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 분 뚜껑을 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엄마의 향기

by 운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벌써 3년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엄마와의 시간이 그립다.

저녁이면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은 나에게 부여된 삶의 의미조차 잊어버리고 어둠 속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일에 몰두하며 지내는 시간들은 위태로웠고, 나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강남의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약속을 했다.

주말 백화점 앞 광장은 수많은 사람 사이로 땀 냄새와 샴푸냄새 향수냄새가 뒤섞여 어지러웠다. 백화점 1층 가판대를 가로질러 지나는 내 예민한 후각에 익숙한 향기가 나를 붙잡았다. 오래전, 추억 속의 한 자락처럼 아련하게 펄럭이는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뿌연 안갯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천사처럼 수많은 향기 속에서도 그 향기는 유난히 빛났다.


아련한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향기, 그것은 '엄마' 냄새였다.


곱고 따뜻했던 엄마향기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나, 그 향기로 시작된 또 하나의 향기가 나를 병원의 복도 끝, 희미한 조명이 깜빡이던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알코올냄새와 시트 속 엄마의 시큼한 땀 냄새, 날카로운 칼에 폐부를 찔린듯한 아픔과 함께 그 기억들은 펼쳐졌다.




매일 반복되던 병원생활, 나는 오로지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길 소원했다. 가끔 본가에 들른 우리 4남매에게 기쁨 섞인 목소리로 "소고기 넣고 된장찌개 끓여줄까?" 말하며 다시 우리를 반겨주길 바랐다.

나는 그런 시간을 꿈꾸고 있었다. 엄마의 완치가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내 삶의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엄마에게 저지른 불효와 내 방식대로 살아온 이기심을 용서받는 길이라고 그것이 엄마의 딸로 살아온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나의 삶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엄마의 삶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잠시 머물거라 생각했던 병원생활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준비 없이 시작한 병원생활에 내 체력은 바닥났고, 새로운 두려움이 나를 흔들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오묘한 표정이었고, 그런 엄마를 보는 건 아프고 힘든 일이었다.


다음 생애는 내가 꼭 네 딸로 태어날게!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병원복을 갈아입히려 애쓰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엄마가 읇조리듯 말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의 다음 생은 죽음으로 시작되는 것을 알기에,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혼자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나를 도와주려 애쓰는 엄마에게선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났다.


엄마는 뇌출혈이었다. 뇌에서도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 쪽에 출혈이 있었다고 했다.

출혈의 상처로 앞으로의 삶이 예전 같을 수 없다고 의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다시 살아났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의 바람대로 병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희망고문처럼 그렇게 계속되던 하루하루가 끝날 때쯤 갑자기 엄마가 침대에 연결된 링거줄을 꼬며 나에게 말했다.


새댁은 누구세요?




수술전날, 엄마는 반백의 머리를 전부 밀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밖에 나가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전부 잘린 엄마의 작고 동그란 머리는 비구니처럼 아름답고 슬펐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간호사가 왜 밖에 나가있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뇌출혈로 머리에 생긴 상처는 엄마를 3살 어린아이로 만들었고, 상처에 고인 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수술은 엄마의 몸에 키만큼이나 길고 얇은 관을 남겼다. 대수술 후, 엄마의 증세는 좋아졌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 관은 머릿속에서 엄마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존재했다.

가끔 머리를 만지며, "내 머릿속에 뭐가 있는 것 같아" 라며 불편해했지만, 우리는 기분 탓일 거라고 둘러댔다.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빠른 회복 후에 친절하고 예쁜 환자가 되었다. 간호사들이 건네는

"어머니! 젊으셨을 때는 무척 미인이셨겠어요"라는 인사말에, 우리가 준비한 간식거리와 예쁜 화장품 따위를 건네며 엄마는 나날이 좋아지는 듯 보였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남편과 자식으로부터 외면받아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생겨서 다행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병원과 집을 오가며 여섯 해가 지났다. 나는 언니와 함께 환자용 침대가 유일한 삶의 공간이 된 엄마를 방문했다. 바쁜 날들이었지만, 초복을 맞아 엄마가 좋아하는 가지나물과 오이무침, 그리고 닭백숙을 준비했다. 20년이 다 되어 낡은 에어컨의 소음과 함께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투석 이후, 눈에 띄게 야윈 엄마의 젖은 몸을 차가운 수건으로 닦아 드리다가 두 번째 발가락 사이 거뭇한 괴사의 흔적을 보았다. 당뇨합병증이었다.

