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립 석관동 꿈나무키우미돌봄센터 학부모 자조모임
글 김기민 (성북시민협력플랫폼 운영책임자)
사진·편집 최나현 (성북시민협력플랫폼 보조책임자)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소중한 보금자리가 자리한 동네에서, 생계를 위한 일터에서, 내가 삶을 일구어가는 여정 곳곳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자가용 없이 버스(Bus)와 지하철(Metro), 도보(Walking)로 이동하는 BMW 족인 제게 중요한 일상생활의 필요는 제가 걷는 보행로가 불법 주정차로 인해 가로막혀 있지 않는 것, 그리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저의 안전을 담보로 차도를 걷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보행 환경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임차인/세입자로서의 저는 제가 임대인과 맺은 임대차계약이 제가 원하는 기간 만큼 법에 의해 강력히 보호받는 것, 그리하여 보증금을 날리거나 터무니없는 월세 인상, 갑작스런 이사를 요구받지 않아도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확보하는 것 또한 저의 중요한 욕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저는 서울불편신고 앱을 통해 저의 애로사항을 신고하고 개선을 요청하는 민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소를 제기하고 법의 판단을 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만약 이런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면 어떻게 될까요?
성북구립 석관동 꿈나무키우미돌봄센터(이하 '돌봄센터')는 성북구가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 생명의전화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지역돌봄센터입니다. 여느 돌봄센터처럼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청소년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부모님으로 구성된 자조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법정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나 오랜 관례로 지속되어온 학부모회와 달리 지역돌봄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청소년들의 학부모님들의 자조모임(이하 '자조모임')은 말 그대로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곳이니까요. (이와 같은 경우가 흔한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1월 11일, 석관동 쓰레기문제해결 마을추진단 정기회의 자리에서 미호(닉네임) 님과 돌봄센터 전해숙 센터장 님을 처음 만났고, 그 날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1월 25일 자조모임의 구성원인 미호 님과 돌봄센터 센터장님 외 상근직원 두 분, 장위종합사회복지관 지역조직팀 이경화 사회복지사 외 한 분과 함께 자조모임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바람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지역 아동·청소년들의 이용하는 돌봄센터가 좀 더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용자 학부모·당사자로서 당연한 욕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날 모인 분들은 스스로 느끼는 필요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혹은 그 여정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나름의 고민과 조사, 탐색의 과정을 거쳤을 만큼 무척 열정적이었습니다. 미호 님은 큰 길에서 돌봄센터로 들어오는 골목길의 미관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자조모임 구성원들과 뜻을 모으고, 그 해법으로 벽화 설치를 제안하셨는데요. 이는 타 지역의 사례를 참고한 아이디어였고, 향후 추진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셨습니다.
내가 처한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면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지방정부, 공공기관 나아가 중앙정부 및 국가,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나와 연결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과 협력, 혹은 공적 의사결정에 따른 정책적·제도적·사회운동적 개입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기에 공공 자원은 충분하지 않고, 사회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무엇을 먼저 해결할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더 많은 공감을 얻은 문제의식들을 공공 의제로 설정하여 우선 순위에 놓고 문제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 안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제안하는 의제들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과 조금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들로 구분됩니다. 시민들이 한정된 자원을 사용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제도가 정치체제이고, 현대 사회는 그 제도로 민주주의를 채택했습니다.
가령 지역돌봄센터 주변 골목길 환경 및 미관 개선을 위해 벽화 설치 사업을 추진한다고 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벽화를 그릴 벽체 혹은 그 벽면이 속한 건물을 매입하고 벽화 설치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내가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공공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벽면을 소유한 이웃과 지역사회, 사업비 재원을 마련해줄 지방정부와의 소통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대개의 경우 공동체 또는 국가·지방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의 자원을 활용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지역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불가피합니다. 이 과정을 설계하고 추진해나갈 핵심 단위를 조직하고, 그 조직된 단위를 중심으로 돌봄센터 인근 골목길 벽화 설치 사업을 석관동 공공의제로 만들기 위한 공론화 과정을 열어 더 많은 공감을 얻고, 나아가 확고한 지지층을 형성시켜야겠지요.
