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노래와 춤이 끝나는 순간 절망감, 토드 필립스의 성취

망상에서 깬 아서 플렉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고

영화 <조커:폴리 아되>(Joker: Folie a Deux)는 장르에 대한 정보 없이 보러 간 영화다.

토드 필립스 연출의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가가의 조합이라니, '어떤 시너지가 전해질까'라는 작은 기대감에 영화관을 찾았다. 2년 전, 세상을 뒤흔들며 고담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수용소에 갇혀 최종 재판을 앞둔 채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서 플렉’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야기 도입부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삽입한 이 작품은 전편에서 유명 코미디쇼 생방송 도중에 자신의 우상이었던 코미디언 머레이를 살해하며 세기적인 연쇄살인마로 고담시 소시민들의 추앙 속에 아캄 수용소에 수감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을 조명한다.

영화 속 추종자 할리퀸 리(레이디 가가 분)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범죄액션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조커의 교도소 탈출이 시작될까 라는 기대감 속에 집중했던 필자의 예상과 달리, 무기력한 조커가 수용소 정신병동에서 할리퀸 리(레이디 가가 분)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려낸다.


삼류 코미디언인 자신을 조롱했던 세상을 향한 '언더독'의 복수와 조롱을 대신했던 '조커'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굽은 등뼈만 앙상이 드러낸 채 교도관들의 학대와 조롱에 농담의 말문마저 막힌 아서 플렉은 자극적인 속편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실망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전편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둔 토드 필립스 감독은 상업 영화의 속성을 띤 속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한다. 하지만, 상업 영화의 결과 다른 예술 영화 측면이라면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폴리 아 되'는 프랑스어로 망상을 공유한다는 뜻인데, 토드 필립스 감독은 전편에서 핵심적인 주제인 '망상'을 토대로, 이번 작품에서 노래와 춤을 반복하는 블랙코미디 뮤지컬로 장르적 재미를 풀어낸다.


극 중 주인공들이 파국을 향해 치닫는 과정은 마치 지난 202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나 음울한 염세주의가 강조됐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어둠 속의 댄서> 개봉 당시 관객들이 가졌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큰 기대 없이 상담사와 대화에서 유명코디 언 머레이 살인 사건에서 '음악이 떠오른다'라고 운을 뗀 아서 플렉으로부터 관객도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망상 할리 퀸과 조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토드 필립스 감독은 독방에 갇힌 채 비애감에 찬 아서의 비극을 극대화한 장치로 뮤지컬이란 장르를 채용한다. 뮤지컬은 짧은 시간 속에 등장인물의 감정을 최대화할 수 있고, 비현실적인 환상성을 극대화해 극 중 두 주인공의 망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라라랜드>의 세기말 편이라 할 만하게 아서 플렉과 리의 망상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욕망을 황홀한 댄스와 주옥같은 팝 넘버들 소환한다. 아서가 자신의 욕망을 담배 연기에 태우며 읊조리듯 부른 노래부터 레이디가가가 솔로로 부른 'That's life'와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에 이르기까지 아서의 복잡한 내면을 전달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재관람 욕구가 들게 하는 것도 주옥같은 넘버 탓이다.

검사 하비덴트와의 세기적인 재판을 앞두고 있는 아서 플렉에게 상담사 와의 대화는 잠자던 망상을 일깨우고, 할리퀸은 "당신에게 모두 열광하고 있다"라며 힘없고 활기 없이 무력한 그의 내면에서 '조커'를 다시 불러낸다.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는 할리퀸과의 첫 만남은 어쩌면 비극적인 로맨스의 복선일지도 모른다. 아서 플렉에게서 '조커'를 욕망하는 할리퀸과 죄책감에 대한 회한 소에 평범한 일상을 욕망하는 아서 플렉의 망상은 제대로 공유되었을까, 아니면 반대일까?


법원 재판에 참석한 현실의 리(레이디 가가 분)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서 플렉이 폭력적인 성향의 조커와 인격 분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변호사와 정신과 전문의는 세기가 주목하는 사건에서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아서를 도구화한다. 정신과 전문의 출신으로 조커에 관심을 가지며 정신병동의 수감까지 자처한 할리퀸과 그의 추종자들은 아서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상류층을 대변한다. 전작에서 살인 사건을 목격한 개리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일하게 아서와 계급적인 동질감을 형성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삼류 코미디언으로서 아서 플렉의 계급적인 한계와 더불어 사회 전복을 꿈꾸는 일부 상류층들의 망상이 조커와 공유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영화 제목의 '폴리 아 되'를 은유적으로 빗대어 황홀한 춤과 노래로 할리퀸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아서 플렉의 망상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그녀의 거짓말이나 자신의 망상을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도입부에 복선처럼 심어 놓은 애니메이션은 무기력한 현실을 비로소 깨닫는 그의 망상을 깨려는 건 아니었을까!


두 시간 여 동안 클래식한 주크박스와 판타스틱한 망상으로 가득 채웠던 토드 필립스의 텍스트는 주인공 아서는 물론,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망상으로부터 깨어날 시간임을 안내하는 동시에 영화로 완성되는 슬프고도 찬란한 조커의 비애를 시네마틱한 새로운 문법으로 구현해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Written by 소셜큐레이터 시크푸치

매거진의 이전글 의리와 배신 속 지옥도에서 영원한 안식 얻은 '존 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