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100일이라는 시간을 선택했다
어렸을 적 TV에서 정글을 가로지르는 타잔을 떠올려본 적이 있다.
밀림의 왕 타잔이 이동하는 비결은, 밧줄 하나를 움켜잡고도 끄떡없는 힘과 현재의 밧줄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밧줄로 이동하는 결단, 움직이는 때를 잘 아는 타이밍에 있다.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선택, 새로운 밧줄로 이동해야 할 때를 아는 용기, 그리고 망설이지 않는 결단. 타잔이 정글을 건너는 비결은 힘보다 판단과 실행에 가깝다.
변화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힘이 부족해서, 의지가 약해서 멈춘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대부분의 순간은 힘이 아니라 타이밍과 선택의 문제였다. 언제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같은 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새해가 되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다짐을 적고, 계획을 세운다. 이번엔 정말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처음 며칠은 의욕이 넘치고, 작은 성취에도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속도가 느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계획표를 들여다보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된다. 그렇게 목표는 조용히 사라진다. 다른 사람의 목표가 아닌 '내 목표'가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다. 더 성실하지 못해서, 더 절실하지 못해서, 더 간절하지 못해서라고. 하지만 같은 실패가 반복될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문제는 의지였을까.
돌이켜보면 계획은 늘 충분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촘촘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은 많았고, 기준은 높았다. 문제는 그 계획이 무너졌을 때였다. 한 번 흐트러지면 다시 돌아오는 길을 준비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계획에는 시작만 있었지, 흔들렸을 때의 대안은 없었다.
그때부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목표를 잘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가기 위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의지를 다잡는 게 아니라, 의지가 약해지는 날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설계하는 것 말이다. 그 질문 끝에서 나는 ‘100일’이라는 시간을 떠올렸다.
하루는 너무 짧았고, 1년은 너무 길었다. 100일은 이상하게도 도망치기엔 길고, 집중하기엔 적당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인생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하기에 적절한 길이였다.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 대신, 중간에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루를 놓쳤다고 모든 걸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선택이 삶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았다. 대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실패해도 멈추지 않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다시 하루로 돌아오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목표를 이루는 사람보다, 다시 시작할 줄 아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남았다.
15년간의 100일 프로젝트는 나를 성공으로 데려가기보다 왜 자꾸 멈췄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성공했기 때문에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100일이 필요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남기는 기록이다. 먼 훗날, 누군가의 100일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