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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노가리 골목인가?

을지 OB베어와 만선 호프 사이에서

by 이경민

말로 전해지는 말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풀어지는지 경험하는 일은 쉽지 않으면서도 중요하다. 중요성을 인지하고 닿기까지 마음을 먹는 일도 오래 걸린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할지언정 불편함이 지속된다면 용기 내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는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맞닿아 있다. 마음을 쓰고 애써 발걸음 함으로써 목격하는 많은 것들이 앞으로의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것과 같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일은 변화 없이 반복될 미래 대신 더욱더 나은 미래를 향해 있다.

#지금 여기, 을지로의 한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을지 OB베어 소식을 전해 듣곤 머릿속으로만 수만 번 되뇌며 공감하다가 마음이 자꾸 현장에 닿아 결국 발걸음을 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과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특수한 상황을 보면서 그 어떠한 문장이나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동안의 사정을 모르고서야 단번에 뭐라고 판단하거나 해석할 수도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되 관심을 주고 응원과 지지에 한 목소리를 보태는 이들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목소리를 내고, 피켓팅에 참여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맥주 한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이들과 시간을 공유할 뿐이었다. 그렇게 매일, OB베어와 연대하는 시민들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고 있었다.

* 현 을지 OB베어 상황 (2022년 7월 기준)
이미 많은 언론에서 OB베어의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였으므로 나는 간략하게만 설명하고자 한다.

1980년~ 현재,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 OB베어 개업, 3대째 가업을 이으며 을지 OB 베어 운영
2015년, 서울 미래유산 지정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백 년 가게 선정
2018년, 건물주 임대차 계약 연장 거부 및 명도소송 제기
2020년, 첫 강제집행 시도
2021년, 5차례 강제집행 시도
2022년, 6번째 강제집행

노포는 아니었지만 재개발 대상지로써의 동네를 기록하며 깨달은 진리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노포든 동네든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자만의 규칙을 만들면서 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 장소에 녹아들었으며 그것이 곧 정체성으로써 자리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리 잡은 정체성이 빛을 발하려 하는 순간에 위기에 처하거나 사라지곤 한다는 것도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생태계는 혼자만 노력해서는 되지 않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혼자 독식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생태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노력과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법을 운운하며 따지기 어렵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확하게 따지기 어려운 부분들이 삶에선 존재하고 그 과정이 녹아들어 작동하는 것이 생태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 과정을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생태계의 의미와 가치를 일찍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을지 OB베어는 한 골목에서 3대를 이어가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서울시에서 지정한 서울 미래유산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백 년 가게가 그 사실을 입증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주의 갑작스러운 임대차 계약 연장 거부는 공들여 쌓아 온 그들의 시간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생의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을지 OB베어 측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하루가 다르게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물주의 태도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주고 더 이상 내뱉을 말이 없게 만든다. 임대료를 올려도 좋으니 같은 자리에서 장사만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에도 다른 이를 임대에 들였다며 손사래 치고, 강제집행을 통해 가게 안에 있던 집기와 물건들을 모두 어딘가로 옮겨 버리고, 밖에서 매일매일 상생의 목소리를 외치는 동안에 말을 돌려가며 차일피일 핑계만 대던 건물주는 결국, OB베어 간판을 떼어버리고 '힙지로 호프'라 적힌 간판을 달아버렸다.

[을지 OB베어 간판이 떼어지고, 힙지로 호프광장 간판이 붙었다. 사진제공: 을지OB베어 공동대책 위원회]


그래서, 여기가 힙 한가?
한 가게가 독점하듯 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곳이 힙 한가?



# 독점 그리고 재개발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 속에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는 을지 OB베어 말고도 또 다른 호프집이 있다. 한 호프집은 현재 재개발로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고, 남은 가게 몇 개는 영업 중이다. 과연, 이들은 건물주와 을지 OB베어 상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심정인지 궁금하다. 지금의 상황이 그저 을지 OB베어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인지도 말이다. 한 호프집의 독보적인 행보에 그들도 무사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쫓겨나지 않을까?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 배를 타고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니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인근에서 영업을 하던 많은 점포들이 재개발로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점포가 비어 있는 상태인 것을 확인했다. 노가리 골목과 가까이에 있는 골목에 위치한 몇몇 가게들을 제외한다면, 이곳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 있다.


