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2부>
텅 빈 공허의 삶은 욕구는 있지만 꿈은 없는 나날이었다. 그런 10대에게는 꿈이 필요했다. 살려면 필요했다. 그 아이는 꿈을 꾸었다.
바다를 항해하고 멀리 이국 땅을 오가는 삶. 그런 직업이 있다. 해기사다.
채울 수 없는 마음으로 살았던 어느 날, 그런 직업을 알게 되었다. 요트 면허를 취득하다가 알았다. 영혼도 없이 살았지만, 그 꿈을 꾼 순간 만큼은 선명히 기억한다. 나의 선배,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의 삶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오랜 바다 위의 삶을 정리하고, 요트 면허 강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선배는, 제복을 입는 학교에 존재와 상륙하여 만났던 이국 땅의 경험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항해의 순간들을 말해주었다. 강력한 것이었다. 그때의 감정을 이루 말할 순 없다. 설명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심장이 쿵쿵 뛰어 아리고, 피가 진해진 것만 같았다. 초점 없는 눈은 생기를 찾았고, 감정 없는 가슴은 시간을 느낀다.
그런 말들과 비슷하다. 몽글몽글 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 꿈을 붙잡을 순 있었다. 10대의 마지막은 나에게 어쩌면 구원이 될 그 학교를 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입시공부 따위에 관심 없던 나는 그 길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수능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며 얼마나 떨렸는지 모르겠다. 오랜 기다림의 끝. 다행히 합격이었다.
그 길로 대학을 진학했다. 그 일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려서, 수습 기관사로 실습을 나갔다.
그렇게, 나는 첫 항해를 떠났다.
첫 항해는 5개월간의 긴 여정이었다. 화물을 운반했다.
그 여정동안 나는, 180m 전장의 선박을 타고, 태평양을 6번 횡단했다. 그토록 원하던 이국의 땅, 미국과 멕시코, 일본을 보았다. 느꼈다. 식생부터 사람까지 너무도 다른 것들, 고 자극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아를 가득 채운 초원을 잊을 수 없다. 그 초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풀이 무성히 있었다. 그리고 가득 차있었다. 흰 말이 달리고 있었고, 능선이 걸친 곳에는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가 갔다. 초 저녁이 되면, 노을이 그 능선에 걸쳐서 아름다웠다.
롱비치, 그곳은 말 그대로, 긴 해안이었다. 빽빽한 불빛이 해안선을 가득히 채웠고, 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펠리컨과 물개들을 만난 일은 내가 마치 '걸리버 여행기' 영화의 한 장면에 있는 거 같이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긴긴 여정의 대부분의 시간은 바다 위에서 보내었다. 3주간의 항해 끝에 육지에서는 고작 2일의 시간이 전부였다.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설렘 가득할 줄 알았던 바다 위에서의 삶은, 느린 것이었다. 가득히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나에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바다에서의 시간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14노트, 시속으로 25km 정도의 속도로 항해하는 우리 배는, 속 터지게 만드는 큰 섬이었다.
하지만, 그 항해는 나를 바꾸었다.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심지여, 2일에 한번 25시간을 살아야 했다.
느리게, 더 느리게, 더, 더 느리게, 아주 느리게. 내 삶을 느리게 만들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사소한 변화들은 행복한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의 끝은, 설레는 것이었고 감동적인 것이었다.
메마른 감정이 점점 촉촉해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 가슴이 다시 쿵쿵 뛴다.
그래서, 오래 기다려온 육지가 감동적이었다. 처음 육지를 본 날, 그날의 공기와 습도, 강의 윤슬과 노을, 이국 땅의 사람들과 음식까지 무엇 하나, 기다리지 않은 것이 없다. 너무도 생생해서, 모든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고, 다가와 주었다. 잠깐이지만 옆에 있어준 것들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바다 위에서의 기다림은 힘들었다. 가끔 별도 보고, 바람도 맞고, 폭풍도 만났지만, 대부분 지루한 나날이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그때 읽었던 시집과 소설이었다.
영겁같이, 길었던 5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머나먼 이국 땅을 다녀왔지만, 그곳에 작가가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다음 항해에서는 꼭 찾을 거야, 생각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작가는 어디 있는 거야? 감동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춘 그들을 쫒는다.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깊은 욕망을 꿈꾼다.
<이어서, 3부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