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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Mar 25. 2024

[기고] 을지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에디터


다음, 을지로 ②

을지로의 골목길

그렇게 을지로 일대 변화를 더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워크샵 참여 때 살펴보지 못한 부분들을 관찰하고, 어떠한 시사점이 있을지 고민했다. 도시공간이 변하면서 이용하는 행태도 달라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예전 을지로는 더 이상 존재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니 을지로 일대 산업 생태계는 언제 형성되었고,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서울 도시개발사에서 을지로 일대는 장소 특성상 개발 이슈를 피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시기별 을지로 일대의 변화 흐름  

① 일제강점기: ‘방직과 식품, 인쇄업 등의 경공업 위주 발전’
1912년 시구개수사업과 1934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 – 을지로 서울, 당시 경성 도시계획의 주요거점으로 지정 - 현재 을지로3가 일대에 황금정 광장 설치, 방사형 도로 계획 및 정비 – 을지로 공업소 형성 - 청계천이남, 남촌 일본인 거주 밀집지역 형성· 영세 규모 공장 건설.
② 해방 후 & 한국전쟁시기: ‘행정력 부재로 슬럼화 이후 피난민들의 비공식 경제활동 활발’
1945년 3월, 일제의 소개공지대로 조성 - 일제 패망과 광복으로 중단 – 이후 한국 전쟁 발발, 무질서한 상태로 방치 – 1952년, 서울시 최초 도시 계획 전재복구계획 실시 – 소방도로 지정 및 도심 일대 복구 차원 – 큰 성과 없었음. 피난민들이 좌판·노점으로 생활용품과 잡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 등을 판매 시작.
③ 1960년대: ‘산림동·입정동 중심의 도심 제조 산업 클러스터 형성되기 시작’
주민들의 비공식적 경제 활동으로 주거와 상업이 혼재된 지역 형성 -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 취임 - 서울 도심을 재건 프로젝트 시작 – 청계천변 부터 좁다란 골목으로 이어진 을지로 일대 판자촌 주민 이탈 – 상업공간으로 변화 – 노점상 영세 점포 사업 시작 - 미군 부대 기계와 공구 판매 - 중구 산림동· 입정동 중심 산업용품 판매· 제작 소규모 업장 운영 – 제작, 수리, 판매, 중간 단계 상인과 연결 – 도심 제조 산업 클러스터 형성 및 발전, 소개공지 주상복합시설 건물군 유치 – 제조업기반 업체 상가로 흡수.
④ 1980년대~2000년대: ‘도심밀집도와 교통흐름 방해 판단으로 외곽이전유도 및 재개발 시도’
정부의 전기·전자 업종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 – 을지로 제조 산업 용산, 영등포, 구로로 이전 – 을지로 일대 건축 자재상, 공구상 단계적 이주 및 재개발 시도 – 복잡한 토지분할과 이해관계로 재개발 지지부진.
⑤ 2003년, 2006년 : ‘청계천복원사업 & 세운재정비 촉진지구 지정 재개발 논의 시작’
청계천 일대 및 을지로 상공인 일부 송파구 문정동으로 이주 시도 – 재개발 호재 기대로 한 지가 및 임대료 상승 – 제조업 사업체 수 감소 및 상권 침체.
*해당 내용은 2018년에 발간된 김미경 저자의 <다시, 을지로>의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을지로의 골목길
을지로의 골목길

결국, 도심에 있던 산업군의 일부를 도심 부적격 업종으로 지정하고 강제 이주시키게 된 시점부터 을지로 일대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조금씩 범위가 축소되면서도 많은 분이 남아서 영업을 유지해 왔고, 끊임없이 재개발 사업이 시도 되었다. 한때,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을지로 일대 특성을 살린 장소성이 유지되는 건가 싶었다. 시간이 무색하게도 재개발 사업은 진행되었고, 입정동에 위치한 공구상가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산업생태계의 질서와 수명이 깨져 버렸다. 영업장을 이동하신 분 중 영업을 계속 이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상황상 영업하지 않고 폐업하신 분도 있다. ‘생태계’는 다양한 주체가 상호 작용하며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절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흉내 낸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한복판에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도시 경쟁력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그런데도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그 자리에 주거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서울시 스스로가 을지로 일대 산업 

