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에세이에 몇 번은 꼭 쓰게 되는 자신만의 주제가 있다. 저만 그런가요? 일단 나의 경우 (또 이야기하는 것이 면구스러울 정도인)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와 맥주 등 소소한 행복의 관하여 쓰곤 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술술 나오는 법이니까. 이번엔 반대로 싫어하는 주제로 써보게 된다면 어떤 주제에 관하여 쓸지 생각해 봤다. 몇 개를 꼽아봤는데, 국회의원과 벌레 그리고 오지랖이 최종 리스트로 남았다. 국회의원과 벌레는 그 종을 불문하고 두루두루 싫어하지만 전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글이 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후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벌레 종류에는 수만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지네‘를 가장 싫어한다. 지네는 움직임만으로 식욕을 저하시키는 능력이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꺾이기까지 한다. 생각할수록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생물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때 지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내 다리가 많아서도 아니고, 발을 다른 각도로 꺾을 수 있어서도 아니었다. 당연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내가 신발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뭐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있다고 이쪽도 생각하고는 있지만 신발들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에 나와 신발 모두 억울한 면이 있다.
일단 헬스 전용 운동화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이용하는 헬스장은 실내 전용화를 신지 않고 운동하면 쫓겨날 수가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비했다. 뉴발란스와 디스이즈네버댓의 콜라보 제품으로 화이트 컬러의 스니커즈다. 본래 목적은 운동용이 아닌 평소의 신을 목적으로 구매했으나 언제부턴지 손이 잘 가지 않아 헬스 전용으로 쓰고 있다. 미안합니다, 뉴발란스.
그리고 달리기를 할 때 신는 운동화 3개가 있다. 과연 여러 개가 필요한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항변하자면, 나는 최근 매일 러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화 세탁을 자주 하고 있다. 세탁을 하면 신발이 완벽하게 마르기 전까지 여분의 존재가 필요할 수 있다. 상당히 타당한 이유 아닙니까? 아무튼 나는 뉴발란스와 아식스, 언더아머 제품을 가지고 있다. 뉴발란스는 블랙 컬러고 아식스는 진베이지 컬러, 언더아머는 화이트 컬러다. 셋 중에 가장 선호하는 러닝화를 꼽아보라면 망설임 없이 언더아머의 손을 들어줄 생각이다. 가볍고 유연한 데, 마냥 헐렁거리지 않고 발을 딱 잡아주는 우수한 러닝화다. 다르게 말하면 뉴발란스와 아식스는 투박한 느낌이 있어서 언더아머를 세탁할 때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뉴발란스 2탄.
다음은 가벼운 트레킹이나 등산을 할 때 신는 신발. 나이키 ACG 운동화다. 나이키 ACG는 트레킹 라인을 부르는 명칭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스핀오프 제품군이다. 이것의 컬러도 브라운. 평상시에 신고 다니는 멋들어진 운동화였으나, 새 신발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트레킹화로 전락했다. 이래저래 오르기 어려운 산을 함께 올랐기에 기능적인 부분은 합격이다.
구두의 대용으로 신는 신발도 있다. 평소 슈트를 입지 않는 자유복의 인간이기에 오직 경조사의 목적으로 구매했다. 닥터마틴 제품이고 컬러는 역시나 브라운이다. 슈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운동화를 신는 게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 구매했다. 사실 결혼식에도 참석할 일이 별로 없어서 상자에 고이 모셔져 있다. 디자인이 깔끔해서 일상복에도 잘 어울리겠지만 평상시에 신지는 않고 있다. 앞으로도 없겠지만.
대망의 마지막. 그 주인공은 바로 뉴발란스 991 제품. 사실 이 제품이 끝은 아니다. 아직 언급하지 못한 제품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남아있다. 허나 다 이야기하면 글이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메타포적인 마지막이다. 이 제품의 제조국은 잉글랜드인데, 뉴발란스의 다른 제품들보다 가격이 2배 가까이 비싸다. 또 이 제품군(991,992,993)은 마니아층이 확고하여 재고를 손에 넣기 까다로운 편이다. 참고로 스티브 잡스가 즐겨 신은 신발은 992 제품이다. 예전에 한 번 구매를 고민했었지만 리셀 가격대가 너무 비싸서 구매를 반려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맞이한 생일날에 큰맘 먹고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웬걸, 마음에 드는 신발의 가격이 상당이 합리적이었다. 충동적으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그 결과는 대. 만. 족. 왜 이제야 구매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만족하며 신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좋은 신발 신었다.” 또는 “와 진짜 이쁘다.”라고 말하면 괜히 내 어깨가 들썩인다. 이것도 역시나 또 브라운 컬러다.
글을 써놓고 문득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이제까지 인식하지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신발장에 놓여있는 대부분의 신발은 브라운 계통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는 옷과 신발을 고를 때면, 비록 브랜드는 다를지라도 선택하는 컬러는 고정되어 있었다. 티셔츠는 화이트 위주, 바지는 어두운 계통을 선호하였고, 신발은 브라운 위주로 선택했었다. 이런 식으로 옷과 신발을 잔뜩 구매하다 보니 매일 다른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신어도 ‘너 어제 외박했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누구(스티브 잡스)처럼 같은 옷만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