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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민 Oct 20. 2024

미즈와리 비치

(단편소설)

 7월의 어느 날, 재즈가 배경으로 흐르는 바 끝자리에 앉아 있다.


 “그 상을 타서 기분이 좋으십니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그가 말을 꺼냈다. 그의 잔에는 시바스리갈 18년 산이 담겨있다. 위스키에 대한 철학이 없는 나조차도 시바스리갈은 맛있는 술이라 생각한다. 나는 위스키를 마실 때면 미즈와리로 마신다.

 그 역시 미즈와리 파다.


 ”좋지만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랄까요. “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무엇을 덧붙여야 좋을지 몰라 애꿎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전에 제가 책에 남겼던 내용을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쿠타가와상을 좋아할까, 그것이 항상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


 어느 정도 나올 거라 예상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대답하기가 더욱 망설여졌다. 나는 시바스리갈을 홀짝거리다 잔을 들어 전등에 비춰보았다. 잔에 비친 전구는 태양 같이 빛났고, 시바스리갈은 바다처럼 출렁였다. ’이런 그림 어디서 본 적 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그림은 없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있다. 마치 어떤 대답을 바라는 것처럼.

 ”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 나는 대답했다. 그의 눈을 쳐다보지 않은 채로.


 지난주, 나는 17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제대로 글을 쓰자 마음먹고 약 2년 만의 일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떨떨한 기분이다.

 지금 내 옆에 앉은 하루오 씨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두 번 올랐다. 하지만 두 번 다 고배를 마셨다. 아쿠타가와상은 신인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작가로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후보로 올리지 않는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쿠타가와상과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점을 조롱한다. 심지어 <하루오는 왜 아쿠타가와상을 타지 못했나?>라는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다. 하루오 씨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어보았다. 어이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하루오 씨가 이야기 한 책 속에는 ‘상’의 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있다. 역시나 나는 그 책도 읽어보았다. 세 번. 그가 집필한 책으로 나는 작가를 꿈꾸게 됐고, 언젠가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일본어로 된 책을 쓰고, 상을 수상하고, 그와 이야기를 한 번 나누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를 동경하고 그의 글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리고 오늘 꿈꾸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상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있을까요? “

 긴 침묵을 깨고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큰 의미가 있을까요? 아쿠타가와상이란 원래 분게이슌주라는 일.개.출.판.사.가 주관하는 사적인 상에 불과합니다. “

 직설적인 그의 말투는 꽤 단호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입니다. 어떤 문학상도 훈장도 호의적인 서평도 내 책을 자기 돈 들여 사주는 독자에 비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

 ”옳은 말씀이십니다. 분명,“ 내가 대답했다.

 ‘분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당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표현하여 언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어찌 되었든 축하드립니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이것은 저라는 한 사람의 의견일 뿐, 아쿠타가와상은 신인 작가들께 상당히 영광스러운 상이지요. “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온화해졌다. 분명히.

 ”감사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대답했다.

 “당신이 한국 사람으로서 최초의 수상인가요?”

 “앞전에 재일교포 몇 분이 이미 수상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일본 분이나 다름없는 분들이지요. 최초의 수상은 당신이라 보아도 무방하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남아있던 시바스리갈을 비워냈다.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


 그가 나를 향하여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도 몸을 돌려 앉아, 그를 마주했다. 지금 마주 보는 이 사람의 책을 읽고, 나는 꿈꾸던 ’작가‘가 됐다. 부족하지만 소설 몇 편을 써냈다. 일본어를 사용하여 처음 집필한 소설로 나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꿈만 같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현실의 경계가 어쩐지 모호한 느낌이다.


 ”호사유피 인사유명. “ 그가 침묵을 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내가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어디까지나 메타포적 설명이지만 상은 가죽입니다. 작가는 사람이기에 이름을 남겨야지요. 바로 ’작품‘이 작가의 ’이름‘인 것입니다. 당신은 삼 년 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기억하십니까? 오 년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억하십니까?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아마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영광스러웠겠지만요. 허나 작가가 진심을 다하여 작품을 썼고, 그 작품들이 제 기능을 한다면 결국 시간의 흐름이 증명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요.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랜 시간 남겠지요. 문학상은 작품을 일시적으로 각광받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결코 불가능합니다. “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에게 해주신 말씀 앞으로도 마음에 잘 새기겠습니다. “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창문을 올렸다. 이윽고 택시가 출발했다.

 허벅지 안쪽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으악‘ 아프다. 확실한 현실이다.



 귀국 당일, 공항 터미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과일 샐러드를 샀다.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꼽고 그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밤, 저는 서울로 돌아갑니다. 조금 부답스럽게 들릴까 하여, 차마 드리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게 있어 당신의 책은 성경과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하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예상하시지 못하시겠죠. 저와 많은 독자분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이 아니어도 좋으니, 부디 책을 더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작가님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더 늦기 전에 사적인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작가님의 소설 속에는 초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현실과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고, 이내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있지요. 이번 한 주 동안 저는 작가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지요. 일본에 있는 기간 동안 제법 얌전한 척했지만, 사실 매 순간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잘 참아냈습니다.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며.-



 한 번 검토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영원하길 바랐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우치게 됐다.

 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이 김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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