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 열정이 아니었다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는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 문을 여는 손이 조금 떨렸고 머신 전원을 켜는 소리에도 괜히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30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한 잔이 잘 나왔는지 아닌지 컵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열정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낯설다는 것은 계속 질문하게 만들었고 왜 이 시간에 손님이 몰리는지 왜 이 원두는 오늘 유난히 쓴 지 왜 어떤 손님은 말없이 두 번을 더 찾아오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질문이 많을수록 가게는 조금씩 살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일은 점점 익숙해졌고 오픈 준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었으며 피크 타임의 리듬도 몸이 알게 되었다. 머신 앞에 서서 생각을 덜 하게 되는 순간이 왔고 손은 움직였지만 머리는 이미 다음 일을 향해 있었다.
그때부터 무너진 것은 열정이 아니었다. 사실 열정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었고 문제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그 편안함이었다. 익숙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리 없이 스며들어 기준을 아주 조금 낮추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괜찮겠지 손님은 잘 모르겠지 어제도 별말 없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작은 생각들은 하루씩 쌓여 갔다.
맛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공간도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설명이 안 되는 공백이 생겼다. 손님은 줄어들었고 우리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었고 경기 탓일 수도 있었으며 주변에 카페가 늘어서일 수도 있었다. 그 설명들은 전부 틀리지 않았지만 다만 빠져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카페를 오래 한다는 것은 계속 새로워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원두를 고를 때의 기준과 메뉴를 만들 때의 이유, 그리고 이 공간을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를 다시 떠올리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를 어느 순간부터 굳이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가끔 초창기 노트를 다시 펼쳐보았고 지금 보면 유난히 집요하고 쓸데없이 예민해 보였다. 그 예민함 덕분에 가게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요즘은 일이 익숙해질수록 일부러 불편한 질문을 남기곤 했다. 이 맛은 정말 괜찮은지 이 동선은 아직도 최선인지 이 공간에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질문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게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카페가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시끄럽지 않았다.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지도 않았고 큰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그 익숙한 하루 속에서 조금씩 처음의 기준은 사라져 갔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가끔 일을 처음 배웠던 것처럼 한 잔을 오래 바라보았다. 속도를 늦추고 손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 지금 이 익숙함이 편안함이었는지 아니면 무너짐의 시작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