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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Aug 04. 2020

호텔방과 요람

2020년 8월 4일


폭우가 오던 날 밤, 호텔에 있었다.

어느 호텔이든 스탠더드 룸을 좋아한다.

이번에도 가장 작은 객실을 예약했다.

체크인을 한 후, 낯선 이들과 섞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층으로 올라갔다.

서로 말없이 정면이나 핸드폰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마네킹들과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느릿한 속도로 재빨리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느릿한 속도와 재빨리라는 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밖엔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객실 문을 열고 키를 꽂으니 모든 조명이 켜졌다.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서 침대 쪽 독서등만 둔 채 모두 껐다.

창가에 있는 1인 소파에 몸을 툭 얹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 느낌 그대로인 공간에 들어서며 비로소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요람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고요했지만 편안했고,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금세 긴장이 풀리고 피로를 느꼈다.

짙은 해방감을 느꼈다.


차음이 잘 되는 통창을 통해 빗소리가 속삭이듯 들렸다.

작은 맥주 한 캔과 게맛살을 먹으며 더 이상 구겨질 곳 없이 일그러진 하늘을 구경했다.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튼튼한 창문은 그런 비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안정감과 편안함.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고 찾아 헤맸거나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두 가지를

작은 호텔방에서 동시에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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