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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민 Nov 06. 2024

방심을 할 때에

(단편소설)

 ”왈왈! 왈왈!“

 어디선가 희미하게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왈왈왈!”

 소리가 제법 가까워졌다.

 살짝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어둠이다. 꿈이었나 보다. 옆집 개가 짖는 소리에 예민해져서 개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꾼다. 아무리 짖어대도 이런 새벽에 짖는 일은 없었다.


 “왈! 왈왈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몸은 흠뻑 적셔진 스펀지처럼 무거웠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 홈 버튼을 눌러 화면을 바라보니 시간은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다 정말로, 이 시간에 짖은 적은 없는데 말이다.

 날카롭게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왈. 왈. 왈.


 “왈왈왈! 왈왈왈!”

 어느덧 새벽 세시가 됐다. 쉬지도 않고 한 시간째 짖었다. 약 30초 간격으로 말이다. 최소 100번 이상은 짖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고기 먹는 상상을 했다. 요즘 들어 이런 상상을 하고는 한다. 나는 개고기 맛을 모른다.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보신탕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개고기까지 먹어야 하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집 개가 이사오고부터, 나는 종종 개고기 먹는 상상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 저 개가 시도 때도 없이 짖기 시작한 때부터 말이다.

 “왈왈! 왈왈!”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윽고 현실의 경계가 조금씩 희미해진다.



 “한입만 먹어 봐, 맛있다니까? 그냥 백숙 맛이야.” 임씨가 말했다.

 전부터 임씨는 나에게 개고기를 권했던 인물이다.

 “그게 말이지, 먹기가 좀 그렇단 말이야.” 내가 대답했다.

 “이제 개에 대한 미안함도 없을 거 아니야. 옆집 개 때문에 죽겠다며. 오히려 지금은 개를 싫어하는 입장 아니야?” 그가 주장했다.

 “그건 그런데…”

 “눈 딱 감고 먹어봐, 개를 항한 노여움이 조금은 가실 거야.”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며 그가 말했다.

 몇 번을 거절했지만, 유독 오늘따라 그의 권유가 집요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살점을 아주 살짝 뜯어 입에 넣었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어때? 괜찮지? 맛있지?” 임씨가 물었다.

 “맛은 뭐… 백숙 맛이긴 하네.” 나는 마지못해 그 말에 동의했다.

 고개를 들어 솥은 바라봤다. 팔팔 끓는 솥에는 옆집 개의 얼굴이 털이 달린 채 팔팔 끓고 있었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꿈이었다.



 “왈왈! 왈왈!”

 몸을 돌려 핸드폰 버튼을 다시 눌렀다.

 화면에는 4:33 이라는 시간이 떠있다. 내가 깜빡 잠들었던 세시부터 계속 짖었다고 가정해 보면 총 150번을 더 짖은 셈이 된다. 그러면 옆집 개는 오늘 새벽에만 250번을 짖었다는 가정이 나온다. 더 짖었을 수도 있고, 덜 짖었을 수도 있다. 깜짝 잠들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왈왈왈! 왈왈왈!”

 짖는 소리가 절정에 치닫았다.

 몸을 일으켜 세워 화장실로 향했다. 수돗물로 입을 간단하게 헹구어 내고, 얼굴에 가볍게 물을 댔다.

 거울에 비친, 어쩐지 수척해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주인이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오늘은 기필코 당신 개를 주의시키라는 쪽지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침실로 가는 데, 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새벽 네 시 사십 분.

 도어락 버튼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왈왈! 왈!! 끼이잉 낑낑…” 옆집 개의 목소리가 어쩐지 애처롭게 들린다.

 저 개는 무슨 잘못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 혼자 외롭게 지내기도 서러운데, 이웃에게 미움을 받는 신세라니.

 불 꺼진 방에서 개는 수시간을 홀로 방치되었고, 이웃은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사람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주변이 고통받고 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놓았었다. 아침 일찍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딴딴-딴따라딴딴-딴딴딴딴 딴“

 점점 커지는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눈꺼풀은 자물쇠가 채워진 셔터처럼 잘 올라가지 않았다. 이렇게 아침에 힘든 것도 몇 달 만에 일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갔다.


 오전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점심은 밖에서 사 먹기로 했다. 라멘이 먹고 싶어서 근처 라멘 가게에 갔다. 그럭저럭 맛은 있었지만 간이 조금 짰다.

 계산을 마치고 주변을 산책했다. 여유로운 주말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침의 피곤이 가시지 않는지 연거푸 하품이 나왔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창문 밖 날씨는 아주 좋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이.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햇살이 기분 좋게 방을 비추고,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널어두었던 빨래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주말 오후의 달콤한 시간이다.

 스피커에서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메들리가 나오고 있다. 클래식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날 좋은 오후에 듣기 안성맞춤이다.

 기분 좋은 공기에 눈이 스르륵 감겼다.


 “왈왈! 왈!” 잔잔한 연주 사이로 불청객의 날카로운 소리가 끼어들었다. 마치 내가 기분 좋게 눈 감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어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엔 옆집 개주인을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복도에서 두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다.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일하고 있는 건가?‘ 나는 생각했다.

 왜 저 여자는 자신이 부재중일 때, 개를 어디에도 맡기지 않을까. 나는 그 부분이 항상 궁금했다. 본인도 개가 자주 짖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불평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나는 불평하기를 그만두었다. 쪽지를 남기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도 포기했다. 그냥 머리가 살짝 돌은 여자라고 치부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가 살짝 돈 사람을 건드리면 나만 손해다.


 ’머리가 살짝 돌은 여자가 마음의 치료를 위하여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개는 그런 주인이 걱정되어 짖는 것일 뿐 악의는 없다. 주인의 머리가 살짝 돌아있다는 것을 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먹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왈왈왈! 왈왈왈!”

 내가 무슨 마음을 먹든 아랑곳하지 않고, 옆집 개는 짖고 있다. 머리가 살짝 돈 주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멈출 생각이 없다. 체념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 꿈에 임씨가 다시 나와 개고기를 먹으러 가면, 먼저 내가 나서서 그 다리를 들고 뜯어먹을 거라고. 냄비에 옆집 개 얼굴이 있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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