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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Oct 05. 2021

어쩌면 당신과 나만이 공감할 이야기

이혼한 친구를 만났다

이혼 스트레스 중에서 매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나의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말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은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에 공감대에 한계가 있다.

어디서 상처를 받는지, 무엇이 스트레스가 되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이혼에서 오는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공감할 수 있는 건 경험해본 사람뿐이다. 때문에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외로운 생각이 들어 더 힘들었었다.  

 며칠 전, 나는 나처럼 이혼을 겪은 한 친구를 만났다. 전에 별거 중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친구 A였는데 사실 그녀가  만나자고 하는 것을 날짜까지 잡았다가 내가 취소했었다.

과거 그녀와 나는 한때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친하게 지내기도 했었지만 개인적인 연락은 잘하지 않는 사이었다. 더욱이 활동을 그만둔 뒤에는 서로 연락이 없다시피 했었으니 그녀는 내게 전화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혼에 관련한 일로는 더더욱. 하지만 A는 내게 전화를 했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랐지만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마도 A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이혼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고 위로하며 최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신혼집에 남아있다는 그녀에게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길고 긴 전화 끝에 그녀는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우리는 만날 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약속 하루 전, 나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취소해버리고 말았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겨우 아물까 말까 한 상태였는데  A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 다시 내 불행한 결혼생활과 슬픔이 생각나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나나 그 친구나 꽤  시간이 흐른 뒤였고 더욱이 A는 이혼소송이 마무리되었다며 나에게 만나자고 해왔다. 그때 언니가 해준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하면서. 나는 이제 내가 흔들리지 않고 진심으로 위로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단 생각에 그녀를 만났고 마침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술잔을 기울이고 울다 웃으며 수다를 떨다 우울하지 않게, 무사히 헤어질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디테일들이 있다. 이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하고 작은, 그러나 예민한 상처들.

그날 A를 만나서 나도 모르게 울컥해버린 부분들이 몇 개 있었는데 아마 이것은 이혼을 고민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A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신혼생활 동안 남편은 서너 번의 바람을 피웠고 친구는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기에 계속 버텼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로는,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랑했기에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마지막 바람을 알게 되었을 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그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고 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나가고 싶었으나 남편이 정신건강상의 문제로 약을 먹고 있었기에 신혼집에 혼자 남아 있으면 받을 스트레스를 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녀는 결국 그래, 밉지만 그래도 약을 먹을 정도로 마음이 힘든 사람인데 이건 내가 감당하자 라며 A는 그를 내보내고 본인이 집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큰 독이었다. 그녀도 그렇고 나도 그랬듯, 나가고 싶은 장소에 남아있는 것은 매일이 끔찍한 고문과도 같았다. A 역시 집에 있으니 매일이 눈물바람이었고 우울함에 확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나가는 차를 보면 저기 걸어 들어갈까 하는 마음이었다고, 덤덤하게 그녀가 말했다. 그 말에 나도 그때를 떠올리며, 이혼을 겪을 당시 내 소원이 다음날 눈을 뜨지 않는 것, 길을 걸어가는 나를 차가 달려와 덮쳐주는 것이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혹시나 싶어 그녀에게 어디 아프지는 않았는지 묻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실은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원신세를 꽤 오래 졌노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에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몸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A는 결혼생활의 고통을 겪으며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집을 등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집 바로 옆 동에 친오빠가 살고 있는대도,  남편과 싸우고 혼자 남아 우울감에 시달릴 때에도 차마 A는 그 동에 가지 못했다. 105동과 106동 사이, 그 짧은 거리를 수십 킬로처럼 느끼면서 두 동 사이에 있는 작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하염없이 오빠가 사는 옆 동만을 바라보곤 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가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겨울 새벽, 영하의 날씨에 롱 패딩 하나만 걸친 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거리를 걸었다. 그와의 싸움이 힘겨워서, 그냥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 앞에 상가를 지나쳐 걷고 걷다가 친정 집으로 향하는 쭉 뻗은 도로를 바라보았다. 차로 10분 거리, 걸어서는 30분이면 충분히 갈 거리였다. 손에 든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도 있고 아직 잠들지 않았을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나 좀 데리러 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망설이다 수화기를 바라보고, 번호를 누르다 화면을 끈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몇 번이고 친정집 쪽을 향해 걸어가다 되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참담한 나의 불행을 가족에게까지 알려 상처를 전가하고 싶지 않은 마음 하나와, 사랑하는 이들이 알았을 때 받을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A는 끝까지 오빠의 집에 가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못한 채 혼자 몇 달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자신의 우울이 극에 달 했을 무렵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예전 A의 결혼 전 그녀가 내게 사회를 부탁해온 적이 있다. 내 상황을 알리 없던 A는 몇 번의 고사에도 부탁을 해왔고 결국 나도 그 자리에선 수락했지만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난 며칠 뒤 A에게 전화해 내가 이혼했음을 알려야만 했고, 때문에 그녀는 나의 이혼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근데 그것이, 훗날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줄이야. 그녀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털어놓고 싶은 심정으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며 미안해하는 A에게 나는 괜찮다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거 잘 알고 있다, 전화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A의 떨리던 목소리는 조금씩 울음이 차오르고 있었고 그걸 듣는 나도 감정이 격해졌지만 그녀를 위해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괴로워하는  A를 위해 잘한 선택이라며 달래주고 당장 그 집을 벗어나 친정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A야. 지금 너를 위로해줄 사람은 가족뿐이야. 엄마 아빠가 상처 받을 걸 걱정하기보단 네가 먼저 살아야 해. 그것만 생각해.

