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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Feb 03. 2016

톨레도 대성당의 황금 제단

번쩍거리는 황금은 과연 그리스도를 예배하기에 적합한가?

밤새 숙소에 어떤 술 마신 애들 6명 정도가 방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었다. 방에서 담배도 피고 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도 안 오는데 내일 가이드 투어에 관해 공부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가이드 투어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은 시간이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묶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아무나 자리가 비는 곳으로 찾아가 앉았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고 여행 화장을 한 여자였다. 알고 보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사람이었다. 내가 물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 사실 회사가 망해버려서 딱 좋은 타이밍에 여행을 왔어요." 

가이드는 어려 보였지만 실제로 어리진 않았다. 학생 여행객에겐 비싼 가이드비였기에 가이드에게 모든 것을 뽑아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이드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근데 가이드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프랑스에 있는 가이드 닮으셨어요" 재작년에 프랑스 몽생미셸에 갔을 때 만난 가이드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oo  가이드님이요?"라고 말을 했고 가이드는 만난 적이 있냐면서 안부 전해달라고 했다. 사실 한oo 가이드님은 여행 다니면서  공부하는 데에 불을 지펴준 가이드였다. 그래서 내겐 굉장히 특별했고 닮았다고 하기에 참 고마웠다. 20명이 조금 넘기에 같은 교통비로 대형버스를 대절했다. 오랜만에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았다. 가이드는 버스에 타서 우리에게 톨레도를 가기 전에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었다. 어린 줄만 알았던 가이드였는데, 이것저것 모르는 게 없이 술술 설명해주었다. 대단했다. 역시 자전거나라 가이드는 달랐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누나였다. 얼굴이 어려 보였을 뿐이었다.

스페인은 여러 민족이 섞인 곳이다. 켈트족이 살던 곳을 기원전 2세기에 로마가 지배하다가 기원후 5세기에 동쪽에서 훈족이 쳐들어오자 게르만 민족이 남쪽으로 도망쳐왔고 동남쪽으로 간 사람들은 로마를, 서남쪽으로 간 사람은 스페인으로 갔다.

 이때 게르만 민족은 수도를 톨레도로 삼았다. 서쪽으로 내려온 게르만족은 국교를 가톨릭으로 삼았다. 게르만 민족이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지배를 한지 300년 뒤에 이슬람 사람들이 들어왔다. 300년이랑 시간 동안 30번도 넘는 왕이 바뀌면서 국력이 내분으로 인해 약해진 게르만 민족이었기에 이슬람 사람들이 쳐들어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슬람 사람들이 711년부터 800년을 지배했는데 이때도 톨레도가 핵심이자 중심, 상공업의 중심이 된다. 이때 유대인들을 살게 해준다. 근데 유대인들을 1492년 이사벨과 뻬르난도의 왕이 다 내쫓아버렸다. 1561년도에 무적함대로 유명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수도로 정하는데 그 이유는 톨레도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뻗어져 나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펠리페 2세는 후에 필리핀 나라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필리핀은 펠리페 2세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피렌체에서 많은 예술가가 나왔듯이 톨레도에서도 많은 예술가를 배출시켰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16세기 엘 그레코, 17세기 디에고 벨라스케스, 18세기 프란시스코  고야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날  때쯤 톨레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를 거쳐서 드디어 톨레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톨레도로 들어가는 길에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다리의 이름은 산 마르띤 광장의 다리였다. 다리를 짓는 건축가가 다리를 지었는데 다리에 문제가 생긴 걸 알게 되었다. 이를 알리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어 일거리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묵과하자니 사람들이 위험할 것 같았다. 고민의 고민을 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자 아내가 이를 눈치채고 물어보았고 건축가는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아내는 이 얘기를 듣더니 알았다고 하고서 그 다음날 밤에 다리에 불을 질렀다. 다리에 불이 나서 다리가 위험해졌으니 다리를 다시 지어야 되는 상황. 남편은 본인의 명예도 지키고 사람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남자는 아내를 잘 만나야 한다.

톨레도 안으로 들어와서 톨레도 대성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톨레도 대성당은 그 규모가 굉장히 컸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느낌도 나면서 훨씬 중후하고 고전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화려함 속에 감춰져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대부분 발걸음을 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 굉장히 인상적인 곳이 있었다. 톨레도 대성당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은 아주 특별한 공간. 그곳의 이름은 바로 모사라베 채플이다. 모사라베 채플은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서 살던 가톨릭인들을 위한 채플이다. 본래 이슬람교인들의 예배당은 환하고 밝다. 반면에 톨레도 성당은 굉장히 어둡고 촛불 몇 개로 밝혀진다. 지금도 어둡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어두웠다고 한다. 이슬람권 아래 있던 가톨릭 신자들이 이슬람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문화 차이로 인해 톨레도 성당에  적응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때 이슬람권 아래서 가톨릭을 지키던 사람(모사라베)을 위해 만들어진 채플이 이 채플이다. 실제로 그렇게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개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모사라베들을 위한 그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곳이다.

톨레도 대성당 안에는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과 황금으로 만든 수천 킬로의 이동식 제단이 있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로 하여금 회의감을 갖게 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아메리카에 가서 수탈해온 수만 톤의 황금으로 만든 제단이 과연 예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까? 겉으로 보기에 황금은 번쩍거렸지만 내게 있어 그 황금은 욕망의 덩어리로 보였다.

고등학생 때, 공부하느라 교회를 안 갈 거라고 했다가 부모님께 혼이 난적이 있었다. "공부해서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하나님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 아니에요?"는 나의 말에 어머니께서는 "대학을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앞으로 바쁘고 힘들 때가 올 거야. 그때마다 그렇게 행동할 거니?"라고 되물으셨다.

폴라로이드 장사할 때도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지금은 바빠서 교회에 못 나가지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도 돕고 할 텐데 나 하나쯤 안 간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느 순간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도, 명예가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갈 수 있는 것이었다. 톨레도 성당 안에 있는 화려한 파이프 오르간과 황금 제단을 비난하던 손가락이 알고 보니 내 모습을 가리키고 있었다. 큰 건물과 화려한 장식들은 본질을 잃고 욕심을 채우려는 내 모습이었다. 

큰 공간을 걷다 보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성당 내부에 울린다.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부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까지 다양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됐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약속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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