. 점점 굳어가는 표정의 조가 도로시아에게 묻는다.      

  음,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일 저녁에도 여기 와서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는 거지.  


  이 연주를 마치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조는 실망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런 조에게 도로시아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예전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어. 어느 날 그 물고기는 나이 많은 물고기를 찾아가 묻지. 저는 다른 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르는 걸 찾고 있어요. 바다라고? 나이 많은 물고기가 말하지. 그건 네가 지금 있는 여기야. 여기라고요? 어린 물고기가 되묻지. 이건 물이잖아요. 제가 원하는 건, 바다예요. 도로시아는 잠시 조를 쳐다보고는 내일 보자고 말하며 그를 떠난다. 혼자 남은 조의 눈동자㉧에 초점이 고정되고 공연장의 불이 꺼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조는 시끄러운 지하철 객차 안이다. 흔들리는 열차에서 부딪힌 옆 사람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낯설다. 집에 돌아온 조는 지친 표정으로 피아노의 건반㊀을 하나씩 의미 없이 두드린다. 검고 흰 건반의 모습은 건널목의 무늬를,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밟지 않을 수 없는 그것과 닮았다.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갖 동그라미의 흔적들이다. 22번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즐겼던 것들. 베이글의 조각, 피자 크러스트, 먹다 남은 사탕, 양복을 고치고 남은 실타래, 단풍나무가 남긴 씨앗. 뭔가 생각난 듯 조는 피아노에 올려져 있던 악보㉤를 치우고 22번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음표㉧처럼 그 자리에 놓는다. 그 음표들을 하나씩 연주하는 동안 들려오는 것은 말하자면 재즈, 즉흥의 멜로디다. 조의 머릿속에 22번과 함께 한 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아기인 자신을 따뜻한 샤워㉧로 씻겨주는 엄마, 함께 LP판㉧으로 음악을 듣는 아빠, 햇빛을 받으며 질주하던 자전거㉧, 뉴욕의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 맑은 피아노 소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동안 카메라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조의 불 켜진 창문을, 엄마의 양복집을, 도로시아의 공연장을, 어두운 뉴욕의 거리를 점점이 밝히는 다른 이들의 무수한 불빛들을, 깜깜한 북미 대륙을 빛내는 도시들을, 마침내 지구㉧를, 거대한 불꽃을 닮은 우리의 우주를, 보여준다.      



  우리를 태어나게 한 불꽃, 지구행 티켓의 마지막 퍼즐은 제리의 말대로 삶의 목적 따위가 아닐 것이다. 조가 그랬고 22번이 그랬듯 그것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완성된 티켓은 태어나고 살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뜻할 뿐이다. 그 한 장의 티켓으로 우리는 지구 포털에 뛰어들어 이곳에 왔다. 찰나일 뿐이라도 영혼과 육체를 하나의 두근거리는 심장에 모은 우리는 이미 정당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 온 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모양의 티켓을 한 장씩 손에 들고 이곳에 왔으리라. 그러므로 이곳은 이미 바다다. 두근거리는 심장들, 반짝이는 불꽃들로 가득한 바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눈을 크게 뜨는 일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세상은 불꽃들로 가득하다. 비록 쓸모는 없고 의미는 더더욱 없을지라도 만끽할만한 생의 조각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재발견의 과정이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 사물들, 다시 또다시 해야 하는 일들, 불가피한 삶의 반복들을 생의 조각들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재발견의 능력이다. 자신과 세상을 새로이 발견할 줄 안다면 우리는 고양이로 환생하지 않아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맨홀 동그라미로 시작한 한 <소울>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짧을지언정 한 번의 삶을 더 살게 한다.   

  

  22번이 남긴 물건들을 보며 조는 티켓의 원래 주인, 22번에게 티켓을 돌려주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22번에게 닿는 방법은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 이내 눈을 감고㊀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는 조를 둘러싼 공간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구역’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조가 만나는 건 길을 잃은 영혼이 된 22번. 조는 도망치는 22번을 쫓아가다 22번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22번의 내면에는 검은 모래폭풍이 불고 있으며 그를 질타하고 억압하는 멘토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죄의식과 무력감에 휩싸인 22번에게 다가간 조는, 모래바람 속에서 잃어버린 지구 티켓 대신에 주머니에 있던 단풍나무 씨앗을 건넨다. 씨앗 또한 자신의 깊은 곳에 지구 티켓을,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는 증명을, 품은 하나의 증표다. 그 증표 속에 담긴 조의 목소리를 들은 22번은 자신의 지구 티켓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 22번을 감싸던 모래 덩어리는 흩날려 사라지고 둘은 위대한 이전의 풍경 속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머뭇거리는 22번에게 티켓을 건네주며 조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데까지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 서로의 손을 잡고 지구 포털로 뛰어드는 둘. 질끈 눈을 감은㊀ 22번에게 조가 외친다.      


  이봐! 눈을 떠 봐!     


  눈을 뜬㉧ 22번에게 보이는 것은 지구. 그러나 이제 그에게 지구는 더는 두렵기만 한 곳은 아니다. 22번은 모든 것이 편안했던 곳, 자궁이라는 이전을 떠나㉧ 자신의 육체를 얻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작은 점이 되어 지구로 떠나는 22번. 그를 보내고 저승으로 돌아온 조는 그가 원래 있어야 하는 곳, 위대한 이후로 가는 길 위에서 눈을 뜬다. 그가 위대한 이후로 떠나려는 찰나, 제리가 뒤에서 조를 부른다. 그리고 조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22번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도운 조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 또한 영감을 받았다는 것. 그래서 함께 상의한 끝에 조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리는 조의 앞에 포털을 연다. 직사각형 모양의 그 포털㉤ 속에 푸른 지구의 모습이 보인다. 제리는 작별의 인사, 부디 당신이 앞으로는 발 딛는 곳을 잘 보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네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제리의 질문과 그에 대한 조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이제는 당신의 삶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나는 그것의 일 분 일 분을 살아갈 겁니다.  

   

  <소울>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각형의 포털로 조의 영혼이 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는 뉴욕의 거리로 그가 걸어 나오면서 끝난다. 이제 관객인 우리 또한 사각형의 영화 스크린㉤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보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자. 잠시 우리를 즐거운 무아지경에 빠뜨렸던 <소울>의 세상에서 벗어나 이제 밖으로 나가자. 어두컴컴했던 극장의 문을 열고 나온 세상은 눈부시다.    



* 이미지 출처는 공식 예고편 동영상 및 네이버 포토 클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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