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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서진 Apr 13. 2019

칼 로저스와 인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대를 마주할 용기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있다. 심리치료, 심리학 분야의 많은 거장들이 있지만, 거장들의 거장이 있다. 

나에게 코치의 꿈을 꾸게하고,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세계로 인도한 그 사람,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애정이 깊고 넓으면서도 균형적인 삶을 살고간 사람,

'자기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주었던 사람이면서 자기존재를 손상시키지 않았던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

칼 로저스(Carl Rogers),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불편한 정서이야기


"방금 이야기한 그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시나요? , 어떤 감정이 생겼나요?"

 이런 질문을 성인 한국인에게 던지면 매우 어색해한다. 특히 그가 남성이라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하는 경향도 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왜 그런 어려운 질문으로 나를 괴롭게하느냐고 질문의 철회를 요청하기까지 한다. 정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가보다. 

 

 우리 스스로 인지적인 과정을 거쳐 판단하거나 결정한 내용에 대하여도 결과는 정서적 선택일 때가 많다. 매순간 정서를 경험하지만 상대적으로 둔감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나 어려움의 상태는 자주 정서적인 모양으로 나타난다. 

 

 괴롭다. 힘들다. 하고싶지 않다. 죽을 것 같다. 나를 잡아먹을 것 처럼 무섭게군다. 속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다. 전화가 올까봐 두렵다.
상사가 결재서류를 들고 이름을 부를때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마주하는 빈도만큼 정서의 처리는 매우 중요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관심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코칭 공부를 할 때 추천받은 도서리스트를 보고 한숨을 쉬었는데, 목록의 절반이 넘게, 거의 모든 책이 정서와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사실 좀 언짢아지는 리스트였다. 꼭 이렇게 정서를 많이 다뤄야 하는 것인가, 너무 비과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정서를 마주하라는 시도를 마치 요술을 부리려는 사람의 의도처럼 오해하게 되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험 저편에는 결국 정서가 남아있고, 그것은 뿌리깊은 신념으로 자라나서 우리를 꽁꽁 묶어두는 사슬이 되게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마음이 아프고, 결과로 몸도 아프고, 삶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건강하지 않은 상황이다. 

 

심리와 상담, 교육, 조직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고, 인간에 대하여는 무한 긍정의 관점과 심리치료에 있어서는 혁신을 가져온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는 20세기 정신의학 전문가들에게 '요술을 부리는 비과학적 치료자'로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한계, 그리고 분노

 

마음의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또는 카운슬러라고 불리는 사람들일 수 있을까. 사회적 인식이 척박하고, 고양되지 못해서인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왜 그 전문가들을 쉽게 만나러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을 마주하기 전 예상되는 두려움과 만나고 난 후 감당해야 할 두려움, 결국 감수해야 할 위험이 두려움으로 남아있어서일 것 같다. 

 

 로저스는 그 누구보다 인간존재를 깊이 존중하고, 신뢰하는 치료자였다. 그는 전문가이자 치료자의 권위 조차도 내담자(치료를 의뢰한 사람)와의 관계에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므로 내려놓아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모든 개인은 자신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발견할 능력이 있는 존재' 여서 그가 자기 자원을 탐색하고 발견하도록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문가의 역할에 대하여도 지나치리만큼 검약하게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네들 스스로 해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 즉 촉진자(facilitator)가 되면 된다."라고 하여 다른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는 그 시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로저스는 권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순진하리만치 인간을 긍정적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비가 아니라하더라도 우리는 범법을 저지르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뉴스를 매일 접하며 살고있다. 그럼에도 로저스는 본질적으로 '최악의 가장 병적인 상태에 처한 인간도 더 깊게 알고 보면, 결코 악하지도, 악마와 같은 존재도 아니다'라고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이에 대하여 저항했다. 지금 우리도 반갑게 수락할만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이 부분에 대하여 자주 논쟁하곤하는 바이기 때문에 나 역시 실감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내용이 그렇게 효과적이었는가, 아니면 효과적일 것인가 하는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어떻든 그것이 더 잘 작동하는 것이라면 아직 권장해봄직하다.  

 

나와 다른 사람


우리는 다름에 대하여 끌리기도 분노하기도 한다. 로저스 시대에는 그에 대한 질투의 그룹과 찬사의 그룹이 있었다. 



'카운슬링(counseling)'을 처음 사용한 사람 

 내담자(clilent, 환자가 아니라 존엄과 평등의 대상으로서)라는 명칠을 처음 사용한 사람

긍정적 라포(rapport, 신뢰)형성과 공감 경청기법을 개발하고 치료에 사용한 사람

치료과정을 최초로 녹음하여(녹음 기술이 저조한 시대여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공개하고, 학문적 고도화를 촉진한 사람(다른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과정을 베일속에 숨길 때) 

심리치료 과정과 성과에 과학적 연구를 시작한 사람

심리학자, 비의료 전문가들이 심리치료에 종사하도록 길을 열어준 사람 



그는 인간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치료자의 도움을 통하여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으로 전환을 도울 수 있다고 보았다.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은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경험하고, 문제상황에서도 적응과 풍부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의 존재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상황은 부적응과 심리적 장애가 생긴 상황일 수 있다. 이에 대한 극복을 위하여 로저스가 제공하는 원리는 전문가에게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분명 시사점이 있으므로 정리해보려 한다. 실제로 그의 원리는 이후 정신치료와 심리치료의 많은 장면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시대 코칭, 상담, 그룹역동을 이끄는 퍼실리테이션, 일반 강의 촉진과 커뮤니케이션 장면에 조차 응용되고 있지만 그의 시대에서는 뜨거운 배척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핵심원리


