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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뮤지컬 <아나키스트> 관람 후기

by 김연정

3·1절.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3·1절을 뜻깊게 보내고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아나키스트>를 보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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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열사들. 그분들의 넋을 기리며 다시 한번 감사의 묵념을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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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나키스트>에는 세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유쾌하고 사람 좋은 덕형, 시인의 꿈을 간직하고 굳은 뜻을 품은 자경, 바람같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무혁.

이 세 사람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창조된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존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관람했던 <브루탈리스트>의 라즐로 토스가 마치 실존 인물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그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이다.

그 시절 청년들이라고 왜 꿈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다른 모든 것을 미룬 채 국가의 독립을 우선순위에 둔다. 시인을 꿈꿨던 자경은 펜을 들던 가녀린 손으로 총을 들고, 덕형과 무혁은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을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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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권력·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국내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항일민족의 한 형태로 아나키즘이 등장하게 된다.

이 조직은 무정부주의적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아나키스트 운동이라 불렸는데 일제의 강압 통치에 저항하여 자유를 옹호하는 한 수단으로 파괴, 암살 등을 필요조건으로 보고 급진적 폭력주의를 택하여 강한 항일운동의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의 항일운동은 큰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세 사람은 이런 시대적 배경과 영향을 받아 총과 같은 무기를 사용해 일제 세력을 규탄하려 했던 것이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세 청년의
행복했던 한때

자전거가 유일한 생존수단이자 가족이었고, 이름도 없이 자전거로 불렸던 무혁에게 덕형과 자경은 이름을 붙여준다.

자경

이름이 필요해

누구나 자신만의

익숙한 옷을 입은 듯

부르면 돌아보게 되는

덕형, 자경

죽어있던 삶을 / 깜깜하던 삶을

숨 쉬게 할 / 빛나게 할

마치 혁명처럼

부를 때마다

그리고 무혁에게 생일을 만들어주고 축하도 해준다.


무혁

기원도 출처도 없던 내 삶에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함께 길을 걷고 노래하고

꼭 내 생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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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만나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우정은 더욱 깊어진다.

어두운 시절을 그린 작품이라 작품 분위기가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큰일을 해야 한다는 결심과는 다르게 중대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 나날 속에서 세 사람은 짧게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농담도 나누고, 생일 축하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쓴 커피도 마시면서.


관객석의 폭소를 이끌어내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특히 재단사 등장 신은 그야말로 대폭소. 이세헌 배우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보게 되었는데 진중한 모습은 그 모습대로, 코믹한 모습은 그 모습대로 어찌나 잘 소화하던지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였다.

그러나 웃음이 나는 장면 속에서도 애달픈 마음이 공존했는데 이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좋은 정장을 챙겨 입자는 그들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름이 있는데도 본명을 쓰지 못하는 덕형과 자경. 이들의 행복한 순간을 보며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마음속 한구석이 비통했다. 예정된 비극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이란 이런 것일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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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의 봄을 미루고,
재산을 내놓고,
목숨을 건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겹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래 기억할게요.
선생님들을!


이들의 우정이란 위험한 일은 내가 무릅쓸 테니 살아남은 너희는 좋은 세상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으로서 떠난 사람을 기억해 달라는 것.

3·1절에 보길 정말 잘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데 청춘의 봄을 미루고, 재산을 내놓고, 목숨을 건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겹쳐져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분들의 목숨에 정말로 큰 빚을 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역시나 기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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