나와 통화를 마친 그녀는 용기를 내 집으로 돌아갔고 훗날 내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해왔다.




이혼은 아주 작은 감정들과 사소한 일에서도 우울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게다가 너무 무거운 문제이기에 쉽게 누군가와 공유할 수도 없다.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없는 문제이고 솔직히 말하면 그 과정이 상상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 과정을 혼자 겪어냈고 그녀 역시 거의 그렇게 지냈다. 아마도 이혼을 결심했거나 이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요즘 세상에 그게 뭐 대수라고.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A는 지독했던 결혼생활과 이혼 과정을 겪고 나니 해탈해버렸다며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나지 않는다고 웃었다. 어쩌면 그게 순기능일지도 모른다며.

나는 이혼의 고통을 버티기 위해 여행을 갔고, 날 모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마치 우연처럼 극작이란 새로운 일을 시작했기에 그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눈뜨지 않기만을 기도하다가, 눈을 감을 시간이 없이 바빠서 당장의 배움이 재밌어서 날을 새야만 했다. 극작을 배우며 '결혼했고 이혼한 나'를 잊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늘 생각한다. 그녀 역시, 때마침 부서가 바뀌며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게 된 것이 천운이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혼 당시에는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오죽하면 그때 친정집에 돌아온 이후 몇 달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 재밌는 사실은 A 역시 별거 후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전남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더란다. 아마도 우리 둘 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싶은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 같다. A는 이혼 소송 중이었는데 문득 자신이 그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런 사람 때문에 내가 더 이상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길로 변호사를 찾아가 죄송하지만 소송을 끝내고 싶다고, 위자료고 뭐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것이 그녀가 소송을 한 지 2년 가까이 되어가던 때의 일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판결이 났을 텐데 억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랬다가 다시 소송 결과에 불복해 또 항소해 오면 그땐 정말 못 버틸 것 같다고 했다. 차라리 이렇게 해서 다 끝내버렸다니 마음이 편하다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기서 왜 포기해 위자료 받아야지 혹은 혼쭐을 내야지 할 일이다. 하지만 난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더 이상 이 진흙탕 속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마음. 발버둥 칠수록 빠져들어가고, 설사 벗어난다 하더라도 더 깊게 진흙탕에 젖어버린 내 모습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닦아내는 대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아니, 어쩌면 그땐 닦아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그대로 진흙탕에 오랜 시간 잠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그래, 정리하길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내 마음 편한 게 제일이니까.

 문득, 이야기 중에 A가 나에게 연애 생각이 있냐고 물어오길래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곤, 너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A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최근 애인과 헤어졌다고 했다. 이혼 소송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꽤 많은 소개팅을 받았고 그중 한 명과 1년여를 만났다고 한다. 사실 다시 그런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던 사람과 했던 이혼이었기에 연애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 덕분에 '불행한 나'에서 평범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비록 지금은 헤어졌지만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픔을 극복하고 누군가를 만날 용기를 낸 그녀가 참 멋져 보였다.

이혼을 극복하는 방법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것이 A처럼 용기 내어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일 일수도 나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일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흙탕 속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고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며 용기 내 새로운 연애를 한 A도, 극작 일에 도전한 나도 그로 인해 삶에 변화가 생기고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기억조차 버릴 정도로 괴로웠던 과거일을 브런치 글을 통해 꺼내 두기 시작하던 2월에, 나는 그제야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고 제대로 봉합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있던 짐들을 브런치에 내려놓으며 그때서야 비로소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아파했던  떠올리며 그럼에도 잘 버텨냈구나, 고생했다, 잘했다 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껴안고 다독인다. 글을 쓰며 나는 과거의 나를 위로하며 안아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이혼하신 분들, 혹은 이혼 중이신 분들 역시 나는 괜찮다,라고 넘겼거나, 언젠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날이 있거나, 또다시 극복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글로서 이혼에 대해 기록함이 이혼을 겪는 누군가가 무너지는 날들에 작은 공감대로 남아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그 또한 자신을 위로하면서 조금 더 빨리 털고 일어설 수 있길 바란다. 단 한 명,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을 때 찾아 읽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위로는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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