생태계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이미 사라진 공구상가를 대신하고 있는 아파트 주변을 괜히 서성였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이 그대로일까? 어떤 지점을 포착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도시 서울은 항상 이런 방식으로밖에 변화될 수 없는 것일까? 좀 더 신중하고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개입이 반영될 수 없을까? 모두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도시 공간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확장된 도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화와 토론, 참여 장은 필요하다.


공공영역의 사적공간화 

1) 사람들은 여전히 골목길을 걷는다.

공공보행로와 사유지

건물은 철거되었지만, 문화재 발굴 조사로 대기 중인 구역은 공사막이 설치되어있다. 바로 옆 일부 공구상가와 식당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둘을 잇고 있는 것은 옛 골목길이고, 걷다 보면 또 다른 공사 현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골목길을 걷는다. 길이 완전히 막혀버리면 더 이상 걷지 못하지만, 아직 살아 있기에 걷는 것이다. 곧 사라질 길을 걷다 보면 감정적으로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직면하고, 이해할 수 있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놓치지 않고 살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현재에 어떠한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지금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길 위의 시간을 살피되 갑작스러운 변화에 휘청거릴 때마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어 본다. 도시를 살아가는 도시민이자 주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반복되면 아주 멀게만 느껴지던 도시와 ‘나’라는 개인이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는 시간이 쌓인다. 지금은 ‘나’ 하나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그 행보가 울림이 되어 넓게 퍼져 나갈 것이다. 


2) ‘사유지입니다.’ ‘오토바이 진입금지’ : 달라지는 이동 경로들 

오토바이 진입금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사유지가 되었다. 걸을 수 있는 길의 범위가 축소되고 오토바이와 외부인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공공의 길이 일부 사유지가 되면서 사람들은 예전처럼 을지로 일대를 자유롭게 걷지 못할 것이다. 장소 성격이 바뀌고 걷는 길이 달라지면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도 변한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던 길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으며, 아주 먼 미래엔 영영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3) 돈 되는 세운을 따라

"돈되는 세운! 행운은 지금!" 분양 사무소 전단지

과연, 돈이 전부일까. 아니 돈이 전부인 도시에서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돈이 삶을 지속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도시의 많은 공간과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상호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면서 도시의 수많은 생태계를 지탱할 힘을 만들어 낸다. 도시는 인간과 물질, 비물질적 요소가 서로 얽히고 엮임으로써 발현되는 집합체이자 결과물로써 인식해야 비로소 총체적인 가치를 읽을 수 있다.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강하게 부각하는 ‘돈 되는 세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인간의 욕망을 한껏 끌어올린다. 동시에 그 외의 것들을 ‘쓸모와 쓸모없음’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 기준에 맞춰 모든 것이 돌아간다. 한없이 높아져만 가는 인간의 욕망을 도심 한가운데에 심고자 하는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상가를 분양 중인 부동산 앞을 지나며 한참을 생각했다.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다가 발길을 돌리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부동산 직원이었다. 가던 길을 가려다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평소 집을 구할 때와 별반 다른 것 없는 질문을 받으면서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돈되는 세운! 행운은 지금!" 분양 사무소.
임대는 불가하고 분양은 가능해요.
CJ푸드 연구팀이 사무실로 쓸 예정이에요.

이미 몇 가지 조건은 정해져 있었고, ‘조건에 맞는 사람을 선호한다.’라고 하는 또 다른 욕망을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상가에 부착되어 있는 현수막에는 그들이 원하는 업종이 적혀 있었다. 나에게 맞는 적당한 매물이 없음에도 질문은 계속되었다. 3명의 직원이 1명의 손님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웃픈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글 원문보기 

https://www.journal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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