사업장을 이전한 앞 건물 점포들과 환하게 불빛이 켜진 을지로 노가리 골목
지금은 이렇게 힙한 상권이지만, 빠르면 5년 뒤부터는 노가리 골목을 찾아볼 수 없을 전망이다. 주변 개발 사업이 조금씩 진척되자 노가리 골목 개발도 초읽기에 들어가면 서다. 노가리 골목의 메인 거리는 을지로 3가 구역과 공구거리인 수표 도시환경정비구역(수표구역) 경계에 있다.

앞서 서울시는 2016년 을지로 3가 일대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시는 을지로 3가 구역 일대 근현대 건축물 보존지구의 경우 기준 높이 70m 이하, 최고 높이 80m 이하로 결정했다. 이후 현재 제6·9·12 지구 등에서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수표구역은 지난해 9월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수표구역은 현재 정비계획이 결정됐으며, 실시계획 변경인가를 준비 중인 상태다. 을지로 3가 구역 내에서 노가리 골목이 맞닿아 있는 제10·11 지구 등은 아직 별다른 개발 분위기가 없지만, 경계 지역인 수표구역에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 이 일대의 호프집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을지로 3가 역 인근의 E 부동산 관계자는 “서울시가 을지로 일대를 ‘제2의 강남’으로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개발업자들이 벌써 노가리 골목 일대 빌딩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며 “노가리 골목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업자는 최대한 매각 시기를 미루려고 하겠지만, 결국에는 오피스텔·상가 등 상업지구로 통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 출처: 2022.04.26일 자 땅집고, https://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4/26/2022042601182.html ]
시 관계자는 “수표구역 개발이 실시되면 을지로 3가 구역과 경계 지역에 있는
호프집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장사를 않기로 협의가 된 상황”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을지로 3가 구역 내에 호프집 일대가 몰려 있는 구역들도
자연스럽게 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해본다면, 재개발에 대한 보상과 영업에 대한 부분이 협의가 된 상황이고, 대부분의 점포들은 이전한 상태니 개발사업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발이 시작되면 장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실질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존재를 넘어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시스템 구축

을지 OB베어는 중기청의 백 년 가게와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중소벤처기업부, 백 년 가게
: 제조업 제외 업력 30년 이상의 소상인 및 소, 중기업
: 지원내용-> 홍보, 경영 및 환경개선을 위한 컨설팅, 노하우 공유 및 협력관계 구축

* 서울시, 서울 미래유산
: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 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 무형의 것. 자발적 참여를 전제하고 홍보지원

두 제도의 취지나 역할을 살펴보면 주로 홍보와 관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비중이 높다. 서울 미래유산의 경우 자발적 참여를 전제하고 있으며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직접적 개입을 통해 어떤 액션을 취한다기보다 '선정되었음'을 알리는데 주력한 홍보성 플랫폼에 가까웠다. 유산의 가치에는 의미를 두지만 그 의미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고 유지시키지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보완적인 장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지난 몇 년 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거나 사라져 버린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1월 5일 조선일보, 유명무실한 서울 미래유산 사업, 미래가치는 달랑 동판 표식뿐?
2016년 10월 2일 뉴스 1, 신촌의 마지막 한 달 맞는 미래 문화유산 공 씨 책방
2019년 9월 11일 이데일리, 서울 미래유산 헌책방이 사라져 간다.
2020년 12월 10일 뉴스홈, 서울 미래유산 등록 50년 명동 노포, 쓸쓸한 퇴장
2021년 2월 19일 자 헤럴드, 방치된 서울시 미래유산 '영동 스낵카' 고철값에 폐차 위기

내쫓김과 재개발이라는 상황에서 백 년 가게와 미래유산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백 년이 되기도 전에 사라지고, 유산이라고 남겨질 만한 것도 없어지는데 무슨 소용일까? 백 년 가게와 미래유산의 취지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서 진짜 그 대상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인정받고 영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함께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알리기만 한다고 해서 뭐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을지 OB베어는 백 년 가게나 미래유산으로 선정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백 년이 될 때까지, 유산으로써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될 때까지 쌓아온 시간과 노력들이 빛을 발하며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단순히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로써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관할 구청에서나 지역에서 개입하여 상황을 살피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남겨둘 것인가? 자본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 내리는 결론 말고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위로써의 결과도 공적으로 인정받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결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보면 서울 미래유산이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 무형의 것"이라는 정의에서 취지가 비슷하다고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효력이 없는 취지만 좋은 서울 미래유산 제도 대신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법적 효력이 발생되는 조항도 만들어 동등한 위치의 법 테두리 안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좋겠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는 누군가의 독점이 아닌 상생으로써 나아가는 길이 열려야 되지 않겠는가? 을지 OB베어의 상생을 위한 매일의 노력은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지켜보며 묵묵히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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