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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하 SEONGHA Sep 17. 2024

작가를 사랑해 <3>

어디에나 있었다

느려진 시간과 돌아온 나의 나라에서,

작가는 어디에나 있었다


작가를 사랑해 <3> 마지막 이야기


<3부>


기나긴 항해가 끝나고 한글의 나라에 돌아왔다. 지극히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의 삶은 항해를 떠나기 전의 것과 같았지만,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바다에서 보다 느렸다. 실습을 끝 마치고, 하선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신기하게도 나도 "땅멀미"라는 것을 했다. 항상 출령거리는 바다 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나의 달팽이관은 "육지가 움직여! 비상 비상!" 알렸다.


시간의 주파수가 다른 것처럼, 그 시기에는 시간 지각의 왜곡, 시간 팽창이라고 설명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권투 선수들이 경기 중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고도의 집중 상태, 아드레날린에 의한 현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루하루 생생하고, 모든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과 같이 느껴졌다.


바다 사람들은 이것을 '땅멀미' 혹은 '육지멀미'라고 부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는 듯했지만, 나에게는 그토록 바랐던 기억의 매개체였다.


더 이상 위험과 소음이 없는 조용한 육지에서의 생활은 시간을 바다 위에서의 것보다, 더 느리게 흐르도록 했다. 반복적인 메인엔진의 소음과 파도소리가 없는 육지는 밤이 되면 무척이나 고요했다. 모든 게 신기했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빠른 시계'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더 빠를 필요도 없고, 더 느릴 필요도 없는 고요하고 안정적인 상태인 것이다. 육지에 돌아와서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이, 우리 '모카'였다.


'강아지, 모카'

항해를 끝내고,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식구가 되어있었다. 하얀 털을 가진 보슬보슬 조그마한 강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 동생도 성인이 되어 꿈을 찾아 집을 떠나고, 나 또한 출가를 해버린 것이니. 조용해진 우리 집에 막내 동생이 생긴 것이다. 모카는 하얀 털을 가지고 시크하며 소심한 성격이지만 내 옆에 있는 걸 좋아했다. 우린 이야기가 잘 통하고 모카는 잘 들어주었다. 자연스럽게 모카를 동생으로 받아들였다. "형이 간식 줄게 일로와" 하면 곧장 따라왔다.


 낮잠을 자는 것을 한참 바라봐도, 편안했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그를 바라보는 것이 즐겁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기 전, 우리 집 앞의 고양이와도 친구가 되었다. 집 앞의 길 고양이들은 까칠 하지만 점심시간 쯔음이면 햇살을 맞으면서 나뒹굴었다. 그 순간만큼은 공주님 같았다. 지나가는 말로 항상 인사를 건네니, 가끔 인사도 받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최고의 안식이자 편안한 시기였다. 그 시절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반드시 시간을 만들어서 했던 취미가 있었다. 바로 '카메라 촬영'이었다.


'카메라'

승선 실습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카메라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다 위의 시간들 속에서 이따금 발견한 아름다운 순간들은 어쩌면 지구상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작가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아두었던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사진작가라면 알아야 할 지식들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공부했다. 'LIFE 잡지'에 실릴 어마어마한 사진은 찍지 못하더라도, 단 한 명, 그 누가 봐준다면 보람찰 거 같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망망대해에서의 저녁 풍경은, 그만큼 담아 올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졸업을 하고 승선을 한다면, 아직 시간이 많으니 그때까지 익숙해져야 해!


카메라와의 인연은 작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카메라를 공부하기 시작하며 가장 집중한 것은 "그 순간을 오로지 나의 시점으로 남기고, 결과물로 누군가에게 감정을 전하는 것"이었다. 노출, 화각, 포커스, 주사율, 화이트벨런스, 공부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있었지만, 하나씩 알아갈수록 내가 바라본 풍경과 사진이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시간을 쓰는 만큼 성장하는 작품은 내일을 설레게 했다. 정말 몰입했다. 하루종일 사진만을 생각하고, 늘 아쉬움이 남은 사진들이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는 것이라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렘에 잠 못 이루었다.


사진에서, 중요한 건 그날의 풍경을 정직하게 담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나의 감정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려서, 드디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건졌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작자였는 지도 모르겠다. 마음만큼은 작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나에게도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도구'가 생겼는 뿌듯함을 느꼈지만,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던 거 같다.

<색채가 밝은 밤> 2022년 9월 12일
<북두칠성과 실루엣> 2022년 9월 22일

'색채가 밝은 밤'


의도를 담아서, 강조하고, 생략하고, 축소하고 자르고, 추가하고 빼고, 초점을 맞추어서 만들었다. 지극히 의도적이고 나의 감정이 담긴 것이었다. 그런 자식 같은 존재를 낳고 나니까. 다른 이들의 창작물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시점에서 본 것을 의도적으로 ‘감정’과 ‘시점’을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점의 변화'


사람은 세상을 이해할 때,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의도하여 만들기 전과 의도하여 만든 후로, 세상에 없던 것이 존재한 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모든 것에는 작가가 있었을 것이고, 무의식 중이라도 그의 의도가 분명히 담겨있을 것이다. 감정을 담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선명해지고, 색채가 화려해졌다. 작품들을 유심히 보았고, 작가의 존재를 느꼈다. 사랑하니깐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깐 이런 의도 아니었을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또한 너그러운 생각으로 만들고 다르게 이해하는 화자를 보았을 때,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작가도 너그럽게 볼 것이고 나의 새로운 시각을 재미있어할 것 같았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멋진 사진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라이프 잡지와 National Geographic을 많이 보았고 영감 받았다. 상상의 나래로 머릿속의 것들도 꺼내어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그리 아득히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자세히 보면 보일 것이었다.


사실, 작가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제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 너도 작가이고, 오늘 나에게 귀여운 카톡을 보낸 너도 작가이다. 다만 사랑해 줄 관객이 없을 뿐 모두가 작가였던 것이다.


10대에는 몰랐고, 지금은 느낀다. 작가는 가까운 곳에 있다.


준비물: 여유로운 마음


<작가의 말>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그 인상 깊었던 망망대해의 저녁 풍경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꼭 카메라에 담아서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작가를 사랑해> 긴 서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것, 그 중에서 '글쓰기를 사랑한 건'으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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