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Aug 15. 2023

바다 거북이보다, 바오밥 나무보다 더 오래 살거야

‘지금 내 표정이 밝은가?’

그러고 보니 조금 설레는 것 같기는 하다. 

택시 뒷자리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근심 있는 얼굴 같아 보이진 않는다.

“병원 직원이시구나. 이제 퇴근하시고 집에 가시는 거예요? 상계동에서 여기까지 출근하시나 봐요.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나를 병원 직원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어디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까.

“남편이 좀 아파서 이 병에 대한 조언을 받으러 가고 있어요.”

“… 아이고, 남편분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항상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지, 대충 둘러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남편은 사실대로 말하는 편인데, 남편의 병명을 들은 사람은 적절한 문장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다가 횡설수설 몇 마디 한 후 갈 길을 가버리기 일쑤다.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짧은 사람,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 같은 경우는 대충 허리 디스크라고 말하고, 10분 이상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경우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다.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아이고… 어쩌다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엄청난 부자가 있어요.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아내가 암에 걸렸는데 도저히 국내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미국으로 가서 23억인가 치료비에 썼는데 결국 하늘나라 갔어요. 어린아이도 둘인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필요 없어요. 정말 몸 건강한 게 최고예요.”

남편이 암에 걸리고 나서 ‘건강한 몸 상태’에 대한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일지 생각해 본 적 있다.

현재 남편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연간 1억 2천, 예를 들어 이 상태로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앞으로 40년.

그 기간 동안 들어가는 총비용은 48억으로 이 숫자에는 생활비는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병원비이다.

또한, 그저 생명이 유지될 뿐 가족과 일상을 보낼 수 없고, 환자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평생 받는다는 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돌아다닐 수 있고, 아침에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밥을 먹고 배변을 할 수 있다는 평범한 건강 상태의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적어도 100억, 아니 1000억은 넘지 않을까?

얼마 전 영면에 들어간 삼성의 이건희 총수도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1조라도 지불했을 것이다.

남편은 위암 4기이고 척추, 골반, 어깨 등 머리와 팔다리를 제외 한 모든 뼈를 암세포에 점령당했다.

항암을 받지 않으면 3개월, 항암을 받아도 1년을 채 살지 못한다고 했다.

암세포가 골수까지 점령해서 정상적으로 혈액이 생성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무리해서 항암을 시작했다.

모든 암 환자가 두렵고 고통스럽겠지만 전이가 되지 않은 암환자와 똑같이 항암만 받아서는 잘해야 1년을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다시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항암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항암치료에 더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다.

남편이 잠을 자거나 컨디션이 좋을 때, 나는 유튜브나 책을 통해 통합의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처럼 암이 많이 퍼져있는 암환자는 항암의 횟수를 정할 수 없고 암세포가 없어질 때까지 진행하게 된다.  항암을 받으면 받을수록 환자의 몸 상태는 항암 부작용으로 인해 더 이상 항암을 받을 수 없는 몸 상태가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암이 죽거나 환자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가 되어야 이 싸움이 끝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암세포를 없애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항암을 받기 전 환자의 상태는 혈액수치로 체크하고, 수치에 문제가 없으면 항암을 진행한다.

항암부작용을 줄여주는 간단한 비타민D 처방이나 항암 받기 전 구토 등 알레르기에 대비한 주사를 투여하거나, 3대 영양소 보충을 위한 영양교육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항암을 할 수 있는 완벽한 몸 상태 즉 스스로 면역력을 회복하고, 항암제 독성을 완화시키는 방법에 관한 진료는 없다.

유튜브와 책을 통해 한 약사가 본인의 유방암과 80대 아버지의 4기 폐암을 항암치료와 더불어 겹핍된 영양소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완치했다고 했다.

그녀의 책에는 각 천연비타민이 암세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논문을 예시로 설명했고, 그 비타민 목록은 통합의학 의사들이 추천하는 것과 일치했다.

나는 가장 빠른 날짜로 상담 일정을 잡았다.

“상호씨, 나 딱 두 시간만 자리 비울게. 당신 점심 먹기 전에 돌아올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혼자 있을 수 있지?”

“두 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어. 만의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비상호출 버튼을 누르면 되니까. 아무튼 걱정하지 말고. 나 지금 컨디션 너무 좋아.”


10시 55분.

5분 일찍 도착했다.

내가 노원구 상계동을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약국 상담소는 좁다란 골목길에 있었고, 맞은편엔 햇빛에 바랜 오랜 간판의 과일가게와 채소가게가 있었다.

한 노인이 장바구니가 달린 보행 보조기를 끌고 지나갔다. 

우리 남편도 병원이 아닌 평범한 길거리를 보조기라도 끌고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0분 후 들고 나온 쇼핑백에는 천연으로 만든 비타민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영양제 쇼핑백에는 몇 년 전부터 약사 지인의 추천을 받아 평소에 복용하고 있던 천연비타민 브랜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하루빨리 남편에게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에서 구매했고, 약을 강매하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병동 간호사들이에게 들킬까 봐 쇼핑백을 몸 뒤로 숨기며 병실로 들어갔다.

“당신아, 이게 다 뭐야? 난 그저 한 두 개 들고 올지 알았는데.”

“당신한테 꼭 필요한 것들이야. 죽기 살기로 먹어야 해.”

“들고 오느라 무거웠겠다. 그런데… 있잖아… 내가 설이 초등학교 졸업하는 걸 볼 수 있을까?”

“… 당신은 바다 거북이보다, 바오밥 나무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어. 그러니까, 설이를 나한테 떠넘기고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얼른 약 드세요.”

다음날 아침 회진시간.

“오늘은 방사선을 시작하는 날이네요. 원래 방사선 후 항암을 진행하는 순서였는데 혈액수치가 안 좋아서 순서를 변경했었죠. 오늘 오후 5시에 방사선 예약이 되어 있고, 내려가기 전 진통제 미리 맞을 수 있도록 처방해 뒀어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후 5시 사우 님이 끄는 침대를 따라 지하 1층 방사선종양의학과로 내려갔다.

상냥한 말투에 방사선 치료 상담을 올 때마다 긍정적인 얘기로 우리를 위로했던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오늘 아침 피수치 보니까, 빈혈 수치가 항암 후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젊어서 그런지 회복속도가 정말 좋아요. 오늘 방사선 치료 처음이죠? 하나도 걱정할 것 없어요.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어? 뭐야? 정말 이게 다야? 싶을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어요. 물론 2~3주 안에 몇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몇 주 후면 금방 사라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작가의 이전글 암 환자를 살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