이를 위해 타 지역 사례 탐방을 통해 벽화 설치가 지역에 가져올 변화를 가늠해보고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폐해를 살펴봄으로써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업의 득실을 비교해보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벽화 설치에 필요한 실질적 과제를 미리 알아보고 학습하여 실제 이 사업이 추진될 경우 앞으로 지역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사전에 점검함으로써 이것이 해볼만한 일인지 판단할 수 있겠지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은 명실상부하게 확고한 지지층이자 동조자, 나아가 추진 주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까요? 시민 개개인의 공적 욕구 확인·파악, 공론화 과정과 공감대 형성, 사회적 합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 대한 존중과 신뢰 없이 추진된 정책과 사업이 한국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민주화 이래 지난 30여년간 지방과 중앙 모두의 다양한 모범(?) 사례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시민의 뜻에 기초하지 않고, 어떤 정책과 사업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에게 그 변화를 충분히 안내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몇몇 권력자 또는 결정권자들이 야합하여 나눠먹기식으로 공공 자원을 배분하고 사용했지요.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더이상 공적 의사결정체계와 자원 배분의 과정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덤으로 '불신 비용' 또는 '갈등 비용'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불신과 갈등은 지역사회에서 공익 또는 비영리 영역에 참여하는 시민 자원활동가들의 참여 의지를 꺾고, 정부가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민원과 갈등을 이유로 망설이게 만들기도 하며, 애써 공들여 추진한 정책과 사업을 폐기하거나 원점으로 되돌리게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국가·공공 정책과 사업이 나쁜 의도로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나쁜 결과로 끝나거나 최소한 그 선한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공공 자원을 배분하고 투입하기에 앞서 충분히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국가와 지방정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주민공동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더이상 우리 사회는 어떤 한 사람 혹은 조직의 의지와 힘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군대에서조차 기존 상명하복의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지휘로는 그 목적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하물며 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고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겠다는, 누가 봐도 선한 의도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의도와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처음의 취지와 선한 의도를 소상히 알리고 안내하며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지리하고 멸렬한 과정을 포기하거나 간과해선 안 됩니다. 현대사회, 특히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한 지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집과 일터를 오갑니다. 그 집과 일터 또한 수시로 바뀝니다.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한 평생 살았던 과거의 전통적 공동체에서 통용됐던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뜻을 모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을 해내기 위해 누구의 지지와 동의를 구하고 어떤 협력자와 파트너를 확보하느냐 역시 관건인 시대입니다. 서울시 시민협력플랫폼 지원사업은 서울시 자치구 단위 지역시민사회가 시민들의 다양한 공적 욕구와 필요를 스스로 조직하고, 그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자체적인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쌓는 사업입니다. 성북구 지역사회 또한 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 구축사업추진단 컨소시엄(이하 '추진단')을 구성하고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추진단은 주민조직, 지역단체, 공적 네트워크들이 튼튼한 토대 위에서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 한국 사회의 공적 자원을 관리하고 운영하며 배분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단위들과 수평적이고 대등한 위치에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더불어 사회의 주요한 운영 주체로서 등장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합니다.
성북구립 석관동 꿈나무키우미돌봄센터 학부모 자조모임을 비롯하여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공적 욕구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주민모임, 지역단체, 네트워크들과 부지런히 접촉하고 논의하여 지역 공동의 의제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함께 하는 한편,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발굴하고 조직한 의제들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성북시민협력플랫폼이 함께 하겠습니다.
이 글은 함께살이성북사회적협동조합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글이 쓰여질 수 있도록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주신 성북구립 석관동 꿈나무키우미돌봄센터 학부모 자조모임의 미호 님, 돌봄센터 전해숙 센터장님, 장위종합사회복지관 이경화 사회복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문의
<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 구축사업추진단>
전자우편 co.platform.s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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