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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Dec 12. 2019

아는 게 너무 많다_To Takhek, Laos

조금은 몰라야

육로로만 여행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챌린지를 시작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까진 흥미롭고 재밌다.

동남아시아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흥미로운 게 있다. ‘전기가 있긴 있나?’싶은 곳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내가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나는 전기가 없는 게 잘 상상이 안 간다. 잘 닦여진 도로를 달리는데도 자동차 헤드라이트 이외의 불빛은 찾아볼 수 없는 게 흥미롭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은, 그건 아니다. 사람이 산다. 물론 많이는 아니지만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처럼, 서로 멀찍이 떨어져 집들이 있다. 개인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함도 아니고, 교통편이 잘 되어있어서 왕래에 불편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냥. 밤이 되면 가로등도 없어서 모든 게 캄캄해지는 공간에 집 한 채가 덜렁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걸까?’

내가 살 집은 아니지만, 집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어떤 곳을 원하는지 필터링을 해야 한다. 내가 제일 중요시했던 필터는 역세권이다. 지하철역에서 5분 내로 집에 들어갈 수 있어야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찾다 보니 역세권에 속한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게다가 마침 그 집은 스세권, 맥세권에도 속해 있단다. 5분 거리에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맥도널드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마실 수 있었고, 밤늦게 배고프면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삶의 질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꽤나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곳이었다.

‘저 사람들은 과연 편안할까? 행복할까?’

라오스엔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아예 없다. 또 대중교통이라곤 툭툭이 전부다. 역세권, 스세권, 맥세권이 무의미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 곳은 ‘삶의 질 점수’가 0점에 가까울 테다. 하지만 그런 곳에 사람이 산다. 그들은 ‘X세권’에 관심도 없다. 심지어 지하철이 뭔지, 스타벅스, 맥도널드가 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산다. 그리고 웃는다. 그곳은 그들의 집이니까. 그 자체로 편하고 행복해 만족스러우니까.

우리는 많은 것들을 따진다. 수많은 필터링을 한다. 살기에 편안한 집, 보다 나은 집을 찾기 바쁘다. 우리의 잣대로 위에 말한 저 집들을 생각하면, 그만큼 불편 한 집이 따로 없을 거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그저 행복하다. 점수를 매기는 잣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점수는 깎여 나간다. 이미 완성된 만족에 우리는 이런 잣대 저런 잣대를 들이밀며 우리의 점수를 스스로 깎아내는 거다.

이제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걸 알아서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바라는 건 아닐까?

아는 게 힘이라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알면 알 수록 갖고 싶어 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조금은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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