"내가 그들을 알아 온 바대로 그 사람들 안에 있는 어려움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핵심을 탐구해 보면, 대체로 그들은 스스로를 경멸하고, 스스로가 가치없고 사랑받을 만하지 못한 존재라고 여긴다... 나는 자기애가 근본적이며 만연되어 있는 '죄'라는 생각과 철저히 다른 생각을 갖고있다" 

                                                Carl Rogers, Brian Thorne & Pete Sanders의 'Rogers, 1956' 


1. 일치성 Congruance  

내담자가 지각된 자기(perceived self)와 전체 유기체로서의 실제경험(actual experience of the total organism)간의 불일치를 경험하게 되면서 불안을 경험한다. 따라서 로저스는 치료자의 꾸밈없고 진실성 (genuiness)있는 태도가 가장 기본적이라고 제안한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담자에게 투명하게 비추어져야 진전을 이룰 수 있으므로 치료자의 자기인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2. 수용 Acceptance

내담자의 생각, 느낌, 행동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고, 상대를 돌보는 것으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으로 대표된다. 즉,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상대가 스스로 말하는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 태도에서 내담자와의 신뢰가 구축되고 내담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탐색을 돕고, 그의 생각을 통하여 스스로 바로잡는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3. 공감 Empathy

로저스는 내담자의 주관적 지각세계에 초점 맞추는 지극히 현상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하여 그의 고민은 어떻게든 내담자들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내담자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고 긍정적인 발달로 촉진하고자 노력하였다. 


로저스는 공감이 치료의 가장 강력한 국면중의 하나이며, 공감은 내담자를 해방시켜주고, 확인시켜 주고, 공포에 질린 내담자라 할지라도 인간으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였다. 작고 직전에도 로저스는 어떤 개인이 이해받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소속해 있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치성, 수용, 공감 3가지 중에서 공감을 가장 시도해 볼 만한 부분으로 추천하고 있다. 


공감에 대한 실천 원리는 로저스가 1957년 저술한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경청 Active Listening


공감을 위한 적극적 경청 : 피해야 할 것 

1)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그것을 버리는 것은 너무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이런 상대방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바꾸거나 그의 방식을 철회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2) 비판적이지도, 평가적이지도 않아야하고 도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상대가 어떤 압력없이 자유감을 느끼고, 관용과 이해를 받고 있으며, 수용과 따뜻함의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 그래서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3) 그의 이야기에 대하여 좋건 나쁘건 내가 판단하거나, 평가하거나, 결정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공감을 위한 적극적 경청 : 해야 할 것 

1) 전체 의미 듣기 : 그가 이야기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이 내용을 뒷받침하는 느낌 또는 태도를 모두 들어야 한다. 

2) 느낌에 반응하기 : 어떤 경우에는 내용이 그 기저에 있는 느낌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메시지의 전체적인 맛이나 의미를 파악하려면 특히 느낌(감정) 요소에 응답해야한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게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볼 수 있을까?'

3) 모든 단서를 포착하기 : 모든 의사소통이 언어적이지는 않다. 말이 그가 전하려는 것을 다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 얼굴 표정, 몸 자세, 손 움직임, 눈 움직임, 호흡 같은 것들도 주목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진정한 관심과 존중이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 당신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당신의 생각을 존중하고, 설령 내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당신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당신이 기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확신해요. 나는 당신을 변화시키거나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하고 싶어요. 내 생각에는 당신의 이야기가 들을 가치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I’m interested in you as a person, and I think that what you feel is important. I respect your thoughts, and even if I don’t agree with them, I know that they are valid for you. I feel sure that you have a contribution to make. I’m not trying to change you or evaluate you. I just want to understand you. I think you’re worth listening to, and I want you to know that I’m the kind of a person you can talk to.)   

                                                                                                    Rogers & Farson, 1957



상호 구원자적 관점


그는 결고 정서만을 다루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술적으로도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결과를 체계화하는데 힘썼다. 그럼에도 그는 감정적인, 감정을 초점맞추는 전문가로 각인되고 있다. 그는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민감하게 인간의 존재와 감정에 충실한 접근을 했고 많은 사람을 도왔다. 그래서 그의 방식을 인간-중심, 내담자-중심으로 부른다. 


인간을 온전히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 존중의 대상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그 긍정의 기본값을 바닥삼고 때로는 치료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교사로, 조직에서는 리더의 모습으로 존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상대에게는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고 충분히 기능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된다. 그래서 로저스는 치료자와 내담자의 이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정서는 전염효과가 있다. 로저스에 의하면 듣는 행동도 전염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해주느냐가 다른 상대의 마음과 경험을 열어준다. 그 긍정적인 관점과 시도는 우리가 우리에게 구원자가 되는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겠다.  



참고한 책과 논문

인간중심치료의 창시자 칼 로저스 / Brian Thorn & Pete Sanders, 옮긴이 : 박외숙 & 고향자, 2017. 학지사

Rogers, C. R. (1979). The Foundations of the Person-Centered Approach. Education, 100(2).

Rogers, C. R., & Farson, R. E. (1957). Active listening. Industrial Relations Center of the University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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