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의 유년시절의 그림자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둡고 차가웠다. 이제 아홉 살밖에 안 된 나는 어두워져 버린 집이 무서웠다.
그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큰 2층 벽돌집이었다. 미장이 일을 하셨던 벙어리 우리 할아버지는 미장이 중에서도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할아버지로 소문이 나 있어서 일감이 끊이지 않았고, 그 덕에 우리는 2층 벽돌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내가 7살 때였다. 페인트칠이 다 마르지 않았는지 집에서는 페인트 냄새가 한참이나 더 났다. 방이 세 개나 있고 주방과 거실이 넓었다. 화장실에는 욕조도 있고 세탁기도 있었다. 나는 대궐 같이 큰 그 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1층에는 세를 들어 사는 집이 네 집이나 있었고, 엄마는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받으러 네 군데 집을 돌았다. 나는 늘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엄마와 아줌마가 나누는 얘기를 듣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고 있노라면 다 큰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앞집 동갑내기 향숙(가명)이는 동네 단짝이었다. 향숙이와 나는 옥상에서 많이 놀았다. 집 전체 면적만큼 넓은 옥상은 우리들의 운동장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마구 뛰어놀고 줄넘기도 하고 어떤 식물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까만 열매도 따먹었다. 물론 그 자유는 할아버지가 안 계신 시간에만 주어지는 것이었지만.
그 시절, 나는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세상은 넓고 우리집도 넓었으며 가족이 있고 단짝 친구가 내 곁에 있었다.
그 크고 좋은 세상도 엄마가 없으면 단번에 무서워지는 법이다.
아빠는 그날 밤 까만 봉지 안에 담긴 소주를 꺼냈다. 평소 술을 잘 못 마시는 아빠가 연거푸 잔을 비웠다. 김치도, 안주도 없이 오로지 쓴 술만 들이켰다. 그리고 한 병을 마저 비웠다. 아빠는 설움에 복받치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소리를 삼켜가며 아빠는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다.
아빠는 다음 날 다시 일을 나갔고, 나는 할아버지 손에 붙들려 어디론가 이끌려 갔다. 낯선 집이었다. 벙어리 할아버지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어어어! 어어어!"하고 소리를 내며 안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어떤 아줌마가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는 나를 가리키며 자기만 아는 수화로 이 아이의 엄마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 아줌마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할아버지와 잠자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엄마가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흐느꼈지만, 할아버지 쪽으로는 손을 내둘렀다. 집에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집에서 앵앵 하고 운다며 나를 가리키며 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엄마, 우리 빨리 집에 가자.”
엄마는 고개를 떨구었다.
“안 가. 저 할애비 보기 싫어서.”
어린 내 마음이 칼에 베이었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엄마아!"
나는 목을 놓고 울었다.
"나도 엄마랑 여기 있을래.”
엄마는 꺽꺽거리며 울었다.
"내 팔자야~! 내 팔자야~! 세상천지 더러운 팔자에 어디서 저런 영감탱이를 만나서 이 고생을 하고오오! 억 억 억"
엄마는 악을 질러가며 세상의 끝을 향한 울음을 쏟아냈다.
그 울음소리에 놀라 나는 더 크게 엄마를 부르짖었다.
“엄마아아아아아!”
결국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왔다.
엄마는 나를 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눈이 퀭해 있었다. 엄마는 일주일만 있다가 가겠노라며 먼저 가있으며 손짓을 했다. 나는 엄마를 뒤돌아보며 숨을 삼켰다. 이런 생이별이 없었다.
커다랗지만 싸늘한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습관을 하나 갖게 되었다. 문을 열면, 먼저 엄마를 찾는 거였다.
엄마의 부재는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 뻥 뚫려 있는 구멍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문득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이유는
아마 그때, 그날의 공기가 내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여섯의 엄마는 많이 지쳐 있었다. 시아버지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갖고 있었다. 엄마는 시골의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물질만큼은 여유가 있는 집으로 시집을 왔건만, 와서 보니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불같았다. 알지도 못하는 수화를 못 알아들으면 귀청이 떨어질 듯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발로 바닥을 쿵쿵거렸다. 복장이 터진다며 가슴을 내리쳤고 밥상을 뒤엎었다. 하루 종일 나가 있는 남편은 옆에 없었다. 엄마는 시아버지의 모든 구박과 질타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참고 참았지만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망가야만 했다. 그지같은 집구석으로부터 도망갈 용기를 내야 했다.
엄마를 잃은 어린 내 처지도 불쌍하지만 자식 둘을 떼어 놓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처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가슴이 찢기고 무너졌을 엄마.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삶, 그것이 엄마의 30대였다.
그 시절 엄마의 외로움과 절망은 이상하리만치 나의 30대와 닮아 있었다.