이미, 한 움큼의 알약과 일주일 3번의 투석으로 지칠 대로 지친 엄마에게 또 한 번의 힘든 일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날, 젖은 환자복을 세탁기에 넣고 침대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반짝이는 눈으로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되나?

나 꿈에 우리 할머니 만났어, 그런데 할머니가 함께 가자고 해서
내가 우리 딸한테 물어보고 온다고 했어!


철이 들어 외갓집을 방문할 때면, 외 증조할머니의 엄마 사랑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딸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 할머니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자란 엄마는 아프고 난 이후에도 가끔 할머니 얘길 했다.

그런 할머니를 꿈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내 대답뒤로 먼 산을 바라보는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꿈속 할머니를 따라가는 게 나와 이별하는 것이란 걸.




엄마는 그렇게 증조할머니를 따라갔다. 애지중지 예뻐했던 손녀의 아픔을 더 이상 보기 힘드셨을 할머니는

엄마와 나 사이, 이승과 저승으로 금을 그으셨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이별했다. 그동안 힘든 몇 번의 수술과 약물치료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던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많은 추억의 시간을 남겨주고 가셨다. 나는 엄마와 딸로 살았던 이번 생을 지나, 다음 생애는 꼭 엄마를 다시 만나 세상의 많은 좋은 것들을 함께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그러나, 이 생각은 엄마한테 전해주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남았다.





요리솜씨가 뛰어났던 엄마에게선 항상 마늘이나, 파 같은 양념 냄새가 났다. 김장철이면, 배추김치를 담그던 각종 양념 냄새가 밴 벌겋게 물든 손으로 꽁꽁 언 내 손을 어루만지며 호호 불어주곤 하셨다. 그런 엄마가 낯설게 향기로웠던 날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내가 부반장이 되었던 새 학기 학부모 면담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운동장으로 내 달리던 나는 저만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무실로 향해가는 낯선 엄마를 발견했다. 분홍색과 회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화려한 꽃무의 한복을 입은 엄마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늘어진 고무줄 바지에 우리가 입던 티셔츠 쪼가리로 충분해 보였던 엄마의 낯선 모습에 나는 엄마를 보고도 달려가 덥석 안기지도 못하고 쭈뼛쭈뼛 주변을 맴돌았다. 면담을 끝내고 교무실로 나오던 엄마는 소심하게 기다리던 나를 보고는 "우리 딸 여기 있었네!" 하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때, 엄마에게서 났던 낯선 향기, 엄마의 포근했던 품과 함께 내 머릿속 깊이 저장된 그날의 엄마 냄새, 오렌지색 '코티 분'이었다.


마호가니 색 화장대 한 구석에 자리하던 엄마의 코티 분 냄새, 그리운 엄마의 향기였다.

나의 예민한 후각에 날을 세워 엄마의 향기를 따라, 기억의 문으로 들어가던 나는,

다시 강남의 백화점 가판대 앞에서 그 익숙한 향기를 더듬고 있었다. 물 밀듯 밀려오는 향기는

그리움으로 연결되어, 내가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내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이채 바닥만 바라보며 빠르게 그 자리를 지나쳤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기억은 파나 마늘 같은 양념 냄새가 아니라 코티분 향기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았던 엄마 냄새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의 엄마 향기

이제 엄마는 없지만, 그리운 향기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서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오렌지 색 코티 분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코티분 향기가 아프고 그리운 날, 다시 그 뚜껑을 조용히 닫는다.

그렇게 엄마는 내 옆에 잠시 머물며 그리움에 지친 나의 하루를 향기로 채워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싹이 말하는 성장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