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람 칸 컴퍼니 <정글북 : 또 다른 세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기후 위기는 다음 세대가 아닌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최악의 가뭄, 녹아 없어져가는 빙하 그리고 광주-전남 물부족 현상으로 인해 제한 급수의 가능성까지 우리는 현재 기후 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는 각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잿거리이다. 텀블러 챌린지, 종이 빨대 사용 캠페인 등 분야만의 방법대로 환경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환경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2022년 11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현대무용단체인 아크람 칸 컴퍼니는 <정글북 : 또 다른 세계>라는 작품을 들고 유럽투어를 마친 후 한국 공연장으로 향했다. LG 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18~19일에 공연된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이 접해봤을 리디어드 키플링 원작 소설 <정글북>에 기후 변화 요소를 활용하여 새롭게 창작된 작품이다.
아크람 칸 컴퍼니 <정글북 :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작품의 2가지 요소를 다루려고 한다.
애니메이션 영상의 활용 기법과 스토리텔링의 무용극을 다뤄보려고 한다.
애니메이션 영상 활용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증강현실 효과 무대 연출
먼저, 작품 속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작품의 안무자 아크람 칸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투어를 다닐 때 가볍게 다닐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세트나 소품 활용 대신 영상 투사 기법을 적극활용하였다. 아크람 칸의 이전작 <데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이스트컬처(YeastCulture)의 제작 애니메이션 영상이 공연에 함께 어우러지면서 작품의 황폐화된 도시와 해수면 상승의 모습, 코끼리와 새떼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화려한 색의 표현보다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영상은 단순하면서도 동화적인 연출을 꾀해 무용수와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였다. 이는 보는 관객들이 이질적이라 느끼지 않고 같은 시-공간으로 인식해 입체적으로 어우러지는 효과를 보였다.
영상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1개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는 단일화 형식이 아니라 2개의 막을 무대의 앞, 뒤 각각에 배치하는 방법을 통해 영상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입체적인 요소로 인식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배치는 기존 백그라운드 성격으로 활용되었을 무용 공연의 영상과는 달리 무용수가 함께 영상과 호흡하고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연장 무대에서 공연 호흡 형태는 점점 변하고 있다. 무대 위 무용수들만의 호흡에서 백그라운드 영상과 무용수들의 호흡을 지나 입체적 영상과의 호흡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과의 호흡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시야는 2023년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연출가 그리고 안무가를 꿈꾸는 신예 무용수들에게도 중요한 관점으로 적용될 것이다.
즉, 관객과 호흡을 이루는 방법이 현장 속 무용수들의 움직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영상 연출은 실제 관객이 공연 배경에 함께 공존하며 호흡하는 효과를 보여주었으며, 호흡의 대상이 무용수를 넘어 이제는 공연 자체와 호흡한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대사와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무용극 형태 기획
두 번째는 대사와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무용극 형태이다. 공연은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으니 높은 곳으로 향하라는 경고 방송과 함께 시작되고, 땅이 바다에 잠기고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영상이 투사된다. 이윽고 영상이 희미해지면서 황폐화된 도시로 떠밀려온 '모글리'가 무대 위에 보이고, 도시의 동물들이 '모글리'를 발견하며 극은 시작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무용수가 녹음된 내레이션 즉, 대사에 맞게 몸을 움직인다. 또한, 이 대사는 영상막에 번역되어 자막으로 표현되기에 이러한 대사 표현은 극의 기승전결 형태를 이끌어 가는 데에 효과적이었으며, 무용수들의 움직임 형태로 감정-표정-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표현을 몸의 언어라고 해도 좋을 듯싶었다.
이러한 요소 때문이었을까? 무대 위 무용수들이 각각의 동물 의상과 분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정글북 이야기 속 동물들의 특징을 살려낸 무용수의 생생한 움직임과 군무는 화려했으며, 비단뱀을 박스로 표현해 무대에서 활용한 아이디어도 흥미로웠다.
결국 그 중심에는 짜임있는 스토리가 존재했다. 건물은 기둥부터 튼튼해야 한다. 공연도 마찬가지이다. 공연의 기둥 즉, 스토리가 튼튼하다면 그것을 무용수가 표현하기에도 관객이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안무자는 그 스토리에 자신의 메시지를 조심스레 숨겨 놓는다.
이처럼 대사 표현 기법을 통한 스토리텔링 무용극이라는 공연 형태를 정의한 <정글북 : 또 다른 세계>는 이 시대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아크람 칸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기법이 아닐까 싶다.
아크람 칸 컴퍼니 <정글북 : 또 다른 세계>의 안무자 아크람 칸은 정글북 속의 또 다른 세계를 기후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크람 칸이 새롭게 바라본 정글북은 초록빛이 가득한 숲이나 맑은 물이 흐르는 울창한 정글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동물원과 실험실에서 풀려난 동물들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의 황폐화된 도시가 배경이 된다.
아크람 칸은 '연출노트'를 통해서도 기후를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전례 없이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건 인류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종족들에게도 마찬가지", "이 난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우리의 고향인 이 행성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 등 기후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면서도 인류가 잊어버린 것을 다시 배우기 위해서는 정글북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 하고 그 수단으로는 춤과 음악 그리고 공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글북 : 또 다른 세계>는 작품 안에서 낙관적인 모습이나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지구에 초대받은 손님일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무대를 보았을 땐 화려하고 뜨거운 작품이지만, 텍스트로 읽었을 땐 그 무엇보다도 차갑다.
<정글북 : 또 다른 세계>를 보고 공연장을 나온 뒤 작품의 메시지가 머릿속에 맴돌며 이러한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는 현대사회 문명 발전을 이루면 이룰수록 자연에게 빚을 진다.' 자연과 공존하지 않는 인류의 모습은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작품에서도 말했듯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기후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정글북 : 또 다른 세계> 속 해수면 상승으로 대피하는 인간의 모습과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 기후 위기란 우리 다음 세대가 겪을 문제가 아닌 우리가 겪을 문제란 것이다.
아주 가까이 다가온 기후 위기.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 아크람 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 2022. 11. 18 ~ 11. 19
- 서울 LG 아트센터 LG SIGNATURE 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