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야기할 곳을 찾아 두리번대다 이곳까지 흘렀다.
페이스 북에서 도망쳐 다른 sns 계정을 만들었지만 어째서, 어떻게 알고 다시 일 관련 지인들이 신청을 해오니 다시 북적이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난 또다시 편하게 내 얘기를 쓸 수가 없다.
내가 활동해왔던 sns의 작가들 계정엔 온통 본인의 작업물 또는 직업에 관련된 활동들이다.
나 이런 그림 그리는 사람임.
난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음.
난 절대 남들과 다른 예술적인 삶을 살고 있음.
내 시각에선 이런 느낌의 온갖 근사한 세로형 도배들이다. 어학 때 함께 공부한 외국 친구들과 영어 소통하려고 어설픈 영어문장 끄적이며 시작된 나의 인스타그램은 어느새 도망친 페이스 북 활동과 다르지 않은 사회생활이 되어버려서 굳이 영어를 쓰는 게 웃긴 공간이 되었다.
사회생활용이라 함은,
글 하나를 올리더라도 내 마음을 골라가며 단어를 선택하고, 타깃이 있는 글이지만 그 타깃이 네가 아닐 거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고르고 , 일 투정 부리고 싶어도 같은 직업의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게 하는 것. 더군다나 가식적 이게도 그 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에 뒤처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자 작가로서 늘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 척하기도 해야 한다.
대체 이게 내 삶에 무슨 의미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식을 보는 건 꽤 피로하다. sns를 잠시 접기로 했다.
브런치에선 내가 드러나지 않길,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낯선 곳에 들어와 글을 올리며 '흘러가던 누군가는 내 얘길 들어주었겠지.'라고 생각한다. 아는 이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것만으로 글 쓰는 데에 안정을 느낀다.
설령 아무도 읽지 않았더라도 오픈한다는 건 나만이 느끼는 편안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