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를 처음 알게 된 건 군생활 시절 내무실 TV에서 나오던 음악 프로그램에서였다. 윤하는 피아노 건반을 침과 동시에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고 TV 스피커를 한번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윤하의 목소리는 시원한 맛이 있었다. 몇 개의 노래가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히트하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꽤 많이 출연했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는 군 전역을 하고 대학교에 복학했고 어느 날 공강시간 학식을 먹으러 학교 식당에서 식권을 사려고 대기하던 그때 내 뒤쪽에서 무언가 인기척이 나서 보니 숏컷을 하고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한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뒤에 있었다. 그 소년? 과 나는 눈이 마주치자 아주 어색하게 눈 인사하였고 그 친구는 대기줄에서 잠깐 기다리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줄을 이탈해서 곧 다른 방향으로 급히 사라졌다. 그리고서 곧장 학교 선배와 후배가 나한테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물었다.
선배 : 너 아까 쟤 알아?
나 : 누구요? 아까 꼬마요?
후배 : 꼬마라뇨.. 아까 저 사람 윤하예요.
나 : 윤하가 누구냐? 신입생이냐?
후배 : 가수예요. 일본어과 잔아요.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이목구비가 TV에서 보던 그 윤하하고 닮은 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찢어진 청바지와 워커 같은 신발을 신고 있어서 중성적으로 보여서 내가 꼬마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언제인가 윤하가 일본어과에 신입생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 바로 뒤에 있던 그 친구가 군대 내무실 TV에서 많이 보이던 그 윤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러고 나서 신기하게도 학기 중에는 대학교가 있는 이문동, 활동을 할 때는 TV에서 보는 식으로 생각보다 꽤 자주 윤하를 직,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윤하는 남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자주 학교에 나타났다. 저학년일 때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는데 고학년이 되어서부터는 머리도 길게 기르고 분위기도 차분해 보였다. 처음에 봤을 때는 락커의 분위기였는데 점차 발라드 가수로 변화한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 학과 행정실을 가려고 학교 본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윤하가 나타나서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왔고 나는 나름 바쁘신 분이 일처리를 먼저 하게끔 윤하에게 엘베를 먼저 타라고 양보하였다.
나 : 먼저 타십시오.
윤하 : 아 괜찮은데(웃음) 감사합니다.
윤하는 정말 바빴는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후딱 타고 올라갔다. 근데 어차피 나도 같이 타서 다른 층을 간다고 해도 윤하의 스케줄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인데 괜히 오버했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나는 곧 졸업을 하고 동대문구와 성북구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신림동으로 떠났고 이후 윤하도 학부를 졸업하였다는 것을 연예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2014년 여름이었던가 운동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하고 여의도 공원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근데 공원 저편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이기 시작하였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밤늦게 윤하가 와서 버스킹을 한다고 한다. 오래전에 소식이 뜸했던 친구 근황을 들은 것처럼 괜히 반가운 마음에 운동이 끝나고 한참을 기다려서 윤하가 오기를 기다렸다.
몇 년간 못 봤던 윤하를 또 한 번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그녀의 분위기는 학교에서 봤던 느낌과는 또한 달랐다. 의상도 화사해졌고 무엇보다 키가 많이 커져서 왜 그런가 봤더니 킬힐도 신고 다녔다. 윤하는 밤늦게까지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며 그때까지 히트했던 자신의 곡들을 전부 불렀다. 희한하게 윤하에 대한 느낌은 대중가수라기보다는 뭔가 성공한 대학교 친구 같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소식 들었을 때 반가운 친구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서 또 십 년 후인 2024년, 올림픽공원에서 운동하고 집에 가는데 윤하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데뷔한 지가 꽤 오래된 가수인데 이번 콘서트의 콘셉트는 소녀 감성이었다. 피식 웃다가 SNS를 검색해 보니 콘서트뿐 아니라 이번에 나오는 신규 음반의 콘셉트도 ‘항해를 하는 소녀’라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 볼까 해서 윤하의 광팬이라는 분들과 함께 윤하 콘서트장을 찾았다. 공연장에 나타난 윤하는 여의도에서 보았던 그 느낌과는 또 완전히 달랐다. 물론 그래도 연예인은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지라 교복을 입고 노래를 불러도 딱히 큰 위화감은 없었다. 본인도 콘서트 중간에 대화 시간에서 자기가 데뷔가 20년 차가 다되었는데 소녀 콘셉트를 하고 있다고 매우 힘들다고 하였다.
춤도 추고 새로 배운 기타도 연주하고 윤하는 열심히 관객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콘서트가 서울에서 3일 연속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연예계가 자기 관리도 힘들고 시대에 뒤처지면 금방 도태되는 곳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인기를 유지하다니... 아무튼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함께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초기에 히트했던 노래 말고는 아는 노래는 잘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콘서트를 보는 목적도 있지만 오래전 알게 된 지인의 근황을 보러 간 측면도 있다.
콘서트 중간중간 윤하가 말하길 자기는 50년 정도 활동하면서 본인이 이끄는 밴드도 같이 이끌고 가고 싶다고 하였다. 가창력과 무대 호소력을 보니 50년까지는 몰라도 2~30년은 충분히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티켓 파워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데뷔 20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소녀감성을 내세워서 성공시키는 가수 윤하의 꾸준한 선전을 기원했다. 대 가수로 자리 잡은 윤하도 저렇게 기타도 배우고 열심히 사는데 나도 분발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