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마음의 파동이 맞는 사람

by 기린

“패션과 장신구” 라는 이름까지 주렁주렁한 교양수업을 듣게 되었다. 첫 수업이었고 강의실 맨 뒷편 왼쪽 구석쯤에 앉아 이 지겨운 한학기를 어떻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무난하고 순조롭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때 쯤, 교수님은 이번 수업이 조별 과제로 이루어 졌으며 현재 앉은 자리대로 구역을 나누어 조를 편성한다고 말했다. 얼떨결에 둘러앉은 학생들은 나누어준 종이에 이름과 학과 전화번호를 적어 조장으로 뽑힌 사람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귀찮음에 휩싸여 있던 짧은 순간에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동글동글 도토리같이 생겼는데다가 한참 유행하던 비니가 잘 어울리는 제법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조에 편성되어 나보다 먼저 전화번호를 적었고 나는 내가 종이에 적을 차례가 되었을때 재빨리 그의 이름과 번호를 외워두었다. 이름을 외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초등학교때 무던히도 괴롭혔던 짝꿍의 이름과 같았기에..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그때의 그 짝꿍은 아니겠지 고민하며 쥐어짜낸 기억속에 다행히 성이 달랐다는 정보가 있었다.


첫번째 조별 모임이 있던 날. 나 역시 시간 장소 공지사항을 문자로 받았지만 모르는 척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조 모임 어디인지 혹시 아나요??” 친절한 그는 만나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약속시간 10분전에 우리는 둘이 만나게되었다.


여기까지가 첫 만남이다.


그 뒤로도 나는 줄곧 그를 오래 지켜보고 좋아했다. 아마 한번 이상의 고백도 했었다. 우리는 마음의 파장이 맞는 사람들이니 연애라는 시한부 게임에 이 관계를 맡기지 말고 공명으로 오래 남고싶다는 정중한 거절을 받았지만 말이다.


그는 꼭 내 것이 아니어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공대생인데도 감성적이고 늘 피아노를 치거나 작곡을 하거나 머리엔 늘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녔다. 한번도 이성을 잃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이 없었고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가늘고 긴 예쁜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어학연수를 갈때 영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음악하던 사람답게 나를 멜로디 라고 불렀다 꽤나 유니크 하다고 생각되어 마음에 들었던 그 이름을 외국에 와서 살게된 이후로는 본명보다 많이 쓰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내 본명을 아는 사람을 손에 꼽을 만큼. 그가 지어준 이름으로 사람들이 매일 나를 부른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공명.


그런 그가 내가 살고있는 나라에 정착하게되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만날수도 있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착각에 마음이 조금 간지럽기도 했지만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만나는 공명과 나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어색해서 이내 기대를 접었다.


이루어지지 않아야 더 완벽했다는것을

우린 사실 확인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처럼 후회를 했는지,

아니면 차라리 후련 했는지 말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공명이었다면 아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거다.


아직도 가끔은 그립다.

너를 아끼고 애틋해하던 그때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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