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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민 Oct 27. 2024

문신 지우기

흔적을 없앤다는 것

 어느덧 두 번째 시술을 받은 지도 두 달을 넘어갔다. 시술 주기(보통은 6주-8주)를 지나 3회 차를 받아야 할 시기는 이미 도래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는 점이다. 문신 제거는 레이저 시술만 받고 끝이 아니라, 사후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모든 피부과 시술이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한여름에도 선크림조차 제대로 바르지 않는 사람이다. 날짜가 다가왔다고 무턱대고 시술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또, 시술이 끝난 당일과 다음날까지 붕대를 감아놓고 생활해야 하는 점도 망설이게 했다. 범상치 않은 여름의 더위는 10월 초까지 이어졌다. 가을은 찾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하염없이 가을을 기다리다가는 지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했다.


 예약 당일, 정말 허겁지겁 도착했다. 숨을 잠깐 고르자 간호사분이 마취 방법을 물어봤다. 마취 약과 마취 주사가 있는데, 마취약은 40분 정도가 지나야 시술이 가능하고 마취주사는 20분 정도 후에 시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업무로 복귀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마취약을 택했다. 그렇다. 나는 심각한 바늘 공포증을 앓고 있다. 마취약을 1,2차로 나누어 15분씩 총 30분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흰색 크림 스타일의 마취약. 보통 40분을 기다려야 효능이 극대화되는데, 나는 15분 만에 끝냈다. 그리고 바로 첫 번째 레이저 시술에 들어갔다. 레이저가 왜 두 번으로 나누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문과인으로서 설명하자면 첫 번째 레이저는 잠들어 있는 잉크를 깨우는 과정이다(아니면 죄송). 이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희미해졌기에 나는 척하고 팔을 내밀었다. 파블로프의 개를 아는가?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레이저가 살갗에 닿는 순간 이마에 땀이 삐질 흘렀다. 아프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사실 잘못된 것은 내 기억이겠지만. 이어서 쉬는 시간 없이 두 번째 마취약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투명한 마취약이다. 심장처럼 쿵쿵 뛰고 있는 환부에 마취약을 도포한다. 고통으로 의식은 잠시 흐려져있다. 그리고 15분이 흐르고 마취약을 닦아냈다. 2차 대전의 시간이다. 이제는 땀이 먼저 마중 나왔다. 반응 속도는 파블로프의 개보다 빠르다. 나는 사람이니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 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 레이저가 시작됐다. 첫 번째보다 시간은 길지만, 문신을 새기는 시간보다는 훨씬 짧은 편이다. 이렇게 3회 차 시술도 끝이 났다. 짧지만 강력하게.


 새로운 거즈로 교환하고 약을 바르기 위하여 다음 날 병원에 갔다. 택시는 오늘도 병원 코너를 도는 길목을 막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꺾었다. 두 번 속지 않는다(사실 총 세 번 속음). 어제 붙였던 거즈를 떼어내자 시술 부위와 맞닿은 단면은 거무죽죽 히 물들어 있었다. 잉크가 겉으로도 빠져나온 듯해 보였다. 약을 바르는 동안 문신 제거 원리에 대하여 질문했다. 거즈 교체와 답변은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되었다. 부족한 기억력을 더듬어 굳이 설명하자면 '피부에 고착되어 있는 잉크를 레이저가 잘게 부수고, 그 부서진 잉크를 몸이 서서히 소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이것도 아니라면 죄송). 어찌 되었든 내 몸은 소화를 하고 있어 보이고, 점차 연해지고 있다.



 시술을 받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가격과 고통 그리고 효과에 관한 이야기였다. 짧게 줄여서 설명하자면, 가격은 모양과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 크기와 가격표를 통해 어림짐작은 가능하지만 병원에 내원하는 게 가장 빠르다. 고통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다. 매우 아프다. 물론 이것도 <통증>의 권상우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새기는 것 이상의 고통이다. 마지막으로 효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이제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나의 경우로 예를 들어, 현재 나는 각각 다른 연도에 새겼던 3개의 문신을 동시에 지우고 있다. 하지만 각기 지워지는 정도의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다르다. 이점도 문의해본 결과, 잉크의 양이나 시술 깊이의 따라 달라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리터치를 받지 않는 편이 조금 더 잘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타투 리터치를 받지 않았다.

 휴.

 나는 가끔 병원 관계자(의사, 간호사)에게 아프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들은 '따끔해요' 또는 '조금 아파요'라고 대답한다. 그분들에게 송구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거짓이다. 문신 제거에 한하여 거짓이라 볼 수 있다. 아니면 문신을 지워본 적이 없기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안다. 아.프.다. 살을 에는 고통이 든다. 그러나 분명하게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타투를 제거하는 일은 그에 수반되는 모든 고통을 참아낼 만큼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


 그 정도는 아닌가요?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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