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다녀온 이야기
나주에 와서 글을 쓴다. 해남과 진도로 가는 길에 하룻밤 묵어가게 된 나주는 우리 가족에게 모두 낯선 도시였다. 나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나주배와 나주곰탕뿐.
숙소에 체크인을 하기 전에 공판장에 먼저 들러 2번 점포에서 배를 샀다. 아주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배를 먹게 됐다. 서울에서 맛없는 배를 사게 되면 이게 배인지 무인지 헷갈릴 때도 있는데, 나주 배는 아삭하고 아주 달고 물이 많다. 아직 철이 아닐까 봐 걱정했는데, 마침 제철이라고. 그 자리에서 여행 동안 먹을 배와 더불어 서울로도 배를 한 박스 택배로 보냈다. 이제 철이 되면 전화 한 통으로 나주에서부터 배를 받아먹을 수 있게 됐다.
배를 사면서 무화과도 한 봉지 샀다. 민아는 무화과를 아무 맛도 안 나고 물렁한 과일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의 무화과를 먹고 나선 저녁때까지 무화과가 생각난다고 했다. 알맞게 익어 향이 무척 강하고 꽉 차 있다. 이제껏 먹은 무화과는 무화과가 아니었다면서, 사실 무화과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면서 내일 또 먹기로 했다.
사실 국물 요리를 크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나주곰탕에 대해선 큰 기대가 없었다. 나주에 왔으니 나주에서 곰탕 먹어봤다고 자랑할 수 있게, 역시 나주곰탕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메뉴는 곰탕과 수육 두 가지뿐. 수육도 곁들여 먹기 위해서 4명이지만 국밥은 3개, 수육을 한 접시 시켰다. 그러나 곧 국물도 같이 먹으라면서 국물을 한 그릇 가져다 주시고, 밥도 한 그릇 또 가져다주셔서 얼추 4그릇의 국밥을 먹게 됐다. 식으면 안 된다면서 국물을 또 한 바가지 부어주시고, 부탁하지 않아도 김치를 또 가져다주시고, 입가심을 하라며 콜라 한 병까지 받았다. 전라도의 인심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평양냉면을 먹으면서도 나는 굳이 수육을 시켜 먹는 편이 아닌데, 서울에서 먹는 수육은 높은 확률로 질기거나 텁텁하기 때문이다. 질겅이며 씹어 삼키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으니 굳이 도전하지 않는 메뉴가 편육이나 수육이다. 곰탕과 함께 나온 수육은 색이 짙어 질길 것 같다는 인상을 먼저 받았다. 그런데 웬걸? 먹어본 수육 중에는 가장 특이하고 부드럽고 또 맛있었다. 전라도 김치에 얹어 기름장에 찍어먹다 보니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 다 먹었다. 김치도 서울과 다르고, 참기름도 내가 먹던 그 맛이 아니다.
향교를 둘러보다 커다란 쌍무지개를 만났다. 무지개가 너무 선명하고 밝아서, 비현실적이다. 이렇게나 동그란 무지개는 또 처음이다. 무지개라기보다 오히려 거대한 조명이라고 하면 더 그럴싸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크고 또렷한 무지개는 처음 본다고, 우리 가족 4명 모두는 입을 모아 말했다. 진귀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나주는 도시 끝과 끝까지 차로 해봤자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영산강 옆으로 작게 움튼 나주는 거대한 평야를 품고 있지만 동시에 오밀조밀 작고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건물들과 널찍한 골목, 군데군데 비워져 있는 공간들은 자연스레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나주 향교와 더불어 나주의 문화재들은 마치 마을의 오래된 터줏대감처럼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문화재라고 해서 거대한 담장을 두르고 위엄 있는 자태로 근엄하게 서 있는 듯한 모양새가 아니라 그저 동네에 오래 산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문을 열고 있다. 방치가 되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문화재 앞에는 항상 잘 관리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정보를 얻기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로 돌아와서)
기대하지 못했던 작은 도시에서 큰 위안을 받아 버렸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여러 번 가족들과 나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또다시 나주에 언제 갈 수 있을지 괜히 달력을 들춰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니 나주 곰탕 생각이 더욱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