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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Sep 21. 2020

손해 계산법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5-4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5-4

한국 음료를 중국에 유통하기 위해 발로 뛸 때였다. 그 시절 내게 미스터 박이라는 사회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와 함께 유통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한 번은 중국 파트너를 만나서 일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내게 이유도 없이 짜증 섞인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미스터 박을 보며 저 친구가 오늘 컨디션이 굉장히 좋질 않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저 그 상황을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며칠 전 미스터 박과 함께 만난 중국 파트너에게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무거웠고 또 심각했다.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힘겹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이건 내가 알아야 할 것 같다면서 말이다.


그날 파트너가 내게 전한 소식은 대략 이렇다. 그 파트너에게 미스터 박이 따로 연락을 해 만났고 이번 사업 관련 건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파트너는 며칠을 고민 끝에 내게 어렵게 이 내용을 말해준 것이다. 그리고 파트너는 내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오 대표, 그 사람은 당신을 정말로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너무 마음 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파트너의 말에 많은 생각이 스쳤고 또 조금은 씁쓸함이 삼켜졌지만, 나는 그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내 의사를 전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미스터 박의 말을 들어본 후, 당신이 믿을 만큼 믿고 일을 진행해보라고 했다.


파트너와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샤워를 하고 미스터 박과 만나기로 한 로비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미스터 박을 똑같이 대했다. 조금 전 파트너로부터 들은 이야기들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하루 종일 밀려든 중국 미팅 건들을 정리하고 호텔방에 널브러져 있는데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나가서 보니 미스터 박이었다. 그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미스터 박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떼서 말했다. 중국 파트너에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왜 자신이 한 짓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는데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했다. 미스터 박은 허옇다 못해 이젠 파래진 얼굴과 입술을 한 채 꼭 무슨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그런 미스터 박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손익계산을 해 뒤에서 배신을 한 것은 참 많이 서운했고, 우리의 관계가 어쩐지 좀 허탈하기도, 허망하기도,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는 목표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는 것과 가치관 역시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도 전했다. 


한 곳을 바라보고 달려간다는 생각은 결국 내 생각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잘못을 뉘우쳐준 걸로 되었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스터 박이 고개를 폭 떨구었다. 그리고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미스터 박은 그 뒤로 자신이 맡은 바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람’이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해를 보더라도 인생에서 한 번쯤 이런 믿음을 준다는 건 해 볼만하다는 쪽이다. 투자하고 도전해볼 만하다는 게 어떤 나만의 논리다. 그래서 내가 어떤 때에는 지나칠 정도로 누군가를 믿어주는 것도, 지나칠 정도로 손해를 보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도 손익계산보다는 손해의 가치를 잘 따져 계산했을 때, 그로 